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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집

땅바닥에 그린 그리움

by 꽃님

어릴 적 우리 동네 한가운데 학교 운동장만 한 공터가 있었다. 한쪽엔 크고 작은 벽돌들이 쌓여 있었고, 리어카 서너 대가 구석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 지금은 아파트 안에 놀이터가 있고 공원마다 놀이터가 있지만, 그땐 동네에 아이들이 뛰어놀 놀이터가 없었다. 넓은 공터나 골목길에서 노는 게 전부였다. 우리 동네 공터는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언니들 대여섯 명은 고무줄놀이를 하고 오빠들은 딱지치기를 했다. 땅바닥에 작은 밥그릇만 한 구덩이를 동서남북 방향으로 네 개를 파고, 가운데 한 개를 더 파서 구슬 놀이를 하는 남자아이들도 있었다. 나는 내 친구들과 땅바닥에 집을 그리며 놀았다. 그 시절 난 유난히 집을 그리며 노는 걸 좋아했다.


아빠가 여섯 살 때 병으로 돌아가시고, 갑자기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게 된 엄마는 지방으로 장사를 하러 가셨다가 한 달에 한 번 집에 오셨다. 일주일 정도 계시다 다시 장사를 하러 떠나시곤 했다. 나는 일곱 살까진 엄마를 따라다녀서 늘 엄마와 함께였는데, 여덟 살이 되면 학교를 가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엄마와 떨어져 외삼촌 댁에서 지내게 되었다.


한 달에 한 번 엄마가 오면 나도 엄마와 함께 우리 집으로 갈 수 있었다. 고작 일주일밖에 머무르지 못하는 집이라도 엄마와 함께하는 그 일주일이 가장 행복한 세상이었다. 하지만 꿈같던 일주일은 너무 빨리 지나가고, 엄마와 헤어지는 날엔 가슴이 무너지는 이별의 아픔을 어린 가슴이 견뎌야만 했다. 다시 혼자가 된다는 외로움이 무서움으로 바뀌고, 슬픔이 비가 되어 쏟아지는 양 눈물 콧물 범벅이 될 지경으로 울면서 엄마 목을 작은 두 팔로 꼭 끌어안고 놓질 않았다. 외숙모와 외삼촌이 엄마의 목에서 나를 억지로 떼어놓으려 안간힘을 썼고, 난 엄마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급기야 외삼촌의 강한 팔힘에 허술하게 묶였던 털실이 풀리듯 엄마의 목을 끌어안고 있던 내 팔이 맥없이 풀려나갔다. 땅바닥에서 데굴데굴 구르고 발버둥을 치며


"엄마 가지 마, 엄마 가지 마, 나도 갈래."


라고 절규하는 어린 딸을 애써 달래며 엄마는


"엄마 돈 벌어서 금방 올게. 울지 말고 외삼촌 외숙모 말씀 잘 듣고 있어. 알았지?"


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외삼촌은 우는 날 목말을 태우고 문방구로 가서는 사고 싶은 걸 모두 고르게 했다. 이것저것 사고 싶은 걸 고르다 보면 어느새 눈물은 멈추고 물건 고르는 재미에 빠져든다. 그 순간만큼은 엄마를 잊는다.


그런 엄마와의 이별을 반복해서일까. 한 달에 한 번 엄마와 함께 있었던 우리 집이 그리워서일까. 공원에서 친구들과 놀 때면 항상 집을 그리며 놀았다. 나와 친구들은 각자 자기가 살 집을 땅바닥에 크게 그린다. 대문도 그리고 집 안에 방도 그리고 화장실도 그린다. 방 안엔 침대도 그리고 거실엔 소파도 그린다. 집 앞엔 정원도 그리고 꽃도 그린다. 내 집을 다 그리면 친구들 집까지 가는 길을 그린다. 내 집까지 연결될 수 있게 그린다. 친구들도 다 그리면 내 집과 자기들 집 사이에 길을 내고 길가를 꾸미기 위해 작은 돌도 주워와 연못도 만들고 다리도 만든다. 한 명씩 집에 가서 집 구경도 하고, 놀러 온 친구에겐 집 안으로 들어오게 해서 돌접시 위에 나뭇잎 쿠키와 나뭇가지 떡을 놓고 주먹보다 조금 작은 돌을 가져와선 커피라고 내놓는다.


"어서 오세요. 은혜 엄마."


"안녕하세요. 진숙 엄마."


"앉아서 따뜻한 커피 한 잔 드세요."


"아휴, 감사합니다. 맛있게 잘 마실게요. 요즘 진숙이는 공부 잘해요?"


"네. 공부도 잘하고 상도 많이 받아와요. 호호호."


"어머 정말 좋으시겠어요. 요즘 우리 은혜는 말을 안 듣고 속상하게 해요."


친구들 각자 자기의 엄마 흉내를 내며 참 재밌게 놀았다.


땅바닥에 그려진 우리 집에 들어가 앉아 있으면 마음이 편했다. 친구들과 엄마 놀이를 하면서 멀리 떠나 있는 엄마를 곁에 둘 수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친구들이 내 엄마 같았고 내가 엄마 같았다. 내가 그린 집은 그런 것이었다. 불안과 걱정을 막아주고 투정을 부려도 다 통할 것 같은, 안심이 되고 평안하며 그냥 쉬어도 좋을 것 같은, 작은 행복 부스러기들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하나하나 스치고 만지며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는 곳, 그리고 엄마인 것이다.


현실은 부엌이 딸린 작은 방 한 칸이 전부인 집이었지만, 공터에 그린 우리 집은 세상에 둘도 없는 가장 행복한 집이었다.


나는 어느덧 어른이 되었고 어린 시절 공터에 그렸던 집이 생겼다. 지금은 기다려도 올 수 없는 엄마를 그리워하며 가슴속에 작은 집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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