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릴 때부터 덤벙대고 조심성이 없는 편이랍니다.
비가 오는 날 우산을 쓰고 거리를 걷다가 전봇대에 박고 죄송하다고 90도로 인사한 기억이 납니다. 그 외에 지금도 생각하면 부끄러웠던 기억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타고나길 덤벙이로 태어났지요.
우리 집에는 조심보이가 있습니다. 어딜 가나 주변을 살핍니다. 갑자기 도사릴 수 있는 위험을 방지하고자 조심보이는 항상 저에게 이야기합니다.
조심! 모든 끝말엔 조심이 따라오지요.
비 오는데 조심하라는 건 어떤 걸 조심하라는 걸까요?
비 오는 날은 조심 보이를 긴장하게 만드는 날입니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거리를 걷다가 차를 보지 못할 수도 있고 빗물에 미끄러져 넘어질 수 있으니까요. 조심보이는 그래서 항상 예민합니다.
세상에는 위험한 것들이 너무 많이 있기 때문이죠.
비가 오면 베란다도 조심해야지요. 문을 닫지 않으면 빗물이 창문으로 들이닥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조심할게 너무 많은 우리 집 조심 보이는 하루하루가 바쁩니다.
최근 일입니다.
덤벙이는 등산이 가고 싶어 졌어요. 아는 미술 선생님이 광교산 정상에서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게시했기 때문이에요. 편한 복장으로 등산을 하고 올라갈 때는 오이를 가방에 챙겨서 먹으며 올라갈 계획도 짰습니다. 아그작 아그작! 계속 생각하다 보니 방울토마토도 필요할 것 같아서 가방에 챙겨야 할 것 같고 보리차도 챙겨야 할 것 같고 생각만으로도 기쁜 등산 계획이었죠.
그날 밤 조심보이,
남편에게 나의 계획을 전달했습니다.
“우재씨!
나 이번 주말에 정하쌤이랑 어디 좀 다녀오려고!”
“어디를 갈 건데?”
“어.. (뭔가 얘기하기도 전에 조심보이가 어떤 반응을 할지 느낌이 왔습니다)” 내가 머뭇거리자
“어디 가려고 바람피우려고 그러나”
“아냐! 광교산 등산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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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의 정적이 흐릅니다.
“여자 둘이서 무슨 등산이야~ 큰일 나려고 그래?”
(이제부터 시작)
“여자 둘이서 가면 모르는 남자들이 말 걸면 어떡하려고 그래.. 등산하는 게 다 연애하려고 하는 거야.. 그리고 산에 들개도 있어서 들개한테 물릴 수도 있어. 산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게 아니야. 뱀도 있을 수도 있고 올라갔다가 빨리 못 내려오면 체온 떨어져서 죽는 경우도 있다니까…. 그리고 올라갈 때보다 내려올 때가 위험한 거 알지? 발 헛디뎌서 굴러 떨어지려면 어떡하려고 그래. 그리고 아무도 몰라서 그렇지 하루에 한 명씩 실종되는 거 알지? 다들 자기가 그럴 줄 모르고 있다가 당하는 거라니까.. ”
“둘이 가는 건 안되고 갈 거면 나랑 다원이랑 다 같이 가야지 뭐~”
허허.. 산에 호랑이랑 사자는 없나요.
곰도 있겠네요. 용은 없나요?
남편이 어릴 때 있었던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합쳐져 이런 성격을 만들어낸 것 같습니다.
항상 10시가 되면 퇴근을 하시던 아빠가 어느 날 이상하게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남편은 생각했죠. “이상하네 아빠가 왜 안 오지…” 그날 아빠는 퇴근하던 길, 집 앞에서 퍽치기를 만나고 죽을 만큼 두들겨 맞았다고 하네요. 손가락에 끼고 있던 금반지는 손가락을 자를까 봐 빼서 던져버렸다지요. 그 이후 병원에서 본 아빠의 모습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잊히지 않는 남편. 아빠 얼굴이 모두 까맣게 멍이 들고 주저앉아서 처음엔 아빠를 못 알아봤다고..
남편은 불가피하게 일어날 일들을 미리 막고자 위험한 상황은 최대한 피하고 봅니다. 소중한 가족이 다칠까 봐 모든 상황을 살펴보지요.
여기서 문제!
이번엔 조심 보이가 뭘 조심하라고 하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