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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평화 Mar 02. 2018

'두 번째 걸음마'를 시작하며  

걸음마를 배운 부모님께 운전을 배우다

장롱면허 탈출 가즈아


일을 쉬게 되면서 그동안 시간을, 체력을 핑계로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나 둘 시작했다. 가장 먼저 시작했던 것이 운전이다. 입사 첫 해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운전면허시험 간소화 시절이다) 운전면허를 딴 직후 겁도 없이 새로 개장했다는 경기도의 한 대형 쇼핑몰까지 차를 몰고 갔다. 고속도로와 산길 같은 외길까지, 쇼핑몰까지는 잘 찾아갔는데 주차장 입구로 들어가면서 자동차 번호판 인식기를 박살 내 버렸다.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면허를 따자마자 난 큰 사고에 꽤 충격을 받았나 보다. 한동안 운전대를 잡기가 무서웠다. 달보고 출근해 별 보고 출근하는 처지에 2~3시간인 출퇴근 시간을 조금이라도 아껴보자고 딴 면허였지만, 익숙하지 운전에 출퇴근 시간까지 긴장을 하고 싶지 않다는 피로감도 한몫했다. 그렇게 잡은치 얼마 되지 않은 운전대를 놓은 지 8년이 지났다.


다시 운전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지금이 아니면 언제 다시 익숙해질 만큼 운전을 할 시간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요양차 머물고 있는 부모님 댁의 교통편이 불편한 것도 한몫했다. 깡촌은 아니었지만, 시를 빠져나가 주요 도심으로 가는 버스 중에는 20~30분에 한 대씩 운행되는 버스도 있었다. 바로 운전면허학원에 도로연수를 등록한 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닷새간 연수가 끝났다.



좋은 가격에 인수한 중고차로 연수를 받고 싶었지만, 운전면허학원 등록차량(조수석에도 브레이크가 있는)이 아닌 차량으로 도로연수를 받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법이라고 했다. 결국 도로연수를 마친 뒤에야 겨우 내 차 운전대를 잡을 수 있었다. 도로연수만 끝나면 금방 전국을 누빌 줄만 알았는데, 준중형인 학원차와 경차인 내 차는 비슷한 듯 달랐다.


결국 30년 운전경력을 자랑하는 아빠와 20년 무사고 운전자인 엄마에게 SOS를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다 큰 성인이 요양차 부모님 댁에 머무는 것도 모자라 '운전교육'까지 요청드리는 것이 민망했지만,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자차로 도로연수를 해준다는 학원도 있었지만, 불법이기도 했고, 도로연수 말미에 강사가 핸들 아래쪽을 잡아주는 보조운전 수준의 강습을 경험한 탓에 스스로 연습하는 것 말고는 자차 연수가 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운전은 네가 하는데 내가 왜 이렇게 피곤하니

"엄마 아빠가 운전이랑 주차가 익숙해질 때까지 좀 봐주시면 좋겠어요" 나름 고민 끝에 꺼낸 말이었다. 부모님은 '고민의 시간'이 민망할 정도로 너무나 흔쾌하고 기꺼이, 실은 너무나 기쁘게 '운전 강습 요청'을 수용해주셨다. 그리고 아주 열정적으로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를 외치며 운전과 주차 연습을 도와주셨다. "저 구역으로 가서 한 번만 더 주차해보자", "저 동네로 한 바퀴만 더 돌아보자" 수강생보다 열정적인 강사라니...


"운전은 네가 하는데 내가 왜 이렇게 피곤하니" 초보자의 차를 타고 도로를 누빈 엄마는, 긴장감에 조수석 손잡이를 얼마나 꽉 잡으셨는지 차에서 내릴 때마다 손에 쥐가 날 지경이라고 토로하셨다. 차 밖에서 열정적으로 '주차 코치'를 해주시던 아빠는 "최근 몇 년 간 먹은 가솔린 가스를 요 며칠 동안 다 마신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떠셨다. 그럼에도 두 분 모두 '강습시간'이 고되지만은 않으신 것처럼 보였다.


나는 부모님과의 운전강습이 좋았다. 일단 부모님과 대화 양이 곱절 이상 늘어난 점이 신났다. 평소에도 대화가 적지 않은 가족이었지만, 일상적인 대화 외에 운전강습(?)을 하는 동안의 에피소드, 어떻게 하면 운전을 더 잘할 수 있는지까지 대화가 확장되니 대화가 무제한으로 이어졌다.


아기 때 부모님께 걸음마를 배웠듯, 운전이라는 '제2의 걸음마'를 부모님께 다시 배운다고 생각에 기분이 묘해지기도 했다. 아기가 걸음마를 배운 뒤에 자신의 물리적 세계가 기하급수적으로 확장되는 것처럼, 운전을 배운 뒤 접근 가능한 공간의 제약(대중교통이 원활한 지역 외)이 무너지는 변화를 경험하게 될 테니까. 걸음마를 가르쳤던 아기가 어느새 제 발로 걸으며, 자신들에게 다시 제2의 걸음마를 배우겠다고 나선 상황을 부모님은 또 어떻게 받아들이실까.


혹자는 '가족 간 운전강습은 가정불화의 지름길'이라고라고 하더라. 실은 사고 직전의 상황을 몇 차례 마주하며 고성이 오고 가기도 했다. 그러나 어쩌면 남자 친구 또는 남편에게 배웠다면 마음이 상할 수 있는 '거친 충고'를 부모님의 입으로 들으며 '의심하지 못할 애정'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한걸음 한걸음 내딛다 보면 2번째 걸음마 역시, 언제 그랬냐는 듯 익숙해질 날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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