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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평화 Mar 12. 2019

내 탓이 아니라는데 내 탓 같다

계류유산으로 '첫 아기'를 떠나보내며

심장이 뛰질 않네요
예상은 하셨겠지만... 수술을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침을 삼키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귀 속에서 요동쳤다. 혹시, 설마, 이런 상황을 마주한다면 절. 대.로 울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나는 내 몸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인걸. 하긴, 지난 한 달 동안 나는 '내 몸을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실은 이런 생각이 택도 없는 오만이라는 사실을 절감했지. 아... 나는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내 마음도 마음(이성 또는 의지)대로 하지 못하는 인간이었네. 나는 망각의 동물이다.


슬픈 상황에 직면하면 드라마 속 여주인공처럼 볼에 '또르르' 눈물이 흐르면 얼마나 좋을까. 쉴 새 없이 콧물을 빨아대던 내게 의사 선생님은 책상 위에서 티슈 한 장을 톡~하고 뽑아서 건넸다. "이런 말이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시기에 '계류유산(임신은 되었으나, 발달 과정의 이상으로 아기집만 있고 태아가 보이지 않거나 사망한 태아가 자궁에 잔류하는 상태)'은 정말 흔해요. 그리고 이 말 꼭 명심해요. 누구 잘못도 아니라고. 수정되는 과정에서 염색체 이상이 발생하는 거니까"


엄마 탓도 아빠 탓도, 누구 탓도 아니에요

주치의 선생님의 면담을 마치고 수술 일정을 잡기 위해 상담실로 들어갔다. 이런 상황이 처음은 아니실 테지. 간호사 선생님이 뽑아둔 티슈를 손에 쥐어주자 (코는 나왔지만 남(?) 앞에선 보이고 싶지 않았던) 눈물이 터졌다. 마음이 와. 르. 르 무너졌다. "이런 말 괜히 하는 게 아니라, 계류유산 정말 흔해요. 위로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차라리 잘 된 것 일지 몰라요. 아기가 (배 속에서) 한참 더 커서 아픈 걸 발견하면 얼마나 힘들까. 원래 아주아주 약한 아이였고, 더 건강한 아기가 오려고 이러는 거야. 자책하지 말고, 천천히 기다리면 어느새 와 있을 거예요"


간호사 선생님께서 준비하신 티슈를 다 썼을 그때쯤, 아니 대기실에 적지 않은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음을 인지한 그때쯤 상담실을 나온 나는 수술일정을 잡고 병원을 나섰다. 진료실을 나오며 '계류유산됐대요... 수정 단계에서부터 생기는 염색체 문제라고... 상담 끝나고 전화할게요'라는 문자를 남겼던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슬퍼한다고, 마음 아파한다고 현실은 바뀌지 않음을 아는 나이, "누구 잘못도 아니래" 담담하게 소식을 전하고 싶었는데 수화기 너머로 "여보세요"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지난 한 달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목이 메였다.


이름을 천하게 지으면 오래 산대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려운 임신이었다. '남의 염병이 내 고뿔보다 못하다'라고 했던가. 남들이 어떻게, 얼마나 노력하며 가슴 졸였는지 알지 못했고, 그저 내 마음고생만 커 보였다. 지난해 번아웃과 중증 우울증을 진단받은 뒤 휴직을 하고 적지 않은 기간 약물치료를 받았다. 적지도, 많지도 않은 나이에 결혼한 탓에 빨리 아이를 갖고 싶었지만 약물치료를 받는 기간 동안은 어려웠다.


치료가 끝난 뒤에도 '임신하면 없던 우울증도 생긴다'며 심리적 안정기를 가진 뒤 임신을 시도하라는 주치의의 조언으로 지난해 더위가 가시고도 한참 지난 뒤부터 아기를 가질 준비를 시작했지만 남들은(?) '손만 잡아도' 생기는 아기가 우리 부부에게는 쉬이 찾아오지 않았다. "삼신할머니가 주실 때가 되면 주신다"던, 주문 같던 남편의 말이 짜증 나다 못해 지겹고, 익숙해질 때쯤 천사가 우리 부부를 찾아왔다.


벼락처럼 찾아온 행복이 잘 실감 나지 않았다. 기다림에 지치다 못해 체념할 때쯤 찾아온 행운이었다. "이름을 천하게 지으면 오래 산대. 태명은 '개똥이'로 하자" 취업 후 일을 핑계 피로함을 핑계로 가지 않았던 성당을, 마음이 크게 아픈 뒤에야 '염치없이' 찾은 뒤 좀 살만해지자(?) 드문드문 가지 않은 그 곳. 간절한 것이 생기니 다시 성당으로 발길이 닿았다. 오랜만에 찾은 성당을 꽉 채운 '엄마들'의 모습이 새삼 눈에 들어왔다. 자녀의 건강한 출산을, 건강한 성장을, 건강한 독립을 바라며 손을 모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매일 기도했다. 이렇게 무엇인가를 간절해 바랐던 적이 언제일까. '제게 올 아기 중 가장 건강한 아기를 주신 주님, 제가 이 소중한 아기를 열 달 동안 잘 품고 건강하게 키우겠습니다. 제 뜻대로가 아닌 주님 뜻대로 하소서'라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그러면서도 걱정 많은 소심한 부부는 혹시 모를 유산에 대비해(?) 안정기인 12주가 되기 전까지는 양가 부모님께 소식을 알리지 못한 채 비밀인 듯, 비밀 아닌, 비밀 같은 생활을 이어갔다.



"이번에 오면 심장소리 들려드린다고 했잖아요... 초반엔 좀 늦을 수도 있으니 다음 주에 한 번 더 봅시다" "다음 주에도 심장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아직은 그 생각은 하지 맙시다. 주말에 이사라고 했지요? 절대 무리하지 말아요"


설마 하다가도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럴 리가 없어. 작년에 태어난 선배 아들도, 친구 아들도 태명이 개똥이였어. 내게 올 아기 중 가장 건강한 아기가 왔을 거야' 조금씩 몸을 휘감싸는 불안함을 털어내기 위해 더 먹고 더 웃었다. '개똥이가 먹고 싶다'라며 시키지 않던 음식과 간식을 주문했다. 부모님께는 말씀드리지 못했지만 '심장 소리만 들으면 바로 말씀드리라' 다짐하며 전화를 거는 장면을 머릿속에서 재생하고, 또 재생했다. 우리 동네는 첫째 출산장려금이 00만 원인데 동생이 사는 동네는 곱절도 더 되는 00만 원이라며 위장전입을 해야 할 것 같다고 웃었다. 그렇게 불안한 일주일이 지나갔다.


불길한 예감은 왜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나


미련할 정도로 둔한데, 꼭 나쁜 일에 대한 직감은 맞았다. 별 것 아닌 일에는 참 남 탓을 잘하는데, 심각한, 아니 좀 별거이다 싶은 일 엔 가슴을 치며 '제 탓이오'를 외치는 나를 다시 마주했다. 몸이 따뜻한 것이 좋다며 매일 했던 반신욕이 문제였을까(임신 초기 자궁을 너무 따뜻하게 하면 착상이 잘 되지 않는다고 한다), '한 잔은 괜찮다'며 마신 매일 마신 커피가, 말리는 남편의 손을 뿌리치고 기어이 먹었던 아이스크림 한 숟가락이 문제였을까. 임신테스트기에서 '두 줄(두 줄이 보이면 임신이다)'을 확인한 뒤 한 달 동안 했던 일거수일투족이 머리를 맴돌았다.


오만함(?)이 삼신할머니의 심기를 건든 것은 아닐까. 첫째는 남편 닮은 아들, 둘째는 딸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혹시 딸을 주신 삼신할머니께서 노하셨을까, 공주님으로 온 개똥이가 서운해서 '이런 엄마 아빠에겐 가지 않겠다'라고 마음을 고쳐먹은 것일까. 지하철에서 신발에 과자 부스러기를 흘린 아이를 성가시게 본 것이 '부모가 될 자격이 없다'라고 보셔서 아기를 데려가셨을까. 모든 것이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탓이다.


약물치료를 끝내고 임신을 시도하려고 한다고 할 때 친구가 말했다. "아기가 혹시 늦게 온다면 그건 엄마를 엄청 생각하는 아기라서 그런 거야. 내가 가면 울 엄마가 힘들 것 같으니깐 그 전까지 실컷 놀라고" 소심하고 걱정 많고 자책하는 나를 너무나 잘 아는 친구의 배려 깊은 말에 울컥했었는데, 오늘따라 그 친구가 더 보고 싶다. 놀만큼 놀았는데, 이제 와도 되는데, 엄마를 얼마나 생각하는 착한 아이가 오려고 이러는 걸까.


그래도 감사해야지. 아이가 있어도 감사하고, 없어도 우리가 건강한 것만으로도 감사하던, 그때 벼락같은 행운이 왔으니까. "기쁨뿐 아니라 시련조차 그걸 이겨내면서 얻는 것이 있기에 주시는 것"이라는 지난주 신부님의 강론 말씀을 꼭꼭 씹으며, 언젠가 부모 속 썪이는 아이를 보며 '저 원수 같은 걸 왜 낳았냐'라고 차마 말할 수 없이 날 때부터 눈감을 때까지 사랑하고 아낄 아이를 주시려고 이런 시련을 주시나 보다.


덧,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와줘서 고맙고, 엄마 아빠가 잘 품지 못해서 미안해 우리 아가. 너는 아무 잘못 없고, 다 내 잘못이야. 짧았지만 엄마 아빠에게 처음 온 너를 잊지 않고 오래 기억할게. 사랑해 우리 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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