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온 삶은 탐험과 거리가 멀다.
위험하거나 나쁜 짓은 최대한 멀리하며 몸 사리고 조심조심 지냈던 걸로 기억하는데 내 인생에서 가장 위험했던 도전은 남편을 만나서 결혼한 거다. 그전까지 내 삶은 무난했지. 암만! 남편에게 살면서 어떤 나쁜 짓을 해 봤냐고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이 가관이다. “당신 알면 깜짝 놀랄걸?" 남편은 소소하게 친구 물건 훔치기. 어릴 때 도둑질도 슬쩍해 봤단다. 얌전하게 생긴 애들이 더 한다더니.. (아마 더 쎈 이야기는 자체 검열하셨을 듯)
고등학교 2학년 때 미술학원 친구들이 다 같이 술 마시러 가자고 꼬셨다. 그날 옷을 챙겨 입고 대문을 나서려는데 웬일로 엄마가 전화를 해서 나가지 말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하셨다. 항시 그런 분이 아닌데 굳이 그날은 나가지 말라고 하셨고, 내가 생각해도 나가는 목적이 불순하다 보니 친구들에게 엄마 핑계를 삼아 약속을 취소했다. 그날 술 마시러 간 미술학원 친구들은 민짜인 게 들켜서 다 같이 경찰서에 갔다. 엄마 아빠 모두 소환되고 미술학원 담당 선생님까지 불려 감. 아이들의 경찰서 경험담을 듣고는 엄마 말 듣길 잘했다며 혼자서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암만 생각해도 내 인생은 우리 남편 만난 게 제일 발칙한 경험이었다. 한참 연애할 때 학과 엠티를 취소하고 남편이랑 여행을 갔다. (아빠는 모르겠지?) 학과 엠티 가면 뭐해, 재미도 없고 다 같이 게임하거나 술 마실 테니 그 시간에 좋아하는 사람이랑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대학생이 공부는 안 하고 연애에 빠져서 결국엔 이렇게 결혼을 일찍 했다. 누가 욕하고 손가락질한다 해도 상관없다. 내가 결정한 탐험은 무척 짜릿했고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여전히 똑같은 결정을 내릴 거다.
살면서 가장 가슴 떨렸던 기억, 내가 삶을 다할 때 내 눈앞에 스치는 장면이 있다면 아마도 남편과 처음 만난 순간이 아닐까?
다원이가 6살 때, 학원 1학년 언니랑 미술 학원에서 몰래 나가서 언니네 집에 놀러 갔다 돌아온 적이 있다. 아이가 없어진 몇 분 동안 학원 선생님들은 난리가 났었다. 다행히 아무 문제없이 돌아왔지만 6살밖에 안된 내 아이의 발칙한 행동에 갑자기 걱정이 되면서 화가 났다. 간도 크지, 선생님한테 이야기도 안 하고 나갔다 오다니..
그날 밤, 다원이가 나에게
“엄마! 오늘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망가져서 11층까지 걸어 올라갔어. 다리가 끊어지는 줄 알았다니까- 그리고 언니네 집 가보니까 물건이 꽉 찼더라고! 엄청 지저분해서 놀랬어. 우리 집이 깨끗한 건가 봐. 그리고 언니 할머니가 배도 깎아주셨어. 나는 배는 안 좋아해서 하나만 먹는다고 했어.”
말하는 아이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나란 엄마는 걱정이 앞서서 다원이 행동에 혼을 많이 냈던 것 같다. 근데 지금 깨닫게 된 건 네가 경험한 모든 것들이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내가 살아온 삶을 돌아보며 - 조금은 유하게 다원이의 탐험을 응원해 주겠다고 마음먹어본다.
(아무리 그래도 말 안 하고 나가는 건 안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