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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평화 May 01. 2018

팔자좋아 취미생활 한다고요?

회사 밖 활동이, 성취가 태업의 증거는 아니다

일만 해도 죽겠는데 팔자 좋네

몇 년 전이다. 한 회사 동료가 아마추어 피트니스 대회에서 우승을 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그로부터 몇 년 전 몸이 아파 병가를 낸 뒤 치료 목적으로 시작한 운동에 재미를 붙여 우연히 대회를 나가게 됐고 수상까지 하게 된 것이다.


근육을 만들기 위한 운동을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근육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살이 찢어지는 아픔을 수백 수천번 견디는 노력이 이어져야 겨우 작은 근육이 붙는다. 그나마도 운동을 하지 않으면 없어져 버린다.


그래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가운데 꾸준히 운동을 하고 몸을 만든 성실함과 노력이 존경스러웠다. 가깝지 않은 관계이고 다소 늦게 알려진 소식이라 축하의 말을 건넬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의외의 말들이 들려왔다.


"퇴근하고 녹초가 돼 집에 가면 자기 바쁜데 체력도 좋네", "저럴 시간이 있나? 시간이 남아도는 구만", "일만 해도 죽겠는데 팔자 좋네" 타인의 회사 밖 성취에 쏟아지는 비아냥에 처음엔 고개를 갸웃거리다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회사 밖 성취가 태업의 증거인 양 말하는 사람들이.



"저는 부럽기만 한데요. 저렇게 근육 만들려면 얼마나 힘든데요. 자기 일도 똑 부러지게 하면서 정말 대단해요" 이어지는 험담에 신물이 나 쏘아붙이곤 그에게 어색하게 축하의 마음을 전했다. "좋은 소식 들었어요. 늦었지만 축하드려요" "축하받을 수 있는 일인가요? 대회에 괜히 나간 건가 싶네요"


몸이 아파 병가까지 낸 그는 운동을 하며 건강이 호전되는 경험을 한 뒤 중독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운동에 천착했다고 했다. 야근을 하고 퇴근한 날도 회식을 한날도 이를 악물고 운동을 했다고 했다. 추억 삼아 참가한 피트니스 대회에서 순위권에 들 줄 알았다면, 그래서 회사에 알려질 줄 알았다면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험담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꽤 긴 병가를 마치고 돌아온 그를 배려해 회사는 상대적으로 업무가 적은 부서에 그를 배치했었다. 격무부서에서 일하는 이들은 그의 모습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라고 했다.


하지만 그를 상대적으로 업무가 적은 부서에 배치한 것은 인사권자의 결정이다. 그가 해당 부서에서 태업을 한 것도 아니다. 내가 아는 한 그는 그 부서에 어느 부서원보다 열심히, 다른 구성원보다 곱절 이상은 일했다.


입사 후 줄곧 격무부서를 전전했던 나도 상대적으로 수월한 부서 생활을 이어가는 그가 샘났던 적이 있다. 그러나 수개월 병가를 낼만큼 아프고서야 돌아오는 그런 인사를 원할 순 없지 않은가. (모두는 아니겠지만) 그런 그에게 "팔자", "남아도는 시간과 체력"을 운운하며 그의 회사 밖 성취를 폄훼하는 것이 맞을까.


퇴근하고 하고 싶은 일 하겠다는데


짧지 않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은 많은 사람들이 (내 경험상으로는 다수의 이른바 '기성세대'들이, 일부 이른바 '젊은 꼰대'들이) 회사 밖 성취를 유독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자녀의 진학 정도가 부러움을 사고 함께 축하받는 유일한 회사 밖 성취였을까(이를 개인의 성취로 봐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취급하더라)


되돌아보면 일을 할 때 취미생활을 '감히' 할 생각을 못했던 건 물리적 시간과 체력이 허락하지 않기도 했거니와 '일을 제대로 안 하고 시간과 체력을 비축해 취미 생활하는 태업자' 취급을 당하기 싫었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였던 것 같다.


퇴근 후 자기 시간을 알뜰하게 사용하고 거기서 얻은 성취감과 긍정적 에너지로 더 일을 잘할 수도 있을 텐데. 일부 기업이 직원들의 취미활동에 금전적 지원을 하는 건 그 기업이 자애로워서가 아니라 직원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닌가.


뒤늦게 후회되는 일이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험담을 하는 사람들의 면전에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퇴근 후 자기 시간 쪼개서 열심히 운동한다는데 무슨 상관들이세요? 오지랖 떨 시간과 체력에 자기일이나 신경 쓰시죠"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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