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커리어의 목표는 어디로 향하고 있나요?
“저는 나중에 이 회사의 사장이 될 거예요. 나는 이 조직을 변화시킬 수 있어요. “ 유능하고 자신감 넘치는 김상무님과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눌 때 종종 듣곤 하는 말이다. 처음에는 이 말을 듣고 ’저 자신감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다른 사람들은 저 말을 들으면 김상무님이 건방지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김상무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한 프로젝트로 같이 일을 하게 된 박부장님은 나와 나이가 비슷한 또래였는데 ”이 회사의 미래는 우리가 바꿀 수 있습니다. 머지않아 우리가 경영진이 되고 우리가 회사의 미래를 좌우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마음과 시각을 가지고 자신 있게 부딪혀도 돼요. 파이팅!!!” 하고 거침없이 말했다. 박 부장님의 나중 목표도 매우 구체적인 특정 직급과 부서의 장이었다.
재무 부서의 리더였던 조상무님도 10년 내에 CFO(재무최고책임자)가 되고 싶다고 당당히 말했다.
내가 모든 남자 직원들을 만나본 것은 아니었지만 내 주변에는 이렇게 당당하게 나는 무엇이 되고, 어떤 사람이 될 거라는 구체적인 그림을 가지고 커리어를 쌓아가는 사람들을 종종 접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는 남자들의 배짱인가? 하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들과 일을 하고 관찰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는데 말로만 목표를 외부에 알린 것이 아니라 그 목표에 다가가기 위해 적극적으로 새로운 보직과 일을 탐색하고 지원하면서 길을 만들어 가는 것이었다.
반면 나의 경우에는 현재 회사에서 10번째 보직을 맡고 있으며 6번째부터는 리더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으면서도 새로운 조직의 리더가 될 때 내가 그린 커리어 계획에 따라 움직인 것이 아니라 나의 리더들이 새로운 일을 하라고 권해서였다. 그때마다 고민 끝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그 일을 받아들이기도 했고, “나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 “고 해서 주저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더들의 적극적인 권유와 격려에 힘입어 한 발씩 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 이것이 나 개인의 문제일까? 생각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내가 부장을 거쳐 상무가 되고 여러 부서로 이동을 하다 보니 사람들이 내게 진로에 대한, 업무 변경에 대한 상담이나 조언을 구하기도 하였는데 몇몇 여성 직원들은 새로운 경험을 통해 성장을 하고 싶은데 “내가 구체적으로 어떤 직무를 원하는지 모른다 “ 고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 부분은 내가 여러 번 통과했던 과정이라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해 보기보다는 공감해 주고 격려를 해 주었다.
“ 사실 나도 그랬어요. 나도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몰랐어요. 그래서 나는 그냥 리더들이 권하는 새로운 역할을 때로는 흔쾌히 때로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받아들였어요. 결과적으로는 내가 계획하지 않았던 커리어의 성장으로 이어졌고요. 일단 무엇이든 도전해 보세요.”
내가 고작 한 개 회사에서 겪은 손으로 꼽을 정도의 사람들의 사례를 가지고 남성과 여성의 차이라고 일반화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이런 커리어에 대한 접근의 차이가 남성과 여성의 차이에 기인하는지와 성별과 상관없는 사람들의 사고의 차이 때문인지 살펴보았다.
첫 번째로, 남성과 여성의 자기 인식 차이에 대해서는 “사회화와 성별 고정관념(Socialization & Gender Stereotypes)“ 이론에서 남성과 여성은 어릴 때부터 다른 방식으로 교육받고 사회화되었다는 점을 설명해 준다. 남성은 도전과 모험을 권장받고, 실패해도 재도전하도록 격려받는 반면, 여성은 신중함, 완벽함, 높은 기준을 요구받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Carnegie Mellon University(2002) 연구에 따르면, 같은 업적을 가진 남녀를 비교했을 때, 남성은 자신의 능력을 더 과대평가하는 반면, 여성은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시대가 변했다고는 하지만 부모님 세대부터 남성과 여성에 대해 상이한 역할을 요구받으며 살아왔기에 뼛속 깊이 스며든 남성과 여성에 대한 인식 차이가 양육태도에 영향을 주고, 결과적으로 오늘날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 세대에게도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겠다.
두 번째로는 성별 차이가 아닌 개인의 자기 효능감과 도전 (Self-efficacy & Risk-taking)에 대한 이론이 있었다. Albert Bandura(1977)의 자기 효능감 이론에 따르면, 자기 효능감이 높은 사람은 자신이 능력이 있다고 믿고 도전하는 경향이 있으나 자기 효능감이 낮으면 능력이 있어도 도전하지 않은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것은 성별과도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이 연구에 따르면, 남성은 실패를 덜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성공 가능성을 더 높게 평가하는 반면, 여성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커서 더 신중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어찌 되었든 유능하고 자신감 넘치는 김상무님과 달리 나는 여전히 현재 업무 이후에는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막막한데 이것이 이유 없는 나 개인의 부족함은 아니라는 것이 위로가 된다. 그런데 이런 나를 다독이며 그냥 이대로 머물로도 좋다는 말은 아니다.
얼마 전에, 이 업계에서 35년간 근무하시면서 다양한 리더십 역할을 수행하신 시니어 리더분과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다. 여기서는 ’ 마크‘라고 하겠다. 뭔가 새로운 보직을 위한 딱딱한 인터뷰도 아니었고 회사에서 존경받는 리더와 잠시 대화를 나누게 된 더없이 좋은 기회였기 때문에 긴장을 풀고 편안하게 대화하면 그만이었다. 마크로부터 뭔가 인사이트와 배움을 얻어가면 되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첫 대화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마크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만나서 반가워요. 현재 어떤 일을 맡고 있는지 소개해 줄 수 있나요?”
여기까지는 좋았다. 요즘 하고 있는 일을 편하게 이야기했다.
다음 질문이 문제였다.
“당신이 열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What are you passionate about?”
순간 ‘질문의 요지가 뭐지?’ 하고 머리가 하얘졌다.
이 정도 질문은 영어라서 긴장되는 것도 아니고 의미도 아는데 이상하리만큼 당황해서 횡설수설 댔다.
“최근에 어떤 프로젝트를 했고 현재 업무는 과거 했던 업무랑 이렇게 저렇게 다른데 나한테 잘 맞는 것 같다” 등등 …
틀린 답은 아닌데 뭔가 버벅대고 동문서답을 한 듯 한 이 기분 어쩌지?
(물론 다음날 이불킥을 심하게 했다. 며칠 동안 더 그랬다. 하루로는 부족했다. )
내가 이 위기를 모면하고자 ”당신은 어때요? “ 하고 질문을 빠르게 상대에게 넘겼다.
그의 답이 내 머리를 띵하고 때리면서 ”Aha 아하“ 모먼트를 선사했다.
”나는 사람들을 성장시키는 것에 열정을 가지고 있어요. 나는 35년 동안 일을 해 오면서 최근에는 많은 사람들을 리드하고 있으면서 경험한 것이 한 가지 있어요. 그 어떤 것보다도 리더가 직원들의 성장에 관심을 가지고 직원의 역량을 성장시키고 그들이 더 잘 되어 원하는 길로 뻗어나가도록 돕는 것이 사람들을 동기부여한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내가 다른 이들을 도우면 그들은 나와 조직을 위해서 더 열정적으로 일하고 성장해요. “
김상무님은 사장이 되고 싶은데 나는 왜 그런 무언가가 되고 싶지 않은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사장이든 부사장이든 그런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도 ’ 마크’처럼 어떤 의미와 가치를 실현하는 그런 커리어 골을 마음 한편에 가지고 있었고 자기 효능감의 부족인지, 여성의 자기 인식 때문인지 말로 뱉지도 못하거니와 나 스스로에게도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 돌아보았다. 나의 지난 커리어 여정을. 나는 어느 곳을 바라보면서 여기까지 왔을까? 지독한 일벌레로 살아오면서, 그러나 가정과 일의 공을 저글링 하면서 위태롭지만 치열하게 살아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그 안에서 꼭 붙잡고 싶었던 그런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나를 생계형 회사원에서 조직의 리더가 되고 싶은 사람을 꿈꾸게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9년 전에 함께 일했던 나의 리더 오웬(가명)이었다. 오웬의 리더십은 남달랐다.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인격적으로 대화했다. 짧은 대화에서도 메모를 하고 다음에 만나면 지난번에 나눈 대화에 대해 근황을 물으면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어갔다. 오웬은 일을 할 때도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하고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숨겨진 잠재력을 성과로 만들어갔다. 나는 오웬과 일하면서 훌륭한 리더가 있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도 미처 몰랐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고 자신의 생각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서 성장할 수 있는지를 보게 되었다. 그래서 이왕 생계를 위해서 오래도록 직장생활을 해야 한다면, 매일 이곳에서 여덟 시간을 보내야 한다면,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이곳의 동료들과 보내야 한다면 나도 오웬과 같이 사람이 되어야겠다. 나도 다른 이들을 더 멋진 사람이 되게 해 주는 그런 리더가 되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많은 변화를 받아들이고 빚을 내어 경영대학원에 가기도 하였으며, 나를 돕는 이들의 손길에 의해 한 조직의 리더가 되었다.
이제 나의 푯대는 어디에 있는가? 그때 그 마음으로 돌아가 사람들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발굴해 주며 다양한 기회와 도전으로 초대하는 일을 향해 더 전진하여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그것은 유치원 꼬마 ‘여준’이의 자랑스러운 아빠 김 차장이, 시골에서 반찬가게를 하시는 어머니의 귀한 막내딸 ‘지은’씨가, ‘소라‘씨의 든든한 남편 이 부장이 그들의 삶에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터에서 (사실은 일생에서) 더 나은 사람이 되어 가는 과정을 돕는, 그리고 나도 같이 성장하는 그런 가치 있는 일인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기다움을 지키며 더 신나게 일하는 조직문화를 만들고 싶다.
여전히 나는 나의 next job 은 모르겠다. 오히려 무엇이든지 가능하다. 다만 그 일이 나의 커리어 목표를 향하여 뚜벅뚜벅 나아가는 여정의 방향과 맞다면 말이다. 이제 마크이든, 오웬이든, 누군가 내게 “당신이 열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라고 다시 묻는다면 이렇게 말해야겠다.
“나는 사람들의 숨겨진 재능을 찾아주고 성장시키는 일에 열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은 조직 문화를 만들어가는 일에 열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