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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평화 Mar 30. 2018

누가 부서장에게 직원을 '하대'할 권한를 줬나

업무지시권한에 인격모독권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날은 부서장 A가 주재한 첫 회식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급히 마무리할 업무때문에 다른 팀원과 시작시간보다 1시간여 늦게 회식자리에 도착했다. 일부 팀원들과 당초 공지한 회식 시작시간보다 일찍 술을 시작했던 그는 내가 도착했을 무렵에는 이미 불콰하게 취해있었다.



술을 계속 들이키던 A는 맞은편에 앉은 B에게 "나는 니들이 휴가가는게 싫다"고 포문을 열더니, 이후 한참 동안 B에게 "너는 휴가가려고 일하냐"며 질책했다. B는 부모님의 환갑을 맞아 가족여행을 가기 위해 이틀 연차휴가를 낸 상태였다. 그는 B가 억울함에 설핏 눈물을 보인 뒤에야 대화소재를 바꿨다.


C가 고기를 많이 먹지 않은 것도 A는 불만이었나보다. 그는 C에게 "너는 왜 고기를 안 X먹냐"며 막말을 이어갔다. 부서원들에게 술 강권도 이어졌다. 젠틀하기로 유명한 팀장 D가 "그만 좀 하시라"며 언성을 높인 뒤, E가 "1차는 이쯤 마무리하고 희망하시는 분들만 2차를 가자"며 '논개'를 자청한 뒤에야 그날 회식은 마무리됐다.


A는 이후에도 휴가사용자들에게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냈고, 외근이나 업무미처리 등을 이유로 회식불참의사를 밝힌 이들에게 그들이 마치 항명을 한 듯 불쾌감을 드러냈다. 물론 표면적인 이유는 업무와 조직이었다. 그는 업무가 넘치는데(물론 그에게 1년 중 업무가 넘치지 않은 날은 거의 없었지만) 휴가를 간다며, 휴가자들을 반조직적이고 이기적인 이들로 규정했다.  회식불참 역시 조직의 융합을 해치는 행동으로 취급했다.



그와 함께 일한 1년여 동안 조직원, 특히 부서장(상사)의 권한에 대해  자주 고민했다. 부서장인 그는 부서원들에게 적절한 지시를 할 권한이 있다. 개별 부서원들의 업무 성과의 총합인 부서 성과에 대한 책임을 그가 지는만큼 그에게는 부서원들이 더 좋은 성과를 내도록 지시할 권한이 있다. 이는 모든 상사에게 부여된 권한일 것이다.


하지만 상사의 권한이 모든 인간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인류사의 보편적인 원칙과 현행법이라는 테두리를 넘어 설수는 없을 것이다. 그에게 업무와 성과를 위해 조직원들에게 특정한 지시할 권한은 있지만 고성이나 막말, 욕설 등 인격을 모독하며 하대할 권한까진 주어지지 않았다.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연차휴가 사용권한을 막을 권한은, 음주를 강권권한 등은 더더욱 없다.


설령 그의 주장대로 그것이 조직과 성과를 위한 행위일지라도 조직의 논리가 상위 가치인 현행법과 천부인권을 넘어설순 없다. A는 모든 사례를 보여주는(?) 극단적인 사례였지만, A 외에도 다양한 상사들로부터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 이상의 무엇을 가졌다고 착각하는 듯한 모습을 보았다.



A는 부서장이 된지 1년여만에 사실상 '경질'형태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는 자신의 고압적인 부서운영 방식에 대한 불만이 제기될때도 "더 잘해보자는 것인데 조직원들이 그런 뜻을 몰라준다"며 되려 조직원들을 탓했고, 경질된 뒤에도 주변에 억울함을 토로했다고 한다.


그럴 기회는 없을테고, 일부러 그런 기회를 만들 의사도 전혀 없지만, 혹시 술자리에서 우연히 그를 마주할 기회가 생긴다면 술의 힘을 빌려서(마치 만취해 이야기하는 듯) 꼭 말해주고 싶다. "누가 당신에게 우리를 하대할 권한을 주었냐"고. "업무지시권한에 인격모독권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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