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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평화 Feb 14. 2018

입사 후 9년만에 첫 명절기차를 타다

일을 쉬고서야 명절에 출근없는 '보통의 명절'을 맞다

입사 후 한 번도 명절기차를 타 본 적이 없다. 명절 중 당직이 걸릴지 안 걸릴지, 만약 일을 한다면 어느날 할지, 명절기차표 예매 시점에 안 적이 없기 때문이다.


탈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기차표를 예매하기 위해 새벽부터 명절기차표 예매전쟁(?)에 뛰어들 에너지가 없었다. 하긴 휴일에도 못쉬고 근무하기 일쑤인데 명절이라고 다를리 없는게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입사 첫 해에는 멋 모르고 기차표 예매를 했었다. 하지만 예매한 기차표를 사용하기 쉽지 않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됐다. 명절 중 하루 이상 당직을 서거나 출근을 했다. 아니면 명절 도중 재택 근무를 하거나. 입사 9년 내내 그랬다. (20회에 육박하는 명절 중 1~2번 정도는 근무를 안 했을 수도 있는데...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그랬던 명절이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명절기차를 탈 가능성이 낮으니 애써 기차표 예매를 시도하지 않았다. 명절에 임박해 틈나는 대로 취소 기차표를 찾거나 버스표를 찾았다.


운좋으면 이삭줍기(취소 기차표 줍기)에 성공하기도 했다. 차를 이용해보기도 했지만 못할 짓이었다. 서울에서 출발해 대전을 지나면서부터 허리가 뻐근하기 시작하더니 도착할때쯤엔 허리가 끊어질듯 아팠다. 나름 타협책을 찾았다. 명절 전후 귀향이 패턴처럼 굳어졌다.


"올 설 명절 기차표는 1월 16일 오전 6시부터 시작됩니다" TV에서 나오는 뉴스소리에 귀가 쫑긋했다. '올해는 명절기차표를 예매해야겠다! 일 안하니까 예매만 성공하면 명절기차를 탈 수 있다!'


16일 오전 5시30분, 알람소리에 잠이 깼다. 찬물로 세수를 했다. 자칫 실수로 기차표를 예매하지 못하면 안 되니까. 5시 58분부터 코레일 홈페이지를 1초마다 새로고침했다. 6시에 '드르르륵(이런 소리는 안 났는데 부팅이 느려서 이렇게 느껴졌다)' 예매의 문이 열렸다.


5시59분59초에 새로고침을 했는데 1934명이 대기중이었다. 초초했다. 결과적으론 원하는 시간에 기차표를 예매할수 있었다. SNS에 속속 설기차표 예매 성공인증샷이 올라왔다. 나도 올렸다.


기뻤다. 설기차표를 예매해서. 예매한 기차표를 쓸수 있어서. 명절에 출근하지 않아도 되어서. 다른 사람들이 출근하지 않는날 나도 출근하지 않아서. 명절, 출근길 막히지 않는 시내를 보며 씁쓸해하지 않아도 되니.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남들 출근할때 출근하고, 남들 쉴때 쉬는. 사회생활 10년차, 사회인이 되기 전 내가 생각했던 평범함이 어쩌면 특별함일지, 생각해봤다.


첫 명절기차 탑승을 앞두고 가슴이 두근거린다. 어떨까. 귀향을 앞둔 이들의 얼굴은. 서울역의 분주함은. 기차를 가득채운 설렘의 온기는. 기대된다. 명절기차. 9년 만에 처음 타는 명절기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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