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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휘웅 May 01. 2019

와인 전문 행사에 가려고 하는 애호가들에게

무리해서 가지는 말자.

나는 와인 업계 사람은 아니고 그저 와인글을 주업이 아닌 취미로 쓰는 사람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올린다.


와인 문화 저변이 많이 확산되고 있다. 어제 모 와인 디너를 갔는데 핵심 한두 명을 빼고는 전혀 모르는 이들이었다. 이전에는 적어도 아는 사람이 제법 되었는데 말이다. 최근 지하철을 타고 가다 보면 손에 와인 가방을 든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얼마 전에는 지하철 옆에 앉은 두 아가씨의 이야기를 본의 아니게 들으면서 가게 되었는데 와인은 잘 모르는 것 같았으나 와인 잔에 대한 호기심은 대단했다. 어떤 잔을 샀으며 집에 한 개를 두었다는 등 와인 잔이 일종의 패션 아이템이나 자신의 소확행을 실현 해주는 어떤 기제로 작용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처럼 와인 저변 문화는 와인 업계의 생각 이상으로 대중에 많이 각인되고 있다. 업계 입장에서는 이러한 저변확대가 수익으로 이어지기를 바랄지 모르나, 실제로 수익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물량을 많이 제공해서 병당 수익이 낮아도 총 수익을 가져가는 경우(마트)를 제외하고 현재 수익을 낼 수 있는 부문은 많지 않다. 수익을 내는 수입사들도 재고자산 등을 생각한다면 그렇게 남는 장사를 하고 있지 않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희망 사항으로는 20대 소비자들이나 구매력이 있는 새로운 소비자가 등장하기를 기다려야 하는데, 통상 와인에 입문한 20대 후반의 소비자가 실질적인 구매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린다고 생각한다. 내 기준으로도 보면 처음에 약간의 투자를 해본 뒤, 그 막대한 참가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서 중도포기하거나 데일리 와인을 마시거나, 잔 등에 투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결혼이나 육아 등이 겹치게 되면 와인 생각은 하기 어렵다.


그래서 실제로 와인에 수익을 가져다주는 소비자층은 30대 중반~50대 초반 정도의 소비자라고 생각한다. 물론 20대 소비자들이 와인에 입문해야 이들의 연령대가 올라가면 자연스럽게 와인 구매층이 되어줄 것인데, 문제는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너무 길다. 시간이 길다는 말은 투자비용이 많아야 한다는 것이며, 지금과 같이 출고가 기준 6천억 원이 되지 않는 시장에서 이 정도의 시간을 기다려줄 자금적 여유를 찾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물론 30대 중반 이후의 소비자들에게도 와인 지출이 그렇게 여유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절약하여 와인을 마시는 여러 방법을 찾아보게 된다.


점차 와인을 알아갈수록 호기심과 주머니 사이의 갈등은 커지게 되고, 와인 애호가로서 호기심은 전문가 행사에 대한 참석 욕구로 전환된다. 국내에는 여러 전문 행사가 있는데, 코엑스나 킨텍스에서 하는 행사도 비즈니스데이는 따로 있으며, 감베로로쏘(Gambero Rosso)와 같은 전문인 행사, 국가 대사관 경제상무관실이 개최하는 무역을 목적으로 하는 시음 행사 등이 있는데 아쉽게도 일반 애호가들은 참여할 수 없다. 즉 소속이 와인 업계로 된 사람들만 참석할 수 있다. 나는 와인이십일닷컴의 배려로 몇몇 행사들은 갈 수 있으나, 이 역시 상대편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이런 점은 내가 UIV나 몇몇 소형 수입사의 시음행사와 같은 미니 시음회에 참가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간혹 한 번씩 연락을 해보는 일도 있으나 담당자들이 행사의 취지를 설명해주고 정중히 양해를 구한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경우에는 나를 초대해주는 때도 있으나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내가 와인업계 관계자라기 보다는 관찰자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수입사들이 시음 행사를 여는 경우는 샘플링 때문이다. 고가 와인들은 온매장에 샘플을 제공할 수 없다. 큰 수입사라면 물량이 많으니 상부 승인후 샘플 제공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작은 수입사는 그렇게 할 수 없으므로 마케팅 비용 등을 통합하고 비용 절감을 한 뒤, 이러한 샘플링 행사를 연다. 주요 목적으로는 거래처에 새로운 와인을 납품하는 것이다. 일반 소비자들이 그 와인을 맛보여주고 소개한다기보다는 영업에서 이야기하는 “펀넬(깔때기, B2B 고객 대상의 접점)을 늘리는” 부문이 더욱 중요한 영역인 셈이다. 따라서 와인 한 병 한 병이 매우 소중하고 따를 때도 신중하다. 한 잔을 줄 때도 이것이 매출로 직결이 될지 노심초사다.


따라서 이런 행사에 애호가들이 찾아가는 것은 큰 실례가 될 수밖에 없다. 와인에 대한 호기심이 많이 생길수록 이런 행사에 대한 유혹은 대단하게 다가온다. 이럴 때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아는 소믈리에나 업장 대표에게 부탁해서 업장 대표의 명함을 가지고 간다거나 혹은 가짜 명함을 만들 수도 있다. 명함 없이 간 뒤에 적당히 회사 이름을 둘러대고 들어갈 수도 있다. 아니면 동호회들이 수입사에 직접 연락해서 자신들의 공동구매 물량을 파워로 압력을 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은 애호가들에 대한 수입사들의 시각을 왜곡시키고 이들을 곤란하게 만들 확률이 높다. 나는 그 와인을 마셔봄으로써 외부에 자랑할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입사나 수입사 담당자, 행사 기획자로부터 명확한 승인을 받지 못할 때는 무리해서 이러한 행사에 참석하려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러한 행사의 목적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호기심이 많은 애호가들은 어떤 방법을 찾아보면 될까? 요즘은 와인 아카데미나 수입사들이 일정 시음비용을 받고 개최하는 다양한 시음회들이 있다. 오히려 깨끗한 ISO 잔이 제공되고 전문가들의 설명도 들을 수 있어서 더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 알수록 더 재미있는 것이 와인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러니 앞으로 어떤 좋은 행사가 있다 하더라도 자격이 없다고 생각된다면 가고 싶은 마음을 접어두는 것이 좋다. 대신 조금씩 유료 시음회를 찾아보면 훨씬 많은 기회들이 있음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그것이 수입사도 살고 애호가도 대접 받으며 상생하는 길이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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