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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평화 May 30. 2018

잘 시키는 사람 vs 잘 시켜먹는 놈

작은 배려가 업무 효율성을 높인다는 것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부장 A는 다혈질로 소문이 자자한 사람이었다. 심사가 뒤틀리면 사람을 숨 막힐 때까지 몰아가는 것은 기본이고 뻥 뚫린 사무실에서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는 것도 예삿일이었다. 팀원 중 '짬이 찬' 이들 중 A와  싸우다 눈길도 섞지 않을 정도로 관계가 틀어진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신입들은 '여자화장실'을 안식처처럼 드나들며 눈물을 훔쳤다.


A는 밤낮 없는 지시로도 유명했다. 밤 10시고 11시이고 불쑥 전화를 걸어 '당장 업무 처리'를 지시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했다. '경로우대 사상'도 투철했는데 밤이나 새벽에 (본인 판단에) 시급한 업무처리를 해야 하는데 담당자가 차장급이나 부장급이면 하급직원에게 "니가 대신 업무를 처리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부장 B도 다혈질로는 회사 내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사람이었다. 소리를 지르거나 욕을 하는 광경은 종종 목격됐다. 술에 취해서 부서원에게 주사를 부리는 것은 '애교'수준(?)이고 전화를 걸어 주사를 부리는 경우도 있었다.


주말에 부서원에게 갑자기 전화를 걸어 업무처리를 종용하던 B에게 부서원이 "상견례 중이라서 당장은 힘들고 식사 자리가 끝나는 대로 처리하겠다"고 말하자 언성을 높이며 "왜 나를 나쁜 사람을 만드냐"며 적반하장 격으로 화를 낸 일화는 알만한 사람은 아는 일화다.


부장 C는 예의바르고 차분한 사람이었다. 그가 언성을 높이는 장면을 본 사람들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온화한 사람이지만 부적절한 지시가 내려오면 '총대를 매고' 임원들을 설득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판단하기에 부적절한) 지시가 철회되지 않으면 본인선에서 처리하려고 했다는 전언이다. 격무부서 팀장을 연달아했지만 직원들 사이에서 "일은 힘들지만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좋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성품은 훌륭했지만 C와 함께 일하는 것도 쉬운 일만은 아니었던것 같다. 급한 업무라며 새벽이고 밤이고 주말이고 일을 시키는 건 다른 부장들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업무지시를 할 때 "오늘 고생 많았는데 하나만 더 부탁 좀 하려고 하는데...", "퇴근하고 쉬는데 정말 미안한데...", "이른 새벽에 이런 전화해서 미안한데...", "주말에 쉬고 있을 텐데 면목이 없는데..." 등이 '쿠션'이 더해졌을 뿐이다.


A, B, C는 10년 가까이 사회생활을 하며 적지 않은 조직들을 경험하면서 직접 경험하거나 멀지 않은 거리에서 지켜본 부장들의 모습이다. 이들을 보면서 심심치 않게 리더(leader)의 자질에 대해 생각했다. 자질이 없는 사람이 팀장이나 부장이 될 순 있겠지만, 자질이 없는 사람은 사람들을 이끄는 리더는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A와 B의 부서원들이 "내가 평가를 못 받더라도 저 부장 성과가 좋아지는 일은 안 하겠다", "시키는 일에서 1만큼이라도 더 하나 봐라"라는 말을 하는 장면을 종종 목도했다. 나도 비슷한 성향의 팀장이나 부장과 일할 때 비슷한 말을 습관처럼 했다. 반면 C의 부서원들은 "일이 많아서 힘들다"는 이야기는 했지만 "부장 미워서 일을 엉망으로 할 것"류의 말은 돌지 않았던 것 같다.


C가 업무지시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영리함'이라는 단어를 여러 번 떠올렸다. 다른 부장들처럼 출근 전 새벽과 퇴근 후 밤, 주말 등에 업무지시를 하면서도, 업무지시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설명하고, (가장 중요한 지점은) 미안한 마음을 적극적으로, 그리고 여러차례 표현하면서 업무지시를 (적어도 머리로는) 수용하만들기 때문이다.


아무리 성인군자라도 해도 과중한 업무지시에 불만이 나오지 않을 수는 없다. 다만 과중한 업무지시를 하는 이가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마음이 느껴지고, 본인은 부서원들보다 더 많은 업무를 껴안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래. 저 부장도 회사 직원이지. 어쩌겠어"라는 마음과 함께 울며 겨자먹기 식이긴 하지만 업무를 처리하게 되는 것이다.


C를 보며 처음엔 '성품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어 '일을 잘 시키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가 조금 무섭기도 하다. (무섭게 유능한 관리자라는 의미다) 불만이 있지만, 입으로 불만을 표출하기를 머뭇거리게 만드는, 어쩌면 C야말로 A, B를 넘어서는 '착취 전문가'일지도 모른다.


업무지시의 절대량만 비교하면 C가 A, B에 비해 적지 않다. 아니 오히려 많아 보인다. A, B의 업무지시에 부정적 감정이 섞여있긴 하지만 총량으로 보면 C보다 적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감정이 상하면 상처받은 감정을 회복하는 만큼 에너지를 쓰게 되고 그만큼 업무에 사용할 에너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A, B는 '일을 시켜먹는 놈'이지 '일을 시키는 사람' 취급을 받을 수 없다.


A, B, C의 업무지시스타일 차이는 성격차이로 볼 수도 있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엄연히 해당 부서의 업무효율성을 좌우하는 능력차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 부서장이 부서원들과 소통하는 방식을 인사의 중요한 고려사항으로 취급하지 않는 것이(고려를 전혀 안하진 않겠지만) 어떤 이유인지 알 수 없다.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는 것이 사회인의 기본소양이 아닌 장점으로 평가되는 사회가 슬프다. A와 B, 그들과 비슷한 양태를 보이는 많은 부장님들 역시 사원과 대리, 과장 시절이 있을터인데 직급이 올라가면 '작은 배려 효과'를 잊는 것인지 애초부터 그런 인식을 갖고있지 않았던 것인지 알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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