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맞는 여자

by 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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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유튜브 알고리즘에 이끌려 “매 맞는 여자”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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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이 하는 소리가 폭력적인 남편이랑 사는 여자는 매번 남편에게 얻어맞아도 밤만 지나면 다시 화해하고 잘 지낸다는 이야기를 하더라. 그렇게 남편에게 맞으며 사는 여자들이 섹스에 미친 여자가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깨달음이 오긴커녕 무당도 신빨이 아니라 말빨로 먹고 사는구나 싶다.








영상을 보고 옛 기억이 생각났다.



아주 어릴때 살던 터가 쎈 반지하 1층 집, 우리 집 바로 옆집에 어느 날 다섯 식구가 이사를 왔다. 엄마, 아빠, 고등학생쯤 된 첫째 아들, 7살 쌍둥이 여자아이 둘. 다섯 식구가 살기에 집이 무척 비좁았고 옆집 사람들 행색을 보아하니 이 동네랑 어울리지 않는 부티나는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옆집에 또래 여자 친구들 두 명이나 생겼으니 어린 나이에 기뻤던 것 같다. ​



옆집에 오고 가며 그 집 쌍둥이들과 함께 어울려 놀았는데 옆집 아주머니가 가끔 라면도 끓여주셨다. 라면을 끓여주면 나는 맵지 않으니 그냥 먹었고 쌍둥이 아이들은 라면이 너무 매웠는지 흰 우유를 라면에 넣어서 먹었다. 밖으로 신기함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속으로 “뭔가 고급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도 라면이 맵지 않은데 어느 날은 우유를 넣어서 먹어봤다. ​


역시나 생소한 고급진 맛은 나에게 안 맞는지 속이 느글거려서 몇십 먹고 버렸던 비화가 있다. 크크 (라면 까르보나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라면 먹는 모습을 지켜보던 옆집 아주머니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친절하고 차분한 이미지를 가진 아주머니는 내가 기억하기론 꽤 미인상에 속 했는데 표정이 우울한 건지 슬픈 건지 불쾌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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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아저씨는 얼굴이 하얗고 실실 웃는 표정을 자주 지었다. 강한 인상은 아니고 착한 사람처럼 보일만한 요소를 가지고 있던 것 같다. 샌님처럼 양쪽 손을 모으고 실실 웃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 아빠랑은 너무 다른 남자라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



하루는 옆집 아주머니랑 마주쳤는데 집안에서 선글라스를 쓰고 계셨다. 속으로 “이상하다” 느끼고 옆을 지나가는데 선글라스 사이로 보이는 눈이 시퍼렇게 변했다. 드라마 속에서 한번쯤 봤던 장면인데, 남편에게 맞은 여자들이 선글라스를 쓰고 다니는 게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차라리 스모키 화장을 하는 게 맞은 티가 덜 날 것 같다. 한국에서 선글라스 쓰면 둘 중 하나야! 쌍수를 했던지 맞았던지. (아니면 멋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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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며칠 뒤, 아주머니는 집을 나갔는지 쌍둥이 아이들만 집에 남아있었다. 밥도 제대로 못 먹은 것 같아서 엄마가 라면을 끓여주셨다. 예쁘고 광이 났던 아이들도 엄마가 챙겨주지 못하니 금세 꾀죄죄한 모습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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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나서 얼마 뒤 옆집은 도망가 듯 급하게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나 옆집 아저씨가 우리 집을 찾아오셨다. 지금까지 쌍둥이들에게 잘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며 커다란 수박 한 통도 건네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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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참 오래 흘렀는데 옆집 아주머니의 표정, 눈빛, 옆집 아저씨의 표정과 눈빛이 기억에 남아있다. 둘 다 착해 보였지만 영혼 병든 것 같았다. 사람이란 게 참 헷갈릴 때가 있다. 착해 보여도 누군가에겐 착하지 않을 수 있고 단순하게 보기엔 어렵다. 세상이 그 사람들을 그렇게 만들었나? 왜 서로 때리고 슬프게 살아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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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은 라면에 우유나 부어서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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