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직장생활을 위한 소통 기술 - 정중한 거절과 지원 요청
벌써 자정이 넘었고 나는 몇 시간이라도 눈을 좀 붙이고 일어나 미국 출장을 가는 비행기를 타야 했다.
일주일 동안 아이를 봐줄 친정엄마집에 와 있었고, 아이는 옆에서 자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 다른 팀에 넘기기로 한 자료 만드는 일이 좀처럼 끝나지 않아서 아직도 노트북 컴퓨터를 닫지 못하고 여느 날처럼 야근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나도 모르게 한숨이 계속 새어 나왔다.
”진짜, 못 해 먹겠네… 진짜 너무 한다… 너무 해…“
아침에 나를 공항에 데려다주려고 함께 와서 곁을 지키던 남편이 질문인지 아니면 비난인지, 안타까움인지 답답함에서인지 퉁명스럽게 말했다.
”너네 회사는 너 밖에 일할 사람이 없어? 정말 징하게 일하네…“
그날 난 자료를 마저 마무리해서 보내고 노트북 컴퓨터를 닫으면서 결심했다.
‘출장만 다녀오고 나서 나는 이 회사 진짜 그만둔다. 내가 이 회사 아니면, 직장 생활이 아니면 밥을 못 먹고살까? 내가 눈높이를 낮추고 이 일 저 일 가리지 않는다면 뭐라도 이것보다는 나은 일을 찾겠지…‘
억울하고 서러워 뜨거운 눈물이 터져 나왔다.
출장을 마치고 와서 나는 진짜로 리더를 찾아가서 퇴사를 하겠다고 통보했다. 그런데 리더뿐만이 아니라 동료들이 모두 너무나 예상밖에 나의 행동과 결정에 놀라 했다. 한편 ‘내가 이렇게 죽을 듯이 힘들고 고통스럽고 처절하게 기계의 부속품처럼 일하고 있었는데 매일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리더들이 어떻게 이토록 내 상황을 모르고 내 마음을 모를 수가 있지? ’나 또한 놀랐다.
나는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일벌레였고 꽤나 일을 잘해서 장례가 촉망되는 리더였으니 조직의 인정을 받으며 잘 지내고 있는 듯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말이다. 가끔 사람들이 “두 아이 엄마가 어떻게 저렇게 일을 열심히 잘할 수 있지?” 하고 ’슈퍼맘‘이네 어쩌네 하면서 은근히 추켜세우는 말도 싫지 않았다. 그러나 내 속은 곪을 때로 곪아 있었고, 내 육체는 지쳐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이런 내 개인의 상태가 퇴사 통보라는 극적인 사건으로 진전되는 데는 팀의 상황도 한몫을 했다. 내가 이끌던 팀은 팀장 한 명에 직원 세 명이 있는 단출한 팀이었지만 우리 본부에서 기획과 전략을 담당하는 브레인 같은 팀이었는데 두 명의 직원들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같은 시기에 퇴사를 하게 되었다. 그 공석은 내부 공모로 충원을 해야 했다. 그러나 일이 많기로 악명이 높았던 우리 팀에 사람들은 지원하기를 꺼려했다. 그래서 몇 달째 팀을 충원하지 못한 채 가까스로 버티고 있던 터였다.
내 기억으로는 우리는 화목했고 좋은 팀웤을 가지고 있었지만 모두 다 일벌레같이 일하느라 지치기 일쑤였다. 그때 나는 미성숙한 리더였고 팀원을 다독이며 그 일을 나눠 갖고 더 열심히 하자고 할 줄은 알았지만 내 팀원이 얼마나 지쳤는지 살피고 어떻게 업무를 재분배하거나 혹은 걷어내야 팀의 업무로드에 대한 밸런스를 맞춰 갈 수 있는지 몰랐던 것 같다.
돌아보니 자신의 상처와 어려움도 돌아보지 못했던 내가 누굴 돌볼 수 있었겠냐 말이다. 우리는 모두 기혼 여성이었으니 팀원들 각자 가정과 회사일을 병행하느라 매일 고군분투했을 것인데 그것을 제대로 헤아릴 줄도 몰랐고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런 것을 알았다면 우리 팀원들의 워라밸도 지켜주고 더 오래 함께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아쉬움도 남아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고 상사가 주는 일을 모두 받아올 줄이나 알았던 그런 착한 (콤플렉스를 가진) 팀장이었던 나 때문에 유난히 일을 많이 하고 야근도 도맡아 하는 팀이 되어버렸다.
두 명의 팀원이 퇴사를 하고 회사에서는 외부채용을 해 주지 않고 내부 채용에는 지원자가 없고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나는 이 부서 저 부서의 직원들에게 우리 팀에 와서 함께 일해 달라고 요청을 했지만 굳이 그렇게 힘든 부서에서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 거절을 계속 받으며 팀의 일이 구멍이 나지 않게 꾸역꾸역 1인 2역, 1인 3역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출장 가기 전날까지도 자정을 넘겨 일에 매몰된 그런 부품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퇴사를 하지 않았다.
나의 돌발 행동에 놀란 상사들이 면담을 하면서 ”무슨 일이야? 김팀장이 이렇게 힘든 줄 몰랐지? 왜 말을 안 했어? “ 하면서 내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고 나는 마흔이 넘은 팀장에 직장생활 15년 차임에도 불구하고 체면이고 뭐고 대성통곡을 하면서 ”저는 더 이상 못하겠어요. 너무 힘들어요. “ 하는 벌거벗은 듯 내 상처를 온천하에 드러내고 또 나 자신이 얼마나 지쳤는지를 직면하는 대화를 이어갔다.
고맙게도 회사는 나를 잡아 주었고 무엇을 도와줄까 물어왔다. 나는 ”저는 이대로는 팀을 이끌 수 없어요. 제가 충원을 해 보려고 무진장 애를 썼지만 많은 직원들에게 거절을 당해 이제 구인도 못하겠습니다. 저희 팀을 제대로 채워 주시고 제 일을 덜어주세요. “라고 답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주 유능하고 좋은 인성을 가진 새로운 팀원들을 맞이하게 되었다. 덕분에 나는 원망의 마음을 뒤로하고 나를 붙잡아 준 리더들과 동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다시 팀도 잘 꾸리고 나 자신도 다독이면서 내 직장생활 최대 고비를 넘기고 일상으로 천천히 돌아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 퇴사 통보 사건‘은 내 직장생활의 전환점이 되었다. 이 웃지 못할 사건을 통해 조직 내 지속가능한 직장생활을 위해서 꼭 필요한 두 가지에 대한 의사소통을 배웠기 때문이다.
첫째는, 나는 “No”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으나 살기 위해서 반드시 ”No”를 해야 하는 순간을 피하지 않고 정중하지만 당당하게 “No”라고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이것이 직장 생활에서 개인의 정신 및 육체적인 건강, 그리고 나 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꼭 필요한 순간에 말이다.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평소에 ”Yes” 할 수 있을 때 일부러 일을 피하거나 남에게 미루기 위해서 그냥 감정에 따라 “No”를 하자는 말이 아니다. 할 수 있을 때는 최선을 다해서 일을 하고 내 몫을 감당하고 조직이나 동료에서 가치를 더하고 의미 있는 존재로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다만 내가 가진 자원(내 에너지, 내 능력, 나의 팀의 업무 역량 등)을 넘어서서 한계치에 도달하기 전에 미리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서 ”No”를 해야 하는 순간에 진정성 있게 거절을 해야 할 때도 있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나의 상황을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하면서 지혜로운 거절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때로는 지금 이 상태로는 부탁받은 업무를 할 수 없지만, 그 업무나 요청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시간이 얼마만큼 더 필요하고 어떤 지원이 회사나 리더로부터 필요한 지를 말하는 것은 더 지혜로운 소통이 될 것이다. 가능성을 열어둔, 아직 문을 ‘쾅’ 닫지 않은 완곡한 거절이면서 새로운 기회의 모색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할 수 있는 ”No”를 왜 그때는 못했을까?
조직과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했다. 그래서 ”No”라고 말하는 것이 “나는 할 수 없어요. 나는 역량이 안 되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한편, 자영업을 하느라 수입이 들쑥날쑥 인 남편대신 생계를 안정적으로 꾸리고 두 아이를 잘 돌보자니 직장에 잘 붙어있어야 했다. 혹여 조직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유능한 리더가 되지 못하면 직장 내 수명이 길지 않을 것 같은 염려도 있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 이후에 내가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되어 밀려드는 요구에 때로는 이러저러해서 지금 할 수 없다거나 우리 팀이 할 수 없다고 했을 때 알았다고 쿨하게 내 의견을 받아들여주었다. 때론 함께 대안을 찾아보자고 하기도 했고 오히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해 보려고 노력하는 점을 고마워해주기도 했다.
두 번째 나는 도움을 청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이 부분도 리더가 되어 조직 생활을 하면 할수록 얼마나 중요한 부분인지 깨닫는다. 퇴사통보사건을 일으켜서 모두를 놀라게 할 것이 아니라 미리 평소에 리더들과 면담을 하면서, 또는 격식을 갖춘 자리가 아니더라도 자주 우리 팀의 상황을 알리고 미리 얼람을 주면서 ”삐뽀, 삐뽀, 김팀장 매우 힘듦, 팀에 지원 필요, 인원 충원 적극 필요… 빠른 시일 내 문제 해결 안 될 시에 저 팀은 붕괴가능성 있음!!! “ 과 같이 조직이 알아차릴 수 있게 해야 했다. 그런 소통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리더의 필수적인 역량이었다. 사장이, 부사장이 일개 팀단위의 모든 상황을 알 수가 없고 인사팀이 레이더를 켜고 회사를 모니터링한다고 해도 팀과 직원에 어떤 지원이 필요한 지 알 수가 없으니 리더가 중간 매개체가 되어 회사와 소통하고 필요한 지원을 이끌어내야 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것을 소 잃고 외양간 고치듯 뒤늦게 깨달았다.
그래도 다행이다.
이 퇴사통보사건 이후에 나는 일하는 방식이나 사람(특히 상사나 동료 리더들)과의 대화에서 이 두 가지의 뼈아프고 필수적인 소통의 교훈을 배워 이후 몇 개의 서로 다른 팀을 이끌어 오면서 조금씩 더 연습하고 더 적용하게 되었다.
물론 못한다 힘들다고 말하고,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고 나의 모든 요구가 수용되는 것은 아니다. 조직의 자원이 한정되어 있고 나의 요구가 다른 누군가의 요구와 이해상충을 일으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내게는 조직의 리더로서 경영진과 내 리더의 니즈를 잘 맞추는 것만큼이나 내 팀원과 나 자신의 업무로드를 조절하고 정신과 육체건강을 잘 유지하는 것도 중요한 우선순위가 되었다. 그래서 나의 요구(회사의 지원 요청)가 정당하고 조직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믿는다면 수용될 때까지 계속 문을 두드릴 생각이다.
지난 일 년간에도 우리 팀에 인원 충원이 필요하다, 이런저런 지원이 필요하다고 내 리더와 만날 때마다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해 왔다. 어떤 것은 수용되었고 어떤 것은 그렇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우리 팀원들에게는 ”내가 열심히 싸우고 있으니 더 힘을 내면서 버텨보자 “고 말할 수 있다. 팀원들의 마음을 살피고 어떤 지원이 필요한 지를 알아채 조직 내에 소통하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라는 것을 알고 성실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회사 생활은 지루하다거나 정체되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나도 그렇게 느낄 때가 많이 있다. 그러나 조금 멀리 떨어져 우리의 직장생활을 돌아보면 이곳이 아니었다면 배우지 못했을 그런 소중한 지혜와 생존의 전략을 가르쳐 주는 귀한 곳이기도 한 것 같다. 끝도 없는 요구에 당당하고 정중하게 거절을 하고, 내가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일은 비단 일터뿐만이 아니라 건강한 우리 개인의 삶을 영위하는데도 적잖이 도움이 되는 그런 지혜의 기술이 아니겠는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