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과 무관한 피해자 인격 폄훼에서 피해자 향해 책임전가까지
전 충남지사 안희정 성폭행 폭로 직후 일각에서 이뤄지는 찌라시를 통한 여론조작 움직임을 보며 2011년 5월 고려대 의대에서 일어났던 집단 성폭력 사건이 떠올랐다. 역사는 느릴지라도 진보한다고 믿고 있지만, 성폭력 피해자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뻔뻔한 작태는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성폭행 피해자의 사생활이 문란했는가?
고대 의대 최악의 흑역사로 기록되는 고대 의대 집단 성추행 사건은 2011년 5월 21일, 고대 의대에 재학 중인 3명의 남학생이 6년 동안 알고 지낸 여학생을 집단 성추행한 사건이다. 이들은 여학생이 술에 취해 잠든 틈을 타 속옷을 벗기고 신체 부위를 만졌고, 이런 장면을 디지털카메라로 촬영까지 했다.
고대 의대 성추행 사건은 가해자 중 한 명이 혐의를 부인하면서 본격적인 2차 피해가 시작됐다. 가해자 쪽은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 너도 끝'이라며 피해자를 협박했고 동료 학생들에게 '피해자가 이기적인가, 사생활이 문란했는가' 따위를 묻는 설문조사를 했다. 가해자의 변호인은 피해사실과 전혀 관련 없는 피해자의 이성관계에 관한 일방적인 주장을 펴 마치 피해자에게 성추행 피해자에게 있는 양 부각하려고 했다.
안희정의 성폭행 폭로 이후 피해자에 대한 여러 가지 찌라시가 돌고 있다. 피해자가 안희정과 부적절한 관계였다는 둥 피해자의 가족이 보수진영 쪽 인사라는 둥, 안희정에게 앙심을 품은 사람이 피해자가 움직이도록 조종했다는 둥. 이런 찌라시야 말로 어떤 사람들이 좋아하는 여론조작이다. 그들의 말을 빌자면 '작전'이 시작된 것이다.
피해자의 사생활이 문란하다는 인격 폄훼와 사건의 본질과 무관한 피해자의 부모님의 정치적 정치적 지향, 근거 없는 배후 제기. 피해자에게 사건이 일어난 책임 전가. 마치 성폭행이 아니라 성관계를 피해자가 묵인했고, 설령 성폭행이 있다고 해도 그 책임이 피해자에게 있는 양 부각하려는 시도. 고대 의대 성폭력 사건 이후 7년이 지났지만,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하는 시도와 그에 동조하며 2차 피해를 유발하는 작태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백번 양보해서 그들(피해자의 인격을 폄훼하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내용의 찌라시를 작성하고 유포하는)의 주장대로 안희정과 피해자가 부적절한 관계였다고 치자. 부부 간에도 성폭행이 인정된다는 것을 아는가? 상대가 거부 의사를 보인 가운데 성관계를 시도했다면 부부 사이라 해도 성폭행이 성립한다. 부적절한 관계? 당연히 성폭행 성립이다.
피해자의 가족이 보수진영 쪽 인사라고 치자. 아버지가 보수진영 인사라면 진보진영 인사가 그 자식을 성폭행해도 되는 건가? 안희정에게 앙심을 품은 사람이 조종했다? 무의미한 경험은 없으니,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면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만약 거짓이라면 '허위사실 유포'로 경찰 조사를 받는 경험도 받아보는 경험이 가능할 것 같다.
요새 예언이 유행이니 예언을 하나 해보겠다. 일부 지지자들이 전 의원 정봉주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피해자에게 신상을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신상이 공개되면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다.
피해자가 정봉주를 좋아해서 먼저 들이댔고, 피해자의 지인이 보수진영 쪽 인사와 (사돈의 8촌이든 뭐든) 관계가 있으며, (이 사람이 현재는 기자이니) 정봉주 쪽과 (취재 과정의 트러블이든 뭐든) 무엇인가의 문제로 정봉주에게 앙심을 품었다는 이야기가 찌라시 형태로 유포되며 여론조작을 시도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10년 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2021년이 3년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동안은 강산이 변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이번만큼은 변했으면 좋겠다. 미투 폭로가 더 많이, 더 오래 이어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피해자를 '피해유발자'로 만드는 더러운 작태, 그 작태에 놀아나는 우둔한 동조자들 모두 반 발자국만이라도 나갔으면 좋겠다.
#metoo #with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