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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평화 Mar 06. 2018

보수진영에서 '미투'가 나오지 않는 이유

김어준의 예언 적중? 인권감수성의 맹아가 있어야 미투가 가능하다 


그 타깃은 어디냐, 결국은 문재인 정부, 청와대, 진보적인 지지층?


서지현 검사의 전 검찰국장 안태근의 성범죄(성폭행과 성추행이 모두 포함된다)를 폭로를 시작으로 우리 사회 각종 분야에서 성범죄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연극연출가 이윤택의 성추행, 시인 고은, 극작가 오태석, 배우 조민기, 감독 김기덕 등 가해자로 지목된 인물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였던 전 충남지사 안희정의 성폭행 폭로로 여당은 패닉 상태에 빠진 상태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 '왜 자유한국당 등 보수진영 인사들이 연관된 미투(#metoo)는 나오지 않는가'라는 불만이 나온다. 자유한국당 대표 홍준표는 안희정의 성폭력 의혹 논란과 관련해 "미투 운동이 처음 시작할 때 홍준표, 우리 당의 모 의원을 덮어 씌우기 위한 출발로 봤지만, 본격화되니 민망한 사건들이 좌파 진영에서만 벌어지고 있다"며 "미투운동이 더 가열차게 해서 좌파들이 더 많이 걸렸으면 좋겠다"며 큰소리를 치고 있다.


일각에서는 아직도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는 김어준의 이른바 '미투 예언'이 결국 적중한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김어준은 팟캐스트 '다스뵈이다'에서 "미투 운동을 지지해야 되겠다. 그리고 이런 범죄를 엄단해야 되겠다. 이게 일반적인, 정상적인 사고방식입니다. 그런데 공작의 사고방식으로 이걸 보면 어떻게 보이냐...문재인 정부의 진보적 지지자를 분열시킬 기회다...예언합니다...그 타깃은 어디냐. 결국은 문재인 정부, 청와대, 진보적인 지지층"이라고 말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 발언의 적절성은 별론(別論)으로 하되 지금까지 제기된 미투만 보면 이른바 진보진영이 미투 운동의 또 다른 진앙으로 떠오르는 모양새다. 실은 성폭행 폭로는 이전에도 진보적인 시민단체와 운동권에서 먼저 나왔고, 미투 운동이 들불처럼 번진 곳 역시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진보적이라고 주장하는 문화.예술계에서 본격화됐다. (문화.예술계가 진보적이라는 일부 주장에 동의하진 않지만, 이번에 문제가 된 인사들 중 상당수가 지난 대선과 이전 대선에서 문재인 당시 민주당 후보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진보적 인사로 분류되곤 하더라)


정치권에서도 민주당에서 가장 먼저 미투 폭로가 나왔다. 안희정은 민주당 소속이었고, 국회에서 미투 폭로와 관련해 가장 먼저 퇴출된 사람은 19대 국회 때 민주당 소속 의원실에서 일하며 성추행과 성희롱을 한 보좌관(해임 직전 소속은 바른미래당 소속 채이배 의원실이었지만 범죄행위는 민주당 소속 의원실에서 행해졌다)이었다. 김어준의 주장대로 특정 세력이 문재인 정부, 청와대, 진보진영을 분열시키기 위해 공작에 나선 것일까?

 

누울 곳을 보고 다리를 뻗으라

사진=TBS 교통방송 홈페이지


조물주가 아닌 나는 그 답을 알지 못한다. 현재 일어나는 일의 배후를 캘 능력도 없고 의지도 없다. 그러나 장삼이사인 내가 감히 예언하자면 앞으로의 미투는 이른바 진보진영에서 더욱 많이 나올 것이다. 자유한국당 내의 미투는 가장 늦게 나오거나 혹은 아애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한국당 또는 이른바 보수진영에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과 '위계 등 간음'이 곱절 혹은 그 이상 넘쳐난다고 해도 그곳에 소속된 이들이 미투에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감히 예언한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으라"는 속담이 있다. 그런 점에서 위계질서가 어느 조직보다 엄격하기로 유명한 검찰에서 미투 운동의 첫발을 내디딘 서지현 검사의 용기에 종일 박수를 쳐도 모자라다. 물론 그 뒤로 폭로에 나선 여러 영역 모두 고용을 시작으로 한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는 가해자들을 폭로했다는 점에서 지지받아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런 폭로가 나온 곳들은 다른 영역들보다 상대적으로 건강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영역이 더 썩었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미투가 나온 곳들만 성범죄자들이 드글거리는 '강간의 성'같은 곳일까? 당신이 여성이라면, 혹은 당신 옆에 있는 여성들에게 물어보라. 경중의 차이는 있겠지만, 한국은 어제도 오늘도 '강간의 왕국'이다. 음담패설에 웃지 않으면 '분위기 파악 못하는 까칠한 여자'로, 불쾌한 스킨십에 정색하면 '과도하게 예민한 여자'로 낙인찍는 곳이 바로 헬조선이다. 여성은 한국사회에서 2등시민이다.


뒤늦게 미투가 터져 나오는 곳은 어쩌면 앞서 미투가 나온 곳보다 상대적으로 더 폐쇄적인 곳일 수 있다. 피해자의 실명 미투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일반 직장이 문화.예술계보다, 학계보다, 정치계보다 성추행, 성희롱 문제에서 자유로운 곳인가? 감히 '아니오'라고 단언한다.


인권감수성이, 성감수성이 높은 이들이 있는 곳, 그래서 '누울 자리'가 있는 곳에서 미투가 나올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큰 것이 아닌가. 대학교 때 하숙집 친구가 좋아하는 여성에게 어떻게 하고 싶어서 '돼지발정제'를 구해달라고 해서 돼지발정제를 구해주고 친구가 그 여성에게 약을 먹었던 일을 자서전에 적은 분(물론 반성의 의미로 적었다고 했다)이 대표로 있는 정당에서 과연 미투의 누울 자리가 있을까.


김어준의 예언이 맞았다는 말이 아니다. 먼 훗날 진보진영의 미투 봇물의 배후가 있었다고 밝혀질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진보진영 내 미투 운동의 배후가 '있을 수도 있다'는 우려는 그 의도가 어쨌든 명백히 미투 피해자들의 입을 막는 행위다. '너의 폭로가 조직 자체를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 내부고발자들을 협박하던 조직들의 논리 아닌가.


이른바 진보진영, 혹은 스스로를 진보주의자라고 생각한다면 그 안의 '미투'를 '상대적 건강함의 지표'로 받아들이길 바란다. 진영과 무관하게 그 공동체 안의 썩은 부위를 가리키는 사람들을 응원해줘야 건강한 공동체다. 먼지만큼이라도 공동체 내에 인권감수성의 맹아가 있어야 미투가 가능하다. 미투는 우리사회의 인권의식 전환의 거대한 전환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래서 미투는 계속돼야 하고, 확산돼야 한다. (#with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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