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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리 Oct 04. 2021

하늘에 올리는 아이의 기도.




잠자리에 누워 다원이를 재우는데 ​​


“엄마 오늘 아멘 할까?” 나에게 묻는다.


기도를 하자는 뜻이다.


​​


나는 기독교라고 하기에 부끄러울 정도로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 예배를 하고 찬양을 드리고 기도하는 시간을 맞이하는 건 값지지만 사람과의 나눔을 좋아하지 않아서 교회에 나가기 어렵다. 외톨이로 교회를 다니다 누군가 나에게 사적으로 다가오는 일이 생기면 그 교회는 다시 나가고 싶지 않다. 그렇게 교회에 발 들인 지 오래다. 그저 일상에서 기도를 드린다. 시간이 될 때, 그리고 생각의 흐름에 따라서 기도를 드린다.



어젯밤 다원이의 기도 내용은 이러했다.


“엄마 아빠랑 내가 동시에 죽게 해 주세요.”


이게 웬 충격적인 기도인가. 다원이의 기도를 듣다가 중간에 끊었다.


“다원아! 사람이 언제 죽을지는 아무도 몰라.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런 기도는 들어주지 않으셔.”

​​


다원이는 엄마 아빠가 시간이 지나면 죽음을 당연하게 맞이해야 된다는 걸 알고 있다.

일곱 살 다원이가 죽음에 대해 잘 아는 건 우리 부부의 양가 부모님들이 일찍 세상을 떠나는 경험을 했고 우리는 그 경험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다원이에게 이야기해줬다. 어떤 사람은 아이에게 죽음이란 부정적인 소재를 이야기할 필요 없다고 하는데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간의 본질적인 마음은 모두가 똑같을 텐데 죽음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그리고 유한한 삶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 알기 위해선 죽음에 대해 잘 이해해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하늘로 올린 나의 기도가 생각났다. “하나님. 엄마 병이 낫게 해 주세요. 저는 엄마 없이 살 수 없어요.”  결국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셨다.​​



내 기도를 과연 듣기는 한 걸까? 의심과 분노가 생겨 하늘을 노려보았다. 아이가 올리는 간절한 기도는 들어주신다 했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어요! 나는 그렇게 종종 하늘에 대고 원망과 분노를 표출하곤 했다. 그럼에도 나는 또 기도를 드렸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게 해 주세요. 돌아가신 엄마만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요.



나의 기도는 부모에게 투정 부리는 아이의 모습과 닮아있었다. 내가 원하는 걸 주세요! 나 힘들어요! 그렇게 일방적인 요구에 불과한 기도들이지만 내가 한 기도, 내가 생각한 일들이 현실화되는 걸 느꼈다.



 기도를 듣지 않았다고 의심하던 많은 순간들이 있었는데 지나고 보니  듣고 계셨구나. 어느 날은 꿈속에   없는 환한 빛이 나를 찾아왔다. 그리곤 나에게 혜리야. 내가 항상 너의 곁에 있었다.”   한마디만 하고 사라졌다.  이후로 나는 의심을   없게 됐다. 지금껏 올렸던 나의 기도들이 비록 그대로 되지 않았다 해도  의미가 있었구나.


​​

어린 다원이의 기도는 하-늘에 올라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강인한 마음을 다원이에게 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엄마가 없어도 살 수 있게끔 나에게 용기의 마음을 주신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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