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여년 전이 생생한 위안부 피해자, 수십년 전을 기억하는 고문피해자
사실무근
기억없어
미투 운동이 본격화된 뒤 가해자들의 첫 반응은 크게 "사실무근"과 "기억없음"으로 정리된다. 이후 추가 피해자가 나오거나 추가 증거가 제시되면 인정 또는 부인으로 다시 대응이 나뉘지만.
가해자들의 '기억상실증'은 전염성을 의심할만큼 천편일률적이다.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법적 처벌을 피하기 위한 '꼼수형 기억상실'이나 무신경하게 지속돼 온 일이라 정말 기억 조차 못하는 '상습범형 기억상실'이다.
자신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주장에 대해 전 의원 정봉주의 반응은 사실무근이다. 그런데 피해자의 진술은 꽤 구체적이다. 경험하지 않고 날짜와 시간, 장소를 이렇게 구체적으로 말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반응이 중론이 아닐까 싶다.
이런 가운데 미국 SLG APC 법무법인 대표 변호사이자 공인회계사인 서권천 변호사는 지난 7일 자신의 트위터에 정봉주 전 의원의 성추행 피해자의 폭로를 의심하는 듯한 글을 남겼다. 피해자의 폭로가 너무 구체적이라 의심스럽다는 것이 골자다.
일상적인 경험이라면 서씨의 주장이 일견 타당해보인다. 하지만 기억의 주체가 범죄 피해자라면 이런 분석은 완벽한 오류다. 그의 논리대로라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군부독재시절 사법기관 고문피해자 등 범죄 피해 직후 신고하지 않은 모든 피해자의 진술은 신빙성을 의심해 봐야한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언제부터 피해를 증언하기 시작했나. 피해를 당하고 반세기가 지나서다. 강산이 변하고 또 변해도 할머니들은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계신다. 진술의 구체성을 신빙성의 의심근거로 삼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일 가능성이 없지 않지만) 과장을 보태 범죄 피해자들을 모욕하는 일이다.
이용수 할머니는 어제 파리에 가셔서 위안부로 끌려가서 경험하신 얘기를 증언하셨다. 15세 때 끌려가시면서 머릿속을 스치던 생각들, "엄마" 하고 외치던 순간, 일본 병사가 죽기전 가르쳐 준 일본 노래... 2시간 가까이 낱낱이. 76년전 일인데, 선명하게 머리에 각인된 그 일. 서씨의 주장에 따르면 이용수 할머니는 흔치 않은 천재다.
독재정권시절 사법기관으로부터 고문피해를 받은 피해자들은 어떤가. 제대 이후 군복무 시절 학대사실을 증언한 피해자들은? 학창시절 왕따를 당했던 경험으로 성인이 되서까지 고통받는 피해자들은...헬조선은 천재들의 왕국인가?
7년이 지났지만 술자리에서 성추행을 당하던 장면은 1초 단위로 생생하다. 날짜와 시간, 술집의 위치, 인테리어, 실내의 온도, 배석자들의 옷차림과 머리스타일, 표정, 대화까지. 이 정도면 정봉주 성폭행 피해자보다 곱절은 자세하다. 피해자가 천재라면 나는 멘사 회원 신청을 해야할 정도 아닌가.
진술의 신빙성은 수사기관이 사법기관이 판단한다. 수사가 시작되기 전 피해자 진술의 구체성을 일종의 무고의 근거인냥 제시하는 것은, 특히 변호사가 이를 말하는 것은 무례하다 못해 무식한 처사다.
서씨의 주장대로라면 차고 넘치는 우리나라는 세대성별 불문 천재들의 나라다. 천재들이 인권의 수준을 확 끌어올릴 것이다
#metoo #with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