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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평화 Mar 15. 2018

'꼰대'가 되기 싫은 '끼인자'의 몸부림

상사와 멀고픈 마음을 담아 후배와 거리두기...가끔 서운해도 견뎌야지

우리가 당하면서 싫었던 짓은 하지 말자


입사 2년 차, 첫 후배를 받기 전 동기들과 함께 강릉여행을 갔다. '첫 후배를 받기 전 심기일전하자'는 핑계였고, 강릉 수산물 시장에서 회를 양껏 먹고 숙소로 들어와 "먹고 죽자"며 술도 '때려 마셨'다.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널브러져 잠이 들었다.


해가 중천에 떠서야 좀비 꼴로 일어난 우리는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식당에 몸을 질질 끌고 들어갔다. 생각나지 않는 생선이 들어간 매운탕을 먹으며 말했다. "후배가 들어오면 어떻게 하지?" "당하면서 싫었던 짓만 하지 말자" 그렇게 '강릉 결의'를 맺었다.


오래전 기억이라 정확하진 않지만 크게 3가지 정도를 약속했던 것 같다. 회식자리에서 술을 강권하지 말자, 모욕적인 언사를 하지 말자, 칭찬은 공개적으로 질타는 개인적으로 하자 등이었던 것 같다. 당사자(후배)가 아니니 내가, 우리가 이 약속을 지켰는지는 실은 자신이 없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불콰하게 취해 술을 강권했을 수도, 모욕적인 언사를 했을 수도 있어서다.


언제 같이 밥 먹을까요?


다만 이런 과정을 통해서 '내가 당했을 때 싫은 행동은 남에게 하지 말자'는 생각이 강고해진 것 같다. (행위가 생각을 100% 따라가지 못했을 지라도) 나이가 어리고 연차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다짜고짜 말을 놓는,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는 상사들이 싫어서 함께 일하며 오래 본 후배가 아니면 말을 놓지 않았다. 조우했는데 할 말이 없어하는 게 분명해 보이는 연애, 결혼, 출산 등 사적인 질문은 하지 않았다.


후배가 먼저 구체적인 날짜를 꼽으며 함께 밥을 먹자고 하지 않으면 식사 요청도 하지 않았다. "밥 한번 먹자"라는 상사의 의례적인 질문에 "네"는 '답정너'이기 때문이다. ('Yes'가 수락이 아닌 셈이다) 그래서 후배가 "밥 한번 먹어요"라고 할 때도 "그러자"고 넘겼다.


상대가 "언제 먹을까요? 날짜 주세요"라고 되물으면 그제야 다이어리를 열었다. 후배의 의례적인 인사말에 (상사인) 내가 덥석 응해서 상대가 당황할까 봐 후배에게 먼저 "밥 한번 먹자"같은 의례적 인사도 피했다. (되돌아보면 '밥 얻어먹기 드럽게 힘든 인간'이었을지도 모른다) 가까운 사람들에겐 이런 이야기도 종종한다. 후배가 "언제 밥 먹으실래요?"가 아니면 "밥 한번 먹어요"는 밥 먹자는 요청이 아닐 수도 있다고


요즘 애들은...아차차...


내가 상사와 거리두기를 하고 싶었던 마음을 담아 후배들과 일종의 거리두기를 했다. 되돌아보면 이른바 '꼰대'가 되기 싫은 '끼인자'의 몸부림이었던 것 같다. 다만 연차가 쌓여가면서 후배들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나름대로 노력하는데 후배들이 이런 노력을 몰라주는 것 같다',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밥 먹자는 이야기를 안 하', '내가 일할 때보다 근무환경은 훨씬 좋아졌는데, 본인의 일까지 나한테 떠넘기면...' 입밖에 내놓은 적은 없지만 서운함이 드는 날들이 있었다. 그러다 서운함이 '요즘 애들은...'까지 이르면 '아차차...'하며 마음속에 'DEL'키를 눌렀다.


상사와 밥을 먹지 않고, 친한 후배나 동기와 밥을 먹고 싶은 마음은 내가 신입시절 늘 들던 마음이었다. '내가 일할 때는'으로 시작하는 일장연설은 상사들에게 가장 듣기 싫은 레퍼토리였다. '요즘 애들은'으로 시작되는 훈계도 '시대가 바뀌었는데'라는 말 못 할 반감으로 이어졌는데. 나도 '젊은 꼰대'가 되어가는 건가. 헛웃음이 났다.


다만 막내를 벗어나 상사와 막내 사이에 '끼인자'가 되고 보니, 그렇게 멀리하고 싶었던 상사들의 마음을 아주 조금은 알 것 같다. 너무 싫었던 술 권유와 사생활 묻기가, 그들이 유일하게 아는 '거리 좁히기' 방법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내가 서툰 그 손길을 그저 뿌리치려고만 했던 것은 아닐까. 아직도 그 방법이 좋은 관계맺기의 방법이라곤 생각하지 않지만, 문뜩 그들이 조금 측은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험해본 막내의 마음은 통감하지만 경험해보지 못한 상사의 마음은 '이해'를 넘어선 '공감'으로 가기까지 못하고 있다. '동병상련은 있지만 역지사지'는 없다고 했으니까.


아직은 상사보단 막내에 가깝고, 입보다는 귀를 많이 쓰는 '끼인자'이기 때문일까. 끼인자인 나는 상사에게도, 막내에게도, 섣불리 다가가 말하고 행동하지 못한 채 '젊은꼰대'가 되지 않겠다는 일념 하에 열심히 몸부림만 치고 있다. 세상살이 참 고되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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