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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리 Dec 31. 2020

우리는 인생의 몇 가지 장면 덕분에

삶을 이어갈 수 있다.



© mischievous_penguins, 출처 Unsplash




드라마 속 절절한 사랑들도 시간이 흐르면 우리의 엄마와 아빠와 다를 것 없는 부부가 되고 만다. 그 사람의 섬세한 구석이 좋았는데 어느 순간 섬세함이 지나치게 느껴져 답답해지고, 그녀의 털털함이 좋았는데 털털함이 도가 지나친 것 같아 마음에 들지 않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렇게 감정은 시간이 흐르면서 다르게 변하기도 한다.






엄마 아빠!

둘 중에 누가 먼저 반했어?





내 딸 다원이는 요새 사랑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다. 왜냐면 요 근래 6년 인생 처음으로 남자에게 고백을 받았기 때문이다. 같은 반 남자아이가 직접 만든 목걸이를 다원이에게 주면서 " 좋아해! " 라고 고백을 했단다. 누군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걸 아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지만 직접 만든 목걸이까지 줬으니 어찌나 좋았을까.


하루 종일 흥분상태로 고백받은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 나는 자기 전까지도 똑같은 레퍼토리의 고백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다.


그러던 중 하루는 " 엄마 아빠! 둘 중에 누가 먼저 반했어? " 라고 우리 부부에게 질문을 던졌다. 남편은 뭐가 그리 급한지 잽싸게 질문을 채가며  " 너희 엄마가 아빠 좋다고 엄청 따라다녔어~ "  이야기하는 거다. 실제 우리 러브스토리랑 전혀 다른 대답을 듣고 어이없는 듯 나는 웃으며 " 아니야~ 엄마는 누굴 따라다녀 본 적이 없어. 아빠가 엄마를 엄청 귀찮게 했어."  서로 다른 이야기를 내던지며 다원이의 질문과는 상관없이 우리 둘만에 이야기 리그를 펼치고 있었다.




스쳐 지나간 기억 중 나도 똑같은 질문을 엄마 아빠에게 한 적이 있다. 질문의 대답은 우리 부부처럼 엄마 아빠는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때 어린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둘이 정말 유치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랑은 정말 유치하다.








사랑의 의미가 잊혀질 때





스무 살 나는 사랑이 궁금했다. 친구들은 남자친구랑 헤어지면 세상을 잃은 듯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아 저게 사랑인가?" 나는 어떠한 이별에도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이러다간 누군가를 사랑해보지 못하겠구나 속으로 생각했던 때가 있다. 나는 나보다 더 많이 아는 것 같은 블로그 이웃 텐텐님에게 사랑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다. 그건 핑계고 그가 생각하는 사랑에 의미가 나에겐 중요했기 때문이다. "텐텐님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요?"






저처럼 실수투성이고 못난 사람을
똑같이 봐주는 거라 생각해요.



이 댓글이 달린 지 8년이 지났다. 나는 8년 동안 사랑의 의미를  자주 잊곤 했다. 상대방의 실수를 찾아내기 일쑤였고 - 그럴때마다 우리 부부는 서로를 못난 사람으로 만들어버리곤 했다. 서로가 사랑을 이야기하던 순간들은 기억에 없고 우리에겐 현재만의 시간이 남은 듯 싸웠다.







그렇게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눈물을 흘리지만 결국엔 실수투성이인 당신과 내가 이렇게 싸울 수 있다는 것 또한 사랑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저 서로가 부족해서 이렇게 되버렸다고 이야기하고 나면 우리는 별일 없는 듯 마음이 풀리곤 한다.  



그건 우리가 만났던 첫 장면들과 우리가 밤새 속삭였던 시간들로 하여금 서로의 사랑과 믿음이 마음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랑은 시간이 지나면 잊히는 듯 하지만 당신과 내가 만들어낸 장면들은 나의 마음에 사진으로 남아있다.





다시 마음속에 있는 장면들을 꼼꼼히 찾아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남편을 따라다닌 적은 없다.


남편이 나를 따라 다녔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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