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우 딸?"
"엄마아 딸. "
"누구우우 딸?"
"엄마아아 딸."
"아이, 엄마! 나 대답했는데 왜 자꾸 물어봐."
"누구 딸인지 궁금해서 그러지."
"내가 엄마 딸이지. 그럼 누구 딸이야? 저기 쌀집 아저씨 딸이야?"
가끔씩 엄마는 내게 '누구 딸?'이란 질문을 했다. 그러곤 대답할 때 내 표정을 보며 좋아하셨다. 귀찮을 정도로 여러 번 물어봐서 짜증 내고 화낸 적도 있었다.
하마터면 난 쌀집 아저씨 딸이 될 뻔했었다. 엄마가 날 임신했을 때 모두가 임신한 사실을 몰랐다. 심지어 엄마 당사자도 몰랐었다고 했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땐 병원도 잘 안 가고 집에서 아이를 낳았다고 했다. 평소 엄마는 똥배가 좀 나왔었는데 임신해서 불러오는 배는 그냥 살이 찌는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임신 막달이 되어서야 몸의 이상을 감지하고 병원을 갔더니 임신이란 얘길 듣고 무척 놀라셨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 뒤 내가 태어났다.
우리 집은 가난했다. 내 위로 2명의 오빠와 2명의 언니가 있다. 거기다 아빠는 건강이 안 좋아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내가 태어났으니 엄마와 아빠의 근심은 깊었을 거다. 옛말에 자기가 먹을 밥그릇은 가지고 태어난다고 했다는데 엄마와 아빠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마침 동네 쌀집 아저씨는 자식이 없었다. 그래서 엄마와 아빠는 내가 태어나면 쌀집 아저씨한테 보내기로 했다.
"그 집에 가면 애한테도 좋을 거야."
"돈은 있는 집이니까, 애 먹고사는 건 걱정 없을 거야."
엄마와 아빠는 서로 합의하고 날 보내기로 결정했다. 내가 우렁찬 목소리를 내며 태어났다. 아빤 문 밖에서 내 울음소리를 듣고 내가 사내아이인 줄 알았다. 날 사이에 두고 엄마와 아빤 내 얼굴을 가만히 쳐다봤다.
"날 닮았네."
눈을 꼭 감은 날 보며 아빠가 말했다.
"나도 좀 닮은 것도 같고."
엄마도 아빠처럼 내 얼굴에서 자신과 닮은 점을 찾아보며 대꾸했다.
"그냥 키웁시다. 요, 조막만 한 걸 어떻게 보내? 난 못 보내."
아빠는 힘들지만 아이를 보내면 평생 후회하며 살 거라고 날 쌀집 아저씨한테 보내지 않기로 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혼자가 된 엄마는 가끔씩 내가 쌀집 아저씨 딸이 될 뻔한 사연을 이야기해 주셨다. 그럴 때마다 나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 누구 딸이냐는 질문을 하며 꼭 안아주셨다.
"너무 예뻐서 그러지. 우리 딸."
자식을 남의 집에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한때 했다는 것만으로도 엄마는 미안함과 죄책감을 평생 가지고 사셨다.
"누구우 딸?"
"엄마아 딸."
"엄마, 나 사랑해?"
"그럼, 사랑하지."
"얼마만큼 사랑해?"
"하늘만큼, 땅만큼, 우주만큼. 사랑해!"
"나도 엄마, 하늘만큼, 땅만큼, 우주만큼. 사랑해!"
어쩌면 엄마는 이 말이 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식을 키우며 넉넉한 살림은 아니어도 좋은 것만 먹이고 예쁜 것만 입히려 했다. 서툰 표현이라도 자식의 대한 사랑을 표현했다. 예뻐해 주고 숨이 막히게 안아주며 볼과 입술과 이마에 뽀뽀 세례를 퍼부우며 그렇게 사랑을 표현했다.
엄마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는 날 나는 어린 딸이 되어
"엄마, 하늘만큼, 땅만큼, 우주만큼. 사랑해요!"
라고 목 놓아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