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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평화 Mar 27. 2018

근로시간 단축하면 경제 휘청? 주5일제 도입때도 그랬다

정치권.언론, 방향에 공감한다면 우려 증폭보단 실효성 확보에 집중했으면

처음 접하게 되는 풍경이나 사건인데도 예전에 보았던(겪었던)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이런 현상을 두고 프랑스어로 '이미 보았다'는 의미의 '데자뷔(dejavu)' 현상, 기시감(旣視感)이라고 말한다.


난달 국회에서 주 최대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법정근로시간 주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으로 제한)으로 단축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통과된 뒤 관련 논란이 거세다. 노사 모두 방향에는 공감하면서도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노동계는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삶의 질 개선은 의미 있지만 임금이 줄어서는 안 된다", 경영계는 "근로시간 단축은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인건비 부담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개정안 통과는 불과 한 달 전인데 논의는 너무 익숙하다. 기시감인가.



14년 전인 2004년 법정근로시간을 주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줄인 '주 5일 근무제' 도입 당시에 노사는 방향에는 공감한다를 전제로 지금과 유사한 우려를 표명했다. 그러나 14년이 지난 지금, 주 5일제는 보편적인 제도가 됐다. 인건비 상승으로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중소기업의 줄도산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는 호들갑은 무색해졌고, 근로자의 임금도 대폭 줄지는 않았다.


물론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당시 정부는 주 5일제를 시행하면서도 유권해석을 통해 연장근로를 최대 28시간, 주당 최대 68시간(법정근로시간 주 40시간+연장근로 28시간)까지 허용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OECD 국민들의 평균 근로시간(1700시간)보다 무려 400시간을 더 일한다.


인력난에 허덕이는 중소기업이 주 5일제 시행의 직격탄을 맞을 수 있어 내린 불가피한 조처라는 게 당시 정부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주 5일제 정착 뒤에도 정부가 이런 유권해석을 바꾸지 않아 연장근무수당을 둘러싼 소송이 이어졌다(현재 대법원 계류 중).


기본급은 적고 수당이 많은 기형적인 임금체계도 근로자들의 근로시간 단축을 마냥 반길 수 없는 이유다. 여기에 부족한 인력 및 과중한 업무 상황이 바뀌지 않는 상황에서 법적으로 인정되는 근로시간만 줄면 '서류상 퇴근', '시스템상 퇴근' 후 근로가 이어지는 '무임금 근로'나 '재택근무'만 강제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물론 연착률을 장담하긴 어렵다. 다만 논란에도 불구하고 14년이 흐른 뒤 주 5일제가 당연한 제도로 정착됐듯 방향에 공감한다면 정치권과 언론에서 우려를 증폭시키기보다는 대안 제시에 주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무늬만 단축근로'를 막기 위한 여러 조치들.


잔업 규제를 강화하고, 법에 규정된 시행시기보다 빨리 주 5일제를 도입하는 기업에 법인세 등 세금을 감면해주거나 인건비를 지원했던 주 5일제 도입 때 시행된 유인책 등도 고려해 볼만하다. '무늬만 퇴근'을 제재하기 위한 촘촘한 근로감독 방안도 시급히 마련되길 바란다.


영어권에서 익숙한 단어인 일과 삶의 균형(Work and Life Balance)이 '워라밸'이라는 신조어로 우리 사회에 들불처럼 번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워라밸의 정착에 시발점이 됐으면 좋겠다. 나도 워라밸 쫌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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