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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평화 Feb 22. 2018

빛나지 않아도 괜찮지 않나?

'북극성'처럼 높은 곳에서 빛나는 별이 되고 싶었다


칭찬받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정해진 궤도'를 벗어나지 않고 따랐던건 8할은 칭찬을 받기 위해서였던것 같다.


시키는 대로 공부했고, 나쁘지 않은 결과에 칭찬을 받으면 좋았다. '반장', '회장' 선거에 나갔던 것 역시 '리더십' 보다는 '무엇이 되었다'로 칭찬받고 싶었는지 모른다.


'평범한 사람'이 아닌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건, 이런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어떤 분야를 공부하는 것이 좋다거나, 공부를 잘 해서 무엇인가를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다만 "공부를 시키는 것도 아닌데 혼자 이렇게 잘 한다"는 칭찬이 좋았다. 장래희망에 '판사', '검사', '의사'를 적었던 것도 어쩌면 그런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은하수를 채우는 수많은 별들이 아닌, 별들 중에서도 가장 밝게 빛나는 길잡이 별, 가장 높은 곳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특별한 별인 '북극성'이 되고 싶었다.


요새 젊은사람답지 않게

'칭찬받기 좋아하던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인정'과 '사랑'으로 변주된 받기 위해 질주했다. 동료들보다 15분 먼저 출근했다. 가장 먼저 출근해서 가장 늦게 퇴근했다.


"요새 젊은사람 답지 않게 성실하다", "다른 동기들보다 독하다" 처음에는 이런 평가가 좋았다. 돌아보면 남들은 몇번에 한번 갈까말까한 격무 부서들을 9년동안 연이어 돌았던 건 '특별함'을 갈구하는 욕구를, 마약같은 '칭찬'으로 충족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인정받기 위해, (번아웃과 우울증 증세로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싫은 사람들에게는 (겉으로 내세운 이유는 '무능한 사람들에게 책망받기 싫다'는 이유였지만 실상은 ) 더더욱 칭찬받기 위해 쉼없이 달렸다. 이런 욕구가 스스로를 갉아먹었다는 것은 몸의 신호로 일터를 떠나는 결심을 한 뒤에야 알게 됐다.


슬플 때도, 실패할 때도 있었지만 다 추억입니다


히딩크 감독의 수석코치로 2002년 월드컵 4강에 기여했지만, 지난 10년 동안 경남FC, 전남 드래곤즈, 상주 상무팀을 끝으로 한국에서 설자리를 잃은 박항서 감독은 국외로 눈을 돌렸다.


이후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된 뒤 AFC(아시아축구연맹) 주최 U-23 챔피언십에서 약체였던 베트남팀을 준우승으로 이끌어 국민영웅이 된 박항서 감독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자: 지금까지 축구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은 언제였나요.

-박항서 감독: 2002년과 지금, 두 가지 다 저한테는 평생의 영광이죠. 2002년에는 히딩크 감독님을 모시고 홈에서 지도자로서 큰 경험을 했던 거고, 이번에는 외국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우승은 못 했지만 사랑받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포항, 경남, 전남, 상주, 창원시청 시절 다 저한테는 소중해요. 어떻게 좋은 일만 있겠습니까. 슬플 때도, 실패할 때도 있었지만 다 추억입니다.


기사를 읽으면서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을 생각해봤다. 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어린시절? 고등학교 입시(비평준화 지역에서 고등학교를 나와서 중3때 고입 준비를 했었다)에서 성공했을때? 대학에 입학했을때? 대학졸업 전 취업했을때? 다니고 싶었던 회사에 입사했을때? 눈을 감기 전 누군가 내게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을 묻는다면 나는 어떤 답을 내놓을까.


그러다 문뜩 '빛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빛나는 순간은 없어도 내리 한숨쉬지 않는 그런 평범한 인생도 괜찮지 않을까. (물론 요즘은 내가 생각하는 '평범함'이 가장 '특별함'이 아닐까는 생각도 든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빛나지 않아도 엄마에게 내가, 동생에게 아빠가, 친구에게 내가 그렇듯 서로가 존재만으로 빛나는 그런 존재로. 그 자리에서 제가 낼 수 있는 만큼의 빛을 내며 은하수를 만들듯 그런 삶이면 족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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