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치열한 삶에 대한 감사

마음을 추스르는 리추얼

<요동치는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


“All the beauty in the world”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2년 전에 조승연 작가의 유튜브 채널에서 이 책을 쓴 패트릭 브링리 작가의 인터뷰를 보았었다. 그리고 언젠가 저 책을 꼭 한 번 읽어봐야지 하다가 비로소 이 책을 손에 잡고 읽기 시작하게 되었다. 고작 서문을 읽다가 눈물이 흘렀다. 있는 그대로 발췌를 해 본다.


’ 대학 졸업 후 <뉴요커>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뉴욕 한복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보이는 사무실에서 승승장구를 꿈꾸며 커리어를 쌓아가던 어느 날, 암으로 투병하던 친형이 세상을 떠나는 비극을 겪고 이를 계기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지독한 무기력감에 빠진 그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며 스스로를 놓아두기로 마음먹는다 “


여기 어떤 부분에서 도대체 내 마음을 쿵 하고 울린 것인지 당최 나도 이해가 가질 않는다.

어떤 사람의 말로도 위로가 안 되는 그런 고통과 좌절의 순간이 인생마다 있다는 것이 위로가 되었을까?

자신의 무기력감을 그대로 내버려 두고 잠시 그렇게 머물도록 스스로를 허용하고 다독인 그 부분이 그랬을까?


이번 주에 멀리서 어렴풋이 알고 있던 한 선배님이 소천하셨다. 아직 오십 대의 젊은 나이이시고 여러 권의 책을 내시면서 활발하게 활동하시던 중이셨다. 세 딸의 어머니이기도 했고 누군가의 딸이었고 한 남편의 아내였다. 나는 직접 대화를 나눈 적은 없지만 대학교 동아리 선배라서 졸업 후 홈커밍모임에서 먼발치에서나마 뵌 적이 있고 여러 권의 책을 읽으며 그분의 독자로 내적 친밀감이 있었는데 뜻밖의 부고에 마음이 아프고 계속 그분을 생각하게 되었다. 책장에서 다시 그분의 책을 꺼내어 읽기도 하며 선배님을 추모하였다.

뉴스에서는 스물다섯의 한 배우가 그가 홀로 감당하기에 버거운 이 땅의 삶을 너무나 빨리 정리하고 떠나 버렸다. 이 삶을 이렇게 놓을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마음은 얼마나 절망스럽고 고통스러웠을까 헤아리기도 어렵다.


왜 누군가는 떠나고 나는 아직 남겨졌을까? 아니 왜 신은 내게 아직 삶의 시간을 더 허락하셨을까? 생각해 본다.

잘 모르겠다. 나도 잘 모르겠다.


<마음을 추스르는 나만의 리츄얼>

생계를 꾸려야 하고, 아이들을 돌봐야 하고, 혼자 계신 엄마의 마음과 건강을 살펴야 한다. 감정에 빠져 허투루 시간을 보낼 수 없는데 정신 바짝 차려야 하는데 다 때려치우고 온종일 침대 속에 시체처럼 누워있거나 이 달음박질을 멈추고 어디 산구석으로 도망을 가고 싶기도 하다. 새벽에 알람도 없이 잠을 설치고 눈이 떠져 이 생각 저 생각이 머릿속을 굴러다니는 것을 가만히 보기도 한다. 자면서 “아우 열받아”, “싫어 싫다고” 와 같은 잠꼬대도 했던 것 같다.


스무 해를 넘게 같은 직장에 다니고 있는데 우리 사무실은 큰 공장 한가운데 있다. 회사 울타리 안에는 여러 개의 공장이 있고 울타리 밖으로 둘러서는 6개쯤의 버스 정류장이 있는 아주 큰 공장부지다. 나는 사무실 불을 끄고 나서 해가 져서 어둑어둑한 길에서 달빛을 벗 삼아 주차장으로 걸어가는 길에 혼자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하는 그런 나만의 다양한 매일을 보내왔던 것 같다.

그 많은 기억 중에는 동료들이 승진을 했는데 나만 승진에서 미끄러져서 엉엉 울면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던 어린 시절의 나도 있고,

더럽고 치사해 못살겠네 하면서 상사를 향한 분노를 미처 삭이지 못해서 욕을 하면서 걸었던 나도 있고,

집에 돌아가서는 “삐삐 삐삐삐” 현관문의 번호키를 누르면 저 안쪽 방에서 달려와 “엄마 왔어? 고생했지? ” 하고 따뜻한 말을 하면서 안기는 우리 딸을 만나기 위해 회사의 스트레스 스위치는 끄고 엄마 모드의 스위치를 얼른 키느라 마인드 컨트롤을 열심히 했던 나도 있다.


요즘은 업무의 압박이 상당히 강해서 ‘이러다가 나 병나겠네. 쓰러지면 안 되는데… 스트레스로 병 걸리면 안 되는데…‘ 하고 생각하면서 “잘했어. 오늘도 고생 많았어. 너는 최선을 다했잖아. 아 감사하다… 진짜 살아 있네 ” 하고 횡설수설하면서 나의 영혼에게 아주 큰 소리로 말해준다. 주차장 건물에 내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서 진짜 누군가 나에게 말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어제는 건물 간에 이동하느라 10분 정도 2월의 한낮의 햇살을 받으면서 걸었다. 영상 1도라고 하는데 그동안 너무 추웠던 기온 탓에 몸이 적응이 된 것인지 아니면 벌써 바람 속에 따뜻한 봄기운이 녹아 있어서 인지 코트도 아니고 조금 두툼한 동계용 근무복 점퍼를 입고 걸어가는데 별로 춥지도 않고 걸을만했다. 천천히 걸으면서 계속 나에게 말했다. “하나님 괜찮죠? 이번 달에 또 목표 미달하고 좀 혼나도 괜찮죠?” “업무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게 내 인생의 실패는 아니잖아요?” 혼자 중얼중얼 말을 또 하면서 걷고 있더라. 내 직장생활에서 가장 높은 직급에 있고 가장 많은 급여를 받고 있으니 이 정도 압박쯤은 감당해야지 하면서 계속 마인드 컨트롤을 한다.


마음을 다 잡고 어려운 삶의 고비들을 헤쳐나가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 보았던 것 같다. 심리 상담을 받으면서 상담 선생님께 내 마음을 쏟아놓아 보기도 하고, 미술관과 전시회를 쏘다니면서 그림을 보고 콧바람을 쐬면서 아름답다, 행복하다 주문을 걸어보기도 하고, 퇴근 후 혼자 주차장에서 차에 홀로 앉아 음악을 한참 들으면서 마음을 가라앉혀 보기도 하였다. 그리고는 많은 날은 사무실에서 주차장으로 걸어가면서, 돌아와서 저녁 먹고 설거지를 하면서, 새벽에 잠이 깨었을 때 홀로 누워 ‘내가 왜 이렇게 힘들지? 내 마음을 왜 이렇지? 왜 이렇게 눈물이 나지?‘ 하고 나의 마음의 깊은 곳을 가만히 들여다보곤 했었던 것 같다.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을 사는 것, 그저 묵묵히 성실히 오늘의 몫을 사는 것>

그런데 새로운 리추얼이 생긴 것 같다. 고단하니까 심리적 압박과 스트레스가 가까스로 감당할 만큼 크고 겨우 견디고 있다 보니 퇴근 후나 주말에 에너지가 고갈되어 버렸다. 그래서 미술관도 끊고 구독을 줄줄이 해 두었던 유튜브도 끊고 드라마는 엄마와 딸과 시간을 보내는 정도의 의미로 주말 한 편 정도(?) 볼뿐이다. 대신 뭔가 더 열심히 하는 대신 거실에 놓인 둥근 탁자 앞에 앉아 침침하고 뻑뻑한 눈을 몇 번 감았다 떴다 운동을 하고는 안경을 쓰고 책을 펼친다. 몇 장 읽지도 못하지만 잠시나마 책을 읽는다. 그러고 있으면 딸아이가 수학이며 영어 문제집, 국어 문제집을 가져와서 옆에 살며시 앉아 모르는 것을 알려줄 수 있겠는지 말을 걸어온다. 공부를 봐주고 엄지를 치켜세우고 “엑설런트!! 우리 딸 대단한데…” 하면서 칭찬으로 자신감을 북돋아 준다. 사랑하는 우리 딸과 고작 이 밤에 한 두세 시간 같은 공간에서 함께하면 다시 잠자리에 들어야 하고 이른 아침 서둘러 다시 일터로 간다. 어떤 날은 옆옆동에 사는 친정 엄마 얼굴도 보지 못해서 전화를 걸어 “엄마 잘 지내고 있어? 사는 게 너무 바빠서 며칠 째 우리 엄마 얼굴도 보지 못했네” 하고 안부를 묻기도 한다. 그리고 시간을 다시 쪼개 몇십 분씩은 글을 쓰려고 한다. 삶의 의미에 대해서, 녹록지 않은 직장 생활에 대해서, 그저 찰나의 순간으로 흘려보내기 아쉬운 그런 소중한 순간(moment)에 대해서 말이다.


자극적인 라면과 마라탕, 얼큰한 찌개를 먹다가 잡곡밥에 나물과 심심하게 부쳐낸 두부를 먹는 것처럼 그저 소박하고 지루한 듯 한 저녁 시간을 보내고 때로는 내 마음이 슬퍼하거나 고단할 틈을 주면서 오늘의 내 몫을 사는 것의 의미를 아주 아주 조금 알 것 같다. 이것이 바로 어제의 나를 다독이고 오늘의 나에게 힘을 주는 새로운 리추얼이다.


<이토록 치열한 삶에 대한 감사와 그리고 한 걸음 더 >

오늘도 새벽에 눈을 뜨며 ”아 아직 살아 있구나 “ “감사합니다.” 말한다. 아직 돌봐야 할 가족이, 아직 내게 두신 삶의 의미와 소명이 있기에 ’ 오늘’이라는 시간을 주셨나 보다. 오늘도 정신없는 회의와 몰려드는 일이 있을 것이고 판매 실적과 진행상황을 묻고 막판 스퍼트를 요구하는 상사의 압박이 있을 테고 ”엄마.. 엄마.. 이거 해 줘, 저거 해 줘… “많은 요구와 도움 요청이 있을 테고 밥하고 빨래하고 일상도 살아야 할 테지만 … 오늘은 어쩐지 새로운 마음이 먹어진다. 사는 게 별거 있나? 이게 바로 삶이고 소명이지. 내 몫이지.


이렇게 나를 잘 추스르고 나면 오늘 내가 만나는 나 자신과 동료들에게 조금은 친절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나와 같이 고단한 당신들에게도 ”자 우리 마음을 잘 추스르고 오늘 우리의 몫의 삶을 감당해 보자 “고 다독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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