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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

이별을 마주할 때

by 꽃님

"아빠, 돈을 왜 다려?"


"꼬깃꼬깃하니까, 쫙쫙 펴지라고 다리지."


"쫙쫙 펴면 좋아?"


"그럼, 좋지. 아빠 기분이 좋고 용돈 받는 우리 딸내미도 좋고."


"나 돈 안 줘도 돼. 아빠가 다 사주잖아."


"그렇지. 이다음에 좀 더 크면 그때 주려고."


"난 그냥 구겨져도 괜찮아."


"돈은 아주 소중한 거야. 함부로 다루면 안 돼. 아주 살살 다뤄야 해."


구겨진 지폐를 다리미로 다리던 아빠가 마루에 앉아서 재잘재잘 대는 내게 다가와 앉았다. 우린 햇빛이 비추는 마루에 걸터앉았다. 이른 봄 툇마루에 비추는 햇빛은 따뜻했다. 겨우내 잔뜩 움츠렸던 몸을 스르르 녹여내고 있었다. 아빠와 난 그렇게 따스한 봄햇살 아래 부녀간의 정을 나누고 있었다. 아빠는 예쁘다며 연신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나는 기분이 좋아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 듯 다리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갑자기 '우당탕' 소리가 나며 아빠가 계단 아래로 쓰러졌다. 곧바로 뛰어내려 가 아빠를 불렀다. 집안에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눈을 꼭 감고 있는 아빠 얼굴을 만지며 아빠를 불렀다. 내가 큰소리로 울기 시작했고 그 소리를 들은 옆집 아주머니가 황급히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 마당에 쓰러진 아빠와 그 옆에서 울고 있는 날 보고는 아저씨를 불러오고 아주머니는 엄마를 찾으러 나갔다. 잠시 후 엄마도 오고 구급차도 와서 아빠를 구급차에 태우고 뒤따라 엄마도 타고 구급차는 떠났다. 울며불며 나도 타겠다고 떼를 썼지만 아주머니가 날 너무 꽉 안고 있어서 꼼짝할 수가 없었다. 무서웠다. 너무 무서워서 더 크게 울기만 했다.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방안에 아빠가 있다고 했다. 엄마는 울고 있었다. 큰오빠는 주먹으로 벽을 치며 울고 작은 오빠는 마루에 엎드려 울고 있었다.

아빠를 보기 위해 들어가려고 했는데 어른들이 못 들어가게 막았다.

염을 하기 위해 모두 방 안으로 들어갔다. 나도 따라 들어가려고 했지만 들어가지 못했다. 한참을 문밖에 서서 기다렸다. 방 안에서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억지로 참는 울음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방문이 조금 열리더니 엄마가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진숙아, 이제 아빠 얼굴 봐도 돼."


그러나 난 들어가지 않았다. 그 순간 아빠 얼굴을 보는 게 무서웠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자 주변에서


"어머나, 애 아빠가 정을 떼고 떠나나 보네."


하는 소리가 들렸다.

밖으로 도망쳤다. 내가 놀던 공터로 뛰어 나갔다. 가슴이 터져라 뛰었다. 공터엔 아무도 없었다. 혼자서 구석진 담장 아래 앉아 우리 집 골목만 쳐다보고 있었다.

화장터로 가기 위해 사람들이 차에 올랐다. 나도 차에 타려고 했는데 어떤 아저씨가 날 차에서 내리게 하곤 그냥 떠나버렸다. 집으로 들어온 난 마루 앞에 서서 방안을 들여다봤다.


'정말 아빠가 없나?'


방안엔 아무도 없었다. 그때 참새 한 마리가 마루에 와서 살포시 앉았다가 날 한번 쳐다보더니 다시 포로록 날아갔다. 아빠가 참새가 되어 하늘로 날아갔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빠를 보지 못해서 인사하러 왔다고.


2학년이 된 어느 날 쉬는 시간이었다. 어디선가 참새 한 마리가 교실로 들어왔다, 날개를 파닥이며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참새를 잡으려고 껑충껑충 뛰었다. 어떤 아이는 책받침을 휘둘렀다. 어떤 아이는 빗자루를 휘둘렀다. 참새가 내 머리 위를 스치며 날아갔다. 아빠가 날 보러 왔구나. 내가 보고 싶어서 온 거야.

난 아이들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그만해! 그만하라고. 우리 아빠야. 참새가 아니야."


아이들은 내 소리를 듣는 둥 마는 둥 자기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정신이 없었다.


"건들지 마. 그냥 놔둬! 우리 아빠란 말이야!"


소리치며 발악하듯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울면서 그러지 말라고 통곡에 가까운 울음소리에 교실 안이 조용해졌다. 그때 참새가 반쯤 열린 창문으로 날아가 버렸다.

책상에 엎드려 서럽게 울었다.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왜 우는지를 물으셨다. 울면서 참새 이야기를 했고 선생님은


"속상했겠네. 아빠는 좋은 곳에 계실 거야."


하고 위로해 주셨다.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다는 현실이 가장 가슴 아프다. 영원히란 의미를 몰랐을 나이에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과 이별을 경험했을 때 표현할 순 없었지만 아파할 순 있었다. 오늘은 내 방 창문에 참새 한 마리가 찾아오는 기적 같은 일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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