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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리 Dec 15. 2021

매 맞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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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유튜브 알고리즘에 이끌려 “매 맞는 여자”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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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이 하는 소리가 폭력적인 남편이랑 사는 여자는 매번 남편에게 얻어맞아도 밤만 지나면 다시 화해하고 잘 지낸다는 이야기를 하더라. 그렇게 남편에게 맞으며 사는 여자들이 섹스에 미친 여자가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깨달음이 오긴커녕 무당도 신빨이 아니라 말빨로 먹고 사는구나 싶다.








영상을 보고 옛 기억이 생각났다.



아주 어릴때 살던 터가 쎈 반지하 1층 집, 우리 집 바로 옆집에 어느 날 다섯 식구가 이사를 왔다. 엄마, 아빠, 고등학생쯤 된 첫째 아들,  7살 쌍둥이 여자아이 둘. 다섯 식구가 살기에 집이 무척 비좁았고 옆집 사람들 행색을 보아하니 이 동네랑 어울리지 않는 부티나는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옆집에 또래 여자 친구들 두 명이나 생겼으니 어린 나이에 기뻤던 것 같다. ​



옆집에 오고 가며 그 집 쌍둥이들과 함께 어울려 놀았는데 옆집 아주머니가 가끔 라면도 끓여주셨다. 라면을 끓여주면 나는 맵지 않으니 그냥 먹었고 쌍둥이 아이들은 라면이 너무 매웠는지 흰 우유를 라면에 넣어서 먹었다. 밖으로 신기함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속으로 “뭔가 고급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도 라면이 맵지 않은데 어느 날은 우유를 넣어서 먹어봤다. ​


역시나 생소한 고급진 맛은 나에게 안 맞는지 속이 느글거려서 몇십 먹고 버렸던 비화가 있다. 크크 (라면 까르보나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라면 먹는 모습을 지켜보던 옆집 아주머니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친절하고 차분한 이미지를 가진 아주머니는 내가 기억하기론 꽤 미인상에 속 했는데 표정이 우울한 건지 슬픈 건지 불쾌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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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아저씨는 얼굴이 하얗고 실실 웃는 표정을 자주 지었다. 강한 인상은 아니고 착한 사람처럼 보일만한 요소를 가지고 있던  같다. 샌님처럼 양쪽 손을 모으고 실실 웃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 아빠랑은 너무 다른 남자라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



하루는 옆집 아주머니랑 마주쳤는데 집안에서 선글라스를 쓰고 계셨다. 속으로 “이상하다” 느끼고 옆을 지나가는데 선글라스 사이로 보이는 눈이 시퍼렇게 변했다. 드라마 속에서 한번쯤 봤던 장면인데, 남편에게 맞은 여자들이 선글라스를 쓰고 다니는 게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차라리 스모키 화장을 하는 게 맞은 티가 덜 날 것 같다. 한국에서 선글라스 쓰면 둘 중 하나야! 쌍수를 했던지 맞았던지. (아니면 멋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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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며칠 , 아주머니는 집을 나갔는지 쌍둥이 아이들만 집에 남아있었다. 밥도 제대로  먹은  같아서 엄마가 라면을 끓여주셨다. 예쁘고 광이 났던 아이들엄마가 챙겨주지 못하니 금세 꾀죄죄한 모습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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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나서 얼마 뒤 옆집은 도망가 듯 급하게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나 옆집 아저씨가 우리 집을 찾아오셨다. 지금까지 쌍둥이들에게 잘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며 커다란 수박 한 통도 건네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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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참 오래 흘렀는데 옆집 아주머니의 표정, 눈빛, 옆집 아저씨의 표정과 눈빛이 기억에 남아있다. 둘 다 착해 보였지만 영혼 병든 것 같았다. 사람이란 게 참 헷갈릴 때가 있다. 착해 보여도 누군가에겐 착하지 않을 수 있고 단순하게 보기엔 어렵다. 세상이 그 사람들을 그렇게 만들었나? 왜 서로 때리고 슬프게 살아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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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은 라면에 우유나 부어서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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