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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평화 Feb 21. 2018

나는 내가 술자리를 좋아하는 줄 알았다

10년 만에 술자리 참석의 자유를 찾고서야 진심을 알게 됐다

통금은 밤 10시다

대입 합격을 통보받은 뒤 아빠가 말했다. '통금은 10시다' 학교에서 집까지는 대중교통으로 1시간 반에서 2시간이 걸렸다. 10시까지 집으로 오기 위해서는 저녁 8시면 술자리에서 일어나야했다. 아빠가 말할때는 몰랐다. '10시 통금'의 의미를.



대학에 입학한 후에야 알게됐다. 통금 10시의 위엄(?)을. 6시에 술자리가 시작된다고 해도 이런저런 이유로 늦게 합류하는 사람들을 감안하면 8시는 술자리가 시작할 무렵이 아닌가. '자정 넘긴 귀가→불호령→반성→자정 넘긴 귀가'라는 쳇바퀴가 30바퀴 정도 굴러갔을 무렵, 부모님께서는 12시로 통금시간을 늦추셨다. 그제서야 아슬아슬하게 통금시간을 지킬 수 있게 됐다. (물론 그 통금도 스물스물 어기기 시작한뒤 어느새인가 깨졌지만)


처음 입사한 회사에서 사수는 '10번 만난 사람이 1번 같이 차를 마신 사람만 못하고, 100번 같이 차를 마신 사람이 1번 술을 같이 마신 사람만 못하다'는 말을 '인생 꿀팁'이라며 알려줬다. 대학 시절은 실로 꿀팁이 제대로 먹히던(?) 때였다.


술 한 번만 마시면 생전 처음 본 동기, 선후배라도 급속히 '친구', '형', '동생'을 먹으며(?) 친해졌다. 술집의 어색한 공기는 이내 경쾌함으로 바뀌었다. 성인에게만 허락된 음주의 자유가 좋았다. 제가 마음에 든 여학생이 더 낫다며 입씨름을 하는 동기들의 투닥거림이 귀여워 좋았고,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해 일장연설을 하는 복학생들도 그냥 좋았다. 나는 그때 술자리가 참 좋았다.


야~ 너는 안 마시냐

두 번의 술자리를 빼곤 대학시절의 술자리는 빛바랜 사진처럼 따뜻하고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한 번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OT)을 갔을 때다. 큰 대접에 소주와 맥주를 가득 부어놓고는 같은 방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하나씩 넣고 싶은 것들을 넣었다. 과자나 마요네즈, 초장같은 음식물은 약과였다. 누구는 신고 있던 양말을, 누군가는 침을 뱉았다. 그것을 같은 방에 앉은 동기들이 함께 마시는 것이 '동기애(愛)를 나누는 의식'이라고 했다.



구역질이 올라왔지만 술인지 무엇인지 모를 '저것'을 먹어야 대학생이 되는 줄 알았다. 대접을 다 마시고 나니 '선배라는 사람들'이 방으로 들어와 다시 술을 권했다. "야~ 너는 안 마시냐?" 술을 안 마시는 친구는 책망을 당했고, 잘 마시는 친구는 칭찬(?)을 받았다. '선배가 권하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 하늘이 무너진다'는 룰(rule)에 의문을 품을때 쯤 OT가 끝났고, 나는 우리집 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다른 한 번은 동아리 술자리였다. '신입생 환영식'이라는 제목으로 열린 자리였지만 '선배가 권하는 술을 거절하는 신입생'은 환영받지 못하는 자리였다. 선배는 '하늘'이었고 하늘이 권하는 술은 감히 거절하면 되지 않은 '신성한 무엇'이었다. 권하는 술을 마시다 보니 10잔, 20잔...아침에 깨어보니 엄마가 한심한 듯 나를 바라보던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2번의 술자리를 제외하곤 술자리는 대체로 즐거웠던것 같다. 근황토크, 러브스토리, 어설픈 유머가 신났다. 술을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지 않았고, 쉽게 술에 취하지 않는 체질은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나의 몇 안 되는 '자랑거리'였다. 취준생 때 '주량이 얼마나 되나'는 물음엔 "재면서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호기롭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안 마시냐?

술을 좋아했었다. 술자리도 좋아했었다. 그런데 직장인이 된 뒤 그 술이, 술자리가 참 힘들었다. 하급직원에게 회식참여의 선택권은 없었다. 귀가의 자유도 없었다. 말없이 고기를 구으며, 계속 돌아오는 술잔을 비우기만 하다보면 서너잔에도 머리가 핑 돌기 일쑤였다. 업계 관계자들과의 술자리도 예외가 아니었다.


"안 마시냐?" 술잔을 부딪힌 뒤 술이 남아 있는 술잔을 보면 책망인듯 책망아닌 책망같은 선배의 호령이 떨어졌다. 어느 포인트에서 웃어야 할지 모르는 '아재개그'는 양반, 감옥의 담장을 넘나드는 성희롱이 '19금 개그'를 빙자해 뿌려졌다. 찾아가던 술자리는 피하고 싶은 자리가 됐지만, 피할 수 없는 자리가 됐다. 선택이 거세된 술자리는 즐거움이 아닌 고행이었다.


그래도 좋은 동기들과, 선후배들과 술자리를 할때는 '내일이 없는 사람들인냥' 술을 마셨다. 토학질에 가깝게 뒷담화를 하고 불콰하게 취해 술자리를 나서면, 좀 후련했다. 매번 다음날이면 아픈 속을 부여잡고 '어제 미쳤지'라고 후회를 하곤 했지만.


아프다고? 알콜로 소독해야지


여러번의 번아웃과 응급실행 끝에 휴직을 하고서야 겨우 술을 끊었다. '원하지 않을때 술을 마시지 않을 자유'를 얻었다. 의사는 "치료하는 동안에는 술을 마시지 말라"고 권했고, 저녁자리에 술이 올라오면 "마시면 안 된다"고 말할 수 있었다. 휴직 후에 얻은 '귀한 자유'였다.


회사를 다니던 때, 장염이나 역류성 식도염때도 의사는 "다 나을때까지 술을 마시지 말라"고 권했다. 하지만 술자리에만 가면 "알코올로 소독해야 더 잘 낫는다", "나도 장염 걸렸을때 술을 마셨다"며 강권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달아오른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까, 선배의 눈치가 싫어서 술을 마셨었다. 휴직을 하면서 그런 술자리들에 더이상 가지 않아도 됐다. 술자리를, 술마심을 드디어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휴직을 한 뒤 한달 넘게 술자리를 가지 않다가 오랜만에 은사님같은 분들과 저녁자리가 생겨서 참석하게 됐다. 맥주 한 잔을 들이켰는데 머리가 핑 돌았다. 맥주 2잔을 마시고, 자정까지 그동안 밀린 이야기를 나누다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술이 올라 더 따뜻하게 느껴졌던 그 자리가 좋았고, 술을 진탕 마시지 않아도 즐거웠던 그 시간이 좋았다.


나는 술이, 술자리가 좋았던 것이 아니라 '어울림'이 좋았던 것 같다. 좋은 사람들과 술을 매개로 시간을 보내며 이야기를 나누는 그 자리가 좋았던 것이다.  술자리가 아니더라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차를 마시거나 빙수를 먹을때도 나는 행복했다. 무엇을 하는가보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이 내게는 더 중요했다.


'10번 만난 사람이 1번 같이 차를 마신 사람만 못하고, 100번 같이 차를 마신 사람이 1번 술을 같이 마신 사람만 못하다'는 사수의 말은 틀렸다. 1번 술을 같이 마신 사람보다 10번 차를 함께 마신 사람이 낫고, 1번 차를 같이 마신 사람보다는 10번 만난 사람이 낫다. 나는 술자리 보다 어울림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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