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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휘웅 Apr 24. 2019

준 조세가 세상을 병들게 한다

세금만 계산하면 다 해결될 것 같지만 세상이 그렇게 수월하지 않다.

요즘 컴퓨터 분야에는 공인인증서의 말이 많이 회자된다. 나는 이 문제를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2014년 당시 정부부처에서 윈도의 지원 종료(당시에는 XP)에 맞추어 운영체제를 아예 리눅스(Linux, 공짜다)로 바꾸는 것을 연구했고 현실적 제약점을 보았기 때문이다. 대중적으로는 공인인증서 하나만 보이겠으나 내 눈에는 여러 가지가 더 있다. 우선 키보드 보안과 브라우저 보안이다. 국가정보원에서 내세우는 기본 보안 규정으로서 이를 공공기관은 준수해야 하기 때문에 이 모듈들 역시 모두 익스플로러 종속적이다. 공인인증서 문제는 해결의 가닥이 보이나 이 문제는 여전히 답이 없다. 다음으로는 DRM(Digital Right Management)이라고 하는 디지털 전자 서명 문서 출력 문제다. 우리가 민원24나 홈택스 들어가서 출력하는 문서에는 DRM이라는 복제 방지 워터마크 기술이 들어가는데 이 역시 액티브엑스라는 기술을 써야만 내 PC에서 프린터의 상태, 복제 여부를 확인할 수 있기에 브라우저와 운영체제를 완전 분리하는 개념의 요즘 인터넷 탐색기(크롬, 파이어폭스, 엣지, 사파리 등)에는 전혀 돌아갈 수 없다.     


내가 처음에 좀 어려운 컴퓨터 이야기를 한 이유는 하나의 문제 하나를 해결한다고 해서 모든게 해결된다는 순진한 상상은 위험하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서다. 세금이라는 것은 국민의 4대 의무로 초등학교때 세뇌되었는데, 납세의 의무가 이렇게 무서운것인지는 지금에서야 깨닫고 있다. 많은 청년들이 공무원을 희망 직업으로 하는 것도 납세한 세금을 급여로 돌려받고 다시 일부를 세금으로 내는 자가 발전적 시스템에 들어가고자 희망하는 것이니 그들을 책망할 이유도 없다. 이 시스템을 바꾸는데 있어서 눈에 보이는 것만 바꾸는 것도 어려운데 실은 그 뒤에 숨은 것들이 훨씬 많다.     


이전 글에서도 나는 종량세가 만들어지면 거기에 여러 가지 기금이니 뭐니 해서 돈들이 들러붙는다는 말들을 한 적이 있다. 핵심부터 말하자면 시간은 돈이다. 세금은 돈만 내면 되지만 시간과 돈을 모두 요구하는 인허가와 검사는 사실 더 큰 비용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이슈를 제기하지 못한다. 사실 세금의 범위는 국세청이 부과하는 세금에 이를 지원하는 민간의 비용을 모두 합한 총계가 되어야 조세 부담률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와인도 그렇겠으나 모든 사업에 들러붙는 돈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러나 다 이야기 하면 길어지므로 와인 업계를 살펴보자. 일단 식검 비용이 있다. 식검 비용은 소주나 맥주처럼 종류의 수가 적은 경우에는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와인의 경우 빈티지가 바뀌고 수입분이 바뀌며 해마다 종류가 바뀌기 때문에 얼마 되지 않는 매출 규모를 갖춘 수입사들에게는 큰 부담이 될 수 밖에 없으며 특히 식검 비용의 검체 비용의 경우 와인은 설명하기 어려운 댓가를 치러야 한다. 로마네 콩티 한 병도 검체로 꼼짝없이 잡혀간다. 검사비용+와인검체비용 이렇게 생각해서 비용으로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 물론 이 절차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검사 항목이 항상 설명되지 않는 규정으로 변경되고 더해진다는 점이다.     


다음으로는 임의 검사다. 어느 날 갑자기 검사가 나온다. 그리고 이럴 때 작용하는 징크스가 있는데 꼭 희귀, 고가 와인만 검체가 된다. 오히려 사고가 날 확률은 아무 포도나 수확해서 제초제나 기타 성분이 들어갈 수 있는 저가 와인에서 더 높을 수도 있는데 꼭 희귀, 고가 와인이 잡혀간다. 슬픈 세상이다. 이 역시 검사는 기관에서 비용을 들여 한다지만 와인 자체의 비용은 와인의 원가에 분산되어 반영될 수 밖에 없다.   

  

보세창고 비용 역시 관세 및 세금으로 인해 추가적으로 발생하는 비용일 수 밖에 없다. 국가 규정이 자주 바뀌어 와인 뒷 레이블에 대한 규정이 바뀌면 이에 대한 작업을 수작업으로 해야 한다. 공공기관은 담당자가 바뀌어 문서 한 줄과 규정 글자 하나만 바꿨을 뿐인데 민간에서는 상상 이상의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레이블의 선정성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아니면서 담당자가 자의적으로 판단한다. 미풍양속이라는 추상적인 개념, 담당관의 자의적 해석에 따르는 불확실한 기준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얼마전 전국의 유명 빵집들이 위생규정 위반으로 잡혔다는 소식을 들었다. 단속 내용을 살펴보면 관련 업계를 알아온 나로서는 정말 어이없는 단속 내용이었다. 자가진단이란 매일 내부 상황을 점검하는 표인데, 예를 들어 손 세정제가 다 차 있는지 아닌지 이런 것을 검사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주방의 제일 초입자가 하고 고참이 사인한다. 그런데 이 사인이 기재가 안되었다든지 해서 적발이 된 것이다. 물론 철저한 식품 안전과 보건은 우리 건강과 직결되어야 하기 때문에 엄격하게 처리되어야 한다. 그러나 기관 담당자는 유명 빵집을 단속했다고 실적으로 내고 언론은 이슈화 되니깐 누이 좋고 매부 좋다. 그렇다면 이렇게 당한 업장들은? 정말 악한 마음으로 하는 곳도 있겠으나 대부분의 업장들은 성실하다.(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와인에 붙는 교육세 역시 목적세 역할을 하지만 그 것이 왜 술에 붙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거나 술자리에서 “우리가 마시는 술이 대한민국의 백년지 대계를 지키는 것이야”라는 구호 한 번을 위해 치러야 하는 댓가로는 꽤나 큰 편이다.     


이러한 조세체계는 나비효과를 일으켜서 나중에 눈덩이가 된다. 조세 정책이 정말로 중요한 이유다. 준조세는 조세체계와 규정을 따라 춤추고 민간은 이에 따라가느라 가랑이가 찢어진다. 그렇게 해서라도 수익을 내야 하는 것이 사업이다. 그러니 사업하는 이들, 와인 수입사, 유통사, 소매사 그 누구도 탓하지 말자. 내 밥그릇은 언제나 측은해 보이고 남의 밥그릇은 늘 수월해 보이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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