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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평화 Feb 06. 2018

명함없이 산다는 것

직장과 지연과 혈연, 학연의 옷을 벗고 거울 앞에 선 생경함

저와 고향이 같으시네요,
아버지와 고등학교 동문이세요,
직속 선배님으로 잘 모시겠습니다

일하면서 지연과 혈연, 학연을 참 많이 팔아먹었다. 이전에 하던 업무에서 네트워킹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보니 지연과 혈연, 학연을 빌미(?)로 친한 척을 하며 관계를 시작하는 것이 가장 쉬운 길이었다.


집안 사정으로 어린시절 전국을 누비다 보니 태어난 지역과 유치원(2곳)과 초등학교(3곳),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닌 지역이 모두 달랐다. 부산에서 시작해 서울로 쭉 올라오는 궤적(?)을 거쳐서인지 누구를 만나도 '저 거기서 살았는데'라며 안면을 텄다.


다녔던 학교가 10곳에 육박하다 보니 당연스럽게 동문주장(?)을 하기도 쉬웠다. 같은 지역에서 학교를 졸업한 사람을 만날 때면 '같은 지역에서 학교를 나왔으면 다 동문이죠', 같은 학교를 졸업한 사람에게는 '직속 선배님으로 잘 모시겠습니다'라고 능청을 떨었다. (대단한 학교들을 다녔던것도 아니다)


즐기지도 않는 야구와 축구의 지역구단을 공부한 뒤 '저 그 지역 구단 팬인데요'라며 너스레도 떨었다. 부산 사람을 만나면 '혹시 야구 좋아하세요? 전 롯데인데요' 라는 식으로.


아버지와 어머니, 친가와 외가의 인맥을 총동원하는 것도 다반사. 아버지와 어머니의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졸업년도를 외워서 '아버지의 동문', '어머니의 동문', '큰아버지의 동문'식으로 엮고 엮어 징검다리를 만들어 네트워킹의 기반으로 삼았다.


상대는 주로 내가 속한 회사의 지인과의 관계로 맞장구를 쳤다. "아무개는 잘 계시지요?" 내가 A회사에 속한 아무개여서 만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대표격은 아닐지라도 'A회사 부품1'로 그들을 만난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관계를 맺고 환심을 사기 위해 부던히 애썼다.


일터에서 나온 뒤 명함을 쓸 일이 없어졌다. A회사 소속 아무개로 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명함을 건네며 지연과 혈연, 학연으로 씨줄과 날줄을 엮어 짜기 시작하는 관계역시 사라졌다.


처음에는 이런 관계가 좀 낯설기도 했다. 통성명부터, 나이, 사는 곳까지...실은 프라이빗한 것이지만 명함교환을 매개로 관계를 맺기 시작할때 한없이 쉬원던 상대에 대한 정보 취득이 느리고 더뎠다.

돌아보면 실은 명함 교환으로 시작된 나의 인간관계는 대개(모두는 아닐지 몰라고 상당수)는 얇게는 짜여지지만 깊게는 짜여지지 않았다. 원래 내 모습이 아닌 상대가 원하는 나의 모습을 엉성하게 실로 꼬아서 만들어낸 관계이기 때문일 것이다. 10년 직장생활을 하며 하루 6시간 이상 잠잔 날을 손에 꼽고, 일주일에 3일 이상은 술을 마시며 만든 '귀한 인맥'이라고는 생각했었다.


그런데 일터떠나고 보니 그들 중 상당 수에게 나는 'A회사 소속 아무개'가 아니면 연락할 필요도, 만날 필요도 없는 사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아는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00명 중 1~2명, 혹은 1000명 중 1~2명은 진짜 인생의 선후배로 삼을만한 사람도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런 성품을 지닌 실력자들은 조직 내에서 가장 높은 자리까지는 올라가지 못하더라. 헬조선의 아이러니이자 불행이다.


일터를 떠나서 만나게 된 사람들은 명함교환을 시작으로 맺어진 관계들이 아니다. 인문학 스터디나 강습 등을 매계로 맺어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어느 조직 소속이고,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부모님은 어떤 분들이며, 어떤 학교를 졸업했는지, (적어도 당분간은) 관계맺음의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다만 얼마나 책을 열심히 읽고 깊은 고민을 했는지, 얼마나 열심히 (운동이나 악기) 연습을 해 성장한 모습을 보이는지가 그들이 나를 판단하는 척도다. 혹은 내가 보여졌던 언행을 통해서 그들이 느끼는 나의 인품 역시 그들이 나를 판단하는 잣대일 것이다. 나의 고향과 나의 학력은 그들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다. 나 역시 그렇다.

"한국에서 내가 조금 더 편하게 살 수 있었던 조건들, 출신 대학이나 네이티브라는 것, 모두 다 안녕" 얼마 전 남편의 이직으로 미국으로 떠난 친구에게 미국 생활을 물었다. 짧지 않은 대화를 요약하자만 워라밸(일과 삶의 조화)을 위한 미국행은 '내가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었던 조건'을 맞교환하며 얻어진 것이라는 일갈이었다.


어쩌면 내가 그간 명함을 건네며 보였던 나의 직장 고향, 가족과 학력에 대한 정보는 '내가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었던 조건'들이었을지 모른다. 동시에 나를 조건 안에 가두는 요소가 됐을수도 있다.


명함없는 삶을 시작하며 지금 만났던 사람들에게는 지금까지 나와는 다른 나, 좀 더 느긋하고 관대한 나로 관계맺음 하고 싶다. 좀 더 편하게 관계를 시작할 수 있는 명함은 사라졌지만 느리더라도 천천히 깊게 말이다. 회사와 고향, 가족, 학력을 뺀, 발가벗었지만 빛나는 내 모습 그대로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은 욕심도 함께 생긴다. 쉽진 않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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