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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리 Aug 23. 2021

부끄러운 마음






오늘 다원이랑 잠에 들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근래 다원이와 자기  대화를 자주 하지 못한 까닭은 이제 잠자리에서 완전히 독립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끔 엄마와 함께 자고 싶다고 조르는 7살 다원이.. 특별히 주말엔 아빠와 엄마 다원이 셋이서 침대에 누워자곤 한다. 그렇게 함께 잔 날은 꿈속에서 샌드위치 가운데 낀 햄 마냥 나는 양쪽에게 밤새도록 발길질을 맞고 아침에 선언한다.



이제 같이 안자! 다원이는  방에서 혼자 ~”



그래서 요새 다원이랑 자기  대화를 많이  했다. 오늘은 자기 방으로 자러 들어가면서 엄마랑 같이    너무 오래됐어.. 나는 아직 어린아이란 말이야..” 하며 너무 불쌍한 표정을 짓길래 마음이 넘어가버렸다. 오늘만 잠들 때까지 함께 있어주기로... (진짜 오늘만..)



잠자리에 누워서 부끄러움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다원이에게 물었다. 너는 부끄러운 거 있어? 하고 물어보니




나는 아빠한테 조금 부끄러운  있어. 내가 샤워하고 팬티랑 윗도리도 안 입고 머리도 풀은걸 아빠가 보면 그게 부끄러워




그리고 아빠 머리가 빡빡이라서 조금…” 하며


뒷말을 흐린다.




엥? 예상치 못한 아빠 머리 이야기에 조금 의아해졌다.



다원아. 아빠 머리가 별로 없어서 부끄러워?”




아빠가 결혼하기 전에 그때가  멋진  같아. 지금은 머리가 너무 짧아서…”



그래? 지금은 머리가 너무 짧아서 약간 부끄러워?”




묻는 말에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갑자기 우는 다원이.


뜻밖의 전개에 약간 당황했지만 어떤 마음이 들어서 눈물을 내비쳤는지 알 것 같았다.




다원아  울어~”



몰라 갑자기 그냥 눈물이 났어.. 조용히 이야기하자 아빠가 듣겠어! 아빠가 알면 속상할  같아






다원이는 요즘 스타일에 바가지 머리 남자를 멋있다고 생각한다. 고등학생들이 많이 하는 눈썹 가린 커튼 머리들. 그에 비해 남편 머리가 너무 짧다 못해 거의 스님 스타일이지.. 게다가 자연에 순리로 인해 탈모는 계속 진행되고 점점 더 머리가 짧아지는 걸 느꼈나 보다. 예리한 우리 다원이! 아빠가 속상할 거라고 생각했는지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났을 것 같은데



장담하지만 남편은 그 이야기를 듣고 전혀 속상해하지 않을 거다. 이미 그 단계는 초월했다고 할까.



아이가 몸과 생각이 자라면 부모를 부끄러워하는 마음도 생겨난다. 부모를 자랑스러워하고 좋아하면서도 한편으론 부모를 보며 부끄러운 감정이  때가 있다. 어린 나는 부모를 존경하는 감정은 자식이 가지는 바람직한 마음이라고 생각했고 부모를 부끄러워하는 자식은 옳지 않고 죄를 짓는 거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고 어른이  나는 부끄러움과 존경은 동전의 양면이었음을 깨달았다. 그건 사랑에서 비롯됐구나.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 아빠와 함께 스키장에 갔던 기억이 난다. 그때 아빠랑 처음으로 스키를 탔던 기억이었는데 스키를 타면서 내려오는 아빠의 모습이 너무 해맑아 보였다.  모습을 보고 창피한 마음이 들었다. 나이가 많은 아빠가 스키를 타며 해맑게 웃는 모습이 유치해 보였고 스키를 많이  타본 아빠의 모습이 창피했다.



생각해 보니 그 창피한 마음 뒤에 숨겨진 마음은 측은함이었다. 아주 큰 어른인 줄 알았던 아빠도 즐거우니 해맑게 웃는구나. 어른으로 사느냐 즐거운 일을 많이 못 했구나. 초등학생인 나는 측은함을 이해하긴 너무 어렸다. 내가 아빠를 창피해한다는 걸 아무도 모르길 바라는 마음으로 마음속에 꽁꽁 숨겨두었는데 이제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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