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평화 Feb 26. 2018

가족같은 회사요? '오지랍' 친척모인 명절분위기 그만

잦은 회식과 아무말 대잔치 질문...회사는 회사같으면 안 되나요?

우리 조직은 가족같은 분위기다



신입사원 환영회를 겸한 회식자리에서 팀장이 자랑스레 말했다. "우리 회사는 다른 회사랑 다르다. 구성원들 간 관계가 끈끈하고, 따뜻하다. 가족같은 조직이다"


회식자리에 참석한 다른 선배들도 '가족같은 분위기'를 조직의 여러가지 장점 중 하나로 꼽았다. 입사한 뒤 9년 동안 회사에서 가장 많이 들은(한) 건배사 역시 '가족같이'이였다.


가족...이 말은 내게는 생각만해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말이다. 부모님은 나와 동생에게 '하라는 것'보다 '해주고 싶은 것'이 더 많은 분들이었다.


세상사람 모두가 손가락질 해도 '언제나 내 편'인 이들이 바로 가족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가족같은 조직'이라는 말이 처음에는 참 좋았다. 물론 가족같은 조직이 얼마나 다층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를 아는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가족같은 조직답게(?) 참 회식이 많았다. 첫번째 부서는 월요일과 목요일 저녁마다 회의를 했는데, 그때마다 회식을 했다.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회식을, 신입사원 교육이 끝나면 회식을, 옆부서 부장이 밥을 사준다며 회식을, 그 옆부서 부장이 밥을 사준다며 회식을...같이 밥을 먹으며 '식구(食口)'가 되는 과정이라고 했다.


가족같은 조직답게(?) 서로에 대해 (특히 사생활에 대해) 지나치리만큼 관심이 많았다. 가족관계는 기본이고 집주소, 연애여부, 기혼자에게는 가족계획 등 참 궁금한것들이 많은 사람들이 많았다.(기억을 더듬어보면 특정 회사 특정 부서가 아니라 거쳐온 대개 조직 상사들이 비슷했던것 같긴하다)


상대의 사생활에 대한 질문이 많은만큼 자신의 사생활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했다. 파란만장한 대학시절과 자신의 신입사원시절 이야기는 기본. 눈물없이 들어서는 안 될것만 같은 결혼성사 이야기와 자녀들의 귀염퍼레이드, '나는 이렇게 내 자식을 명문대에 보냈다'는 책의 저자가 하는 강의같은 자식농사 이야기까지 버전이 끝이 없었다.


가족같은 사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의사소통에도 밤낮, 평일주말이 없었다. 새벽이고 밤이고, 토요일이고 일요일이고 '카톡'이 울려댔다. 달보고 출근해 별보고 퇴근하던 일상이었지만, 야근후 택시를 타고 가는 와중에도 카톡이 울려대면 쌍욕이 나왔다.


딸처럼 보여서 였을까. 집에서도 듣지않는 '걱정'도 참 많이 들었다. '입사 때보다 살이 많이 찐것 같은데 다이어트는 안 하냐', '피부가 너무 거칠어 진 것 같다', '파마가 다 풀리고 머릿결도 많이 상했는데 미용실은 언제가냐', '나이 더 먹으면 애낳는데 힘든데 빨리 시집가라' 등. 정작 진짜 가족들에게는 별로 듣지 않았던 이야기들.

이런 가족같은 조직이었지만, 조직, 회사에 대한 불만이 나오면 아들같은, 딸같은 직원들의 불만씨알도 안 먹혔다. 가족이라면 함께 식사를 하기 싫으면 따로 해도되고, 당연히 술도 마시기 싫으면 안 마셔도 되고, 듣기 싫은 질문이 있으면 피하거나 '듣기 싫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상하게 가족같은 조직은 '내가 불편할때는 가족이 돼야한다'고, '내가 불만을 토로할때는 조직원이 돼야한다'고 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내가 생각했던 '가족'과 회사 사람(주로 상사)들이 생각했던 가족은 다른 모습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주로 명절에 만나는 가족, 친척들을 떠올려보면 가족같은 조직 내 사람들의 행태와 놀라울 만큼 비슷하다.


(친척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평소에는 연락한번 없다가 명절때만 되면 대입과 취업, 결혼, 육아를 걱정하는 '애정표현의 행태'는 평소에 커피 한 잔 안 사다가 우연히 조우하면 애정이 듬뿍 담긴 질문을 쏟아내시는 어떤분들과 완벽하게 닮아있다.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10년 전과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아직도 회식자리에서는 '가족같이'를 외친다. 가족같았던 조직분위기가 많이 삭막해졌다는 한탄을 하는분도 적지 않게 본다.


이미 가족들과 넘칠만큼 상호작용하고 있는 나는 가족같은 조직이 좀...피로했다. 가족같분위기는 가족들과만 느끼면 안 되나, 가족같은 분위기는 당신 집에 가서 당신 가족들과 만들면 안 되나? 회사는 가족같지 않고 회사같았으면 좋겠다. 회사에서는 일만 하면 안 될까.

이전 05화 나는 내가 술자리를 좋아하는 줄 알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