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는 요리를 잘하셨다.
손이 빠르고 음식을 깔끔하고 맛있게 만들었다. 친정 아빠는 엄마가 살아계실 적에 집안일을 해본 적이 없다. 그리고 당연히 음식도 만든 적이 없다. 매번 음식을 차려내는 일이 엄마에겐 항상 좋지 만은 않았건 것 같다. 엄마는 간혹 아빠랑 싸운 날이면 부엌에서 요리를 하며 궁시렁거렸다. 내용은 자기 신세한탄에 가까운 외침이었다. 아빠는 부엌에서 나는 소리에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고, 눈치 보는 건 오로지 내 몫이었다. 엄마가 홀로 부엌에서 요리하는 뒷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져, 나는 주방보조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주방보조가 됨으로써 엄마 기분이 나아진다며 꽤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옆에서 재료 손질 도와드리기, 음식 간 봐주기, 숟가락 젓가락 식탁에 올리기, 덕분에 나는 어깨너머로 그녀의 레시피를 잘 꽤고 있다. 어릴 적이지만 함께 만들었던 음식의 기억들로 그녀의 손맛을 자연스럽게 익혔다. 지나고 보니 참 감사한 일이다.
왜 엄마들은 부엌에서 신세한탄을 할까. 요리와 실랑이하며 “내 팔자” 가 왜 이꼬라지일까? 되뇌는 그녀들의 모습 보며 여자들이 음식을 차려내는 일이 마치 고난처럼 느껴졌다. 하고 싶지 않지만 팔자에 들어온 음식을 차려내는 일. 울상을 지으며 음식을 차려낸다. 지금은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지만 혹시 내 글을 읽는 누군가도 음식을 차려내며 신세한탄을 하지 않을까? (여자만이 아니라 남자도 해당됨)
나도 언젠가 부엌에서 엄마처럼 불평을 부렸던 것 같다. 그럴 땐 재빠르게 정신을 차려본다. 내 입으로 팔자를 탓하면 역시나 뱉은 대로 살아간다. 좋지 않은 행동과 말은 변해야 한다. 엄마와 나는 또 다른 인생을 살 것이기에 나는 기쁜 마음으로 부엌에 들어간다. 나는 재주가 좋은 내 손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누구는 아무리 배워도 음식 맛을 내지 못하지만 나는 타고나길 잘하니까- 또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남편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그이도 부족한 솜씨지만 나를 위해 음식을 차려낸다. 내 입으로 들어갈 음식을 좋은 마음으로 만들어내면 우리 몸에 들어와 좋은 기운을 가지고 온다. 아주 단순한 규칙이지만 우주의 흐름은 내가 느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게 흘러간다. 행복하기 위해선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마음을 가져 된다.
신세한탄하며 밥을 차리는 것보다 기분이 좋지 않은 날엔 차라리 배달의민족에 도움을 받자! (나도 그런 날엔 배달의민족과 남편 찬스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