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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리 Mar 04. 2022

교문 앞에서 아이를 기다리는 일









일을 그만둔  3일째.​​​



가장 불편한 시간을 뽑아보면 학교 정문 앞에서 아이를 기다리는 일이다. 12시 20분, 학교 앞에 부모들이 가득 모여있다.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불고 햇볕은 따뜻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바람까지 차서 기다림이 꽤 길게 느껴졌다. 몇몇 엄마들은 아는 엄마들과 수다를 떨며 아이를 기다리고 또 나처럼 독고다이로 홀로 서있는 엄마도 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알게 모르게 서로를 스캔한다. 나도 엄마들을 쭈욱 살펴보며 독특한 패션인 사람을 구경한다. 특이한 색으로 머리를 염색한 사람. 독특한 안경을 낀 사람. 멋지게 옷 입는 사람. 사람 구경이 세상에서 제일 재밌다. 서 있는 나를 다른 이도 구경하겠지. “저 여자 특이하네..”


​​


엄마들 얘기를 살짝 엿듣기도 했다.



1학년 1반 아이들이 가장 먼저 하교하는데 그중 한 학생이 엄마가 오지 않았는지 교문에서 선생님과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는 학생에게 엄마들 시선이 꽂힌다. 그리고 수근거린다. “저 아이는 엄마가 아직 안 왔나 봐~” 꽤 오랜 기다림 끝에 어떤 여자가 헐레벌떡 학교 정문으로 들어간다. 뛰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에 엄마들 시선도 같이 이동한다. 눈으로만 살펴보고 아무런 말도 안 했지만 엄마들이 어떤생각을 하는지 예상이 됐다. 음....

​​


오늘은 정문 앞에서 이어폰을 꽂았다. 엄마들 이야기를 엿듣는 것보다 음악을 듣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또 하나는 누군가가 나에게 말걸 수 있는 상황을 미리 이어폰으로 차단하고 싶었다. (중2병 학부모)


​​​


다원이가 오늘은 친해진 친구와 함께 정문으로 나왔다. 그리고 나에게 인사를 시켜주더라. 예의가 바른 친구인지 나에게 고개를 숙이며 깍듯이 “안녕하세요” 인사했다. 나도 인사를 받고 길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으나, 주변에 사람이 너무 많았다. 길게 이야기를 나누기엔 그 공간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에게 간단하게 “응 그래~ 안녕~” 이야기하고 자리에서 빨리 도망 나왔다. 다원이는 서툰 나 대신 친구에게 “나중에 우리 집 놀러와 00아” 이야기하더라. 응? 원래 엄마가 해야 되는 말 아닌가?

​​


“어~ 그래 네가 00이구나. 다원이랑 친하게 지내렴. 그리고 다음에 우리 집 놀러 와. 아줌마가 맛있는 거 해줄게~" 이게 전형적인 엄마 대사인데 현실은 결코 쉽지 않다. 주변에 다른 사람만 없으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아. 교문이 너무 복잡해..




핫핑크 신발을 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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