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팀장, 뚜껑 열렸다.

우리 팀장은 왜 좋은 말로 안 하고 화를 낼까?

<리더는 직원들이 일잘러가 되길 인내하고 기다린다. >


일잘러(일을 잘하는 사람들)의 특징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글들을 많이 접할 수 있는 요즘이다. 그중에서도 공감이 되는 부분은 일잘러란 일의 목적을 명확히 이해하고 스스로 동기부여하고 자기 주도적으로 일을 추진해 가는 사람이라는 대목이다. 직급이 높아도 낮아도 일의 목적과 문제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상사가 시키는 일만 하면서 대충 업무시간을 보내는 경우에는 같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도 성과를 내지 못하고 리더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


물론 스스로 일잘러로 타고나는 사람들이 간혹 있기는 하지만 모두가 처음부터 일잘러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일잘러가 아니라고 했더라도 누구나 일을 하면서 스스로 배우고 익히며 탁월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할 수 있다. 그렇게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리더나 동료의 도움과 피드백은 더 큰 자양분이 된다. 누구나 자신과 타인의 노력으로 일의 원리를 터득하고, 조직에서 자신의 역할과 가치를 발견하면서 일잘러가 되어갈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잘러로 도약을 할지 아니면 그저 주어진 일을 한다고 하면서 머물러 있기를(사실은 성장하기를 멈추는) 선택하는 것 또한 개인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탁월하게 일을 하고 싶은 나의 자아와 대충, 적당히 일하고 싶은 나 자신과는 매 사업마다, 매 태스크마다, 매일마다 격돌하기 마련이고 그곳에서 우리는 각자의 선택을 할 수 있다.


리더의 입장은 어떨까? 좋은 리더는 팀원들의 성장을 돕는 것을 중요한 자신의 역할과 가치로 인식한다. 그렇기에 다소 팀의 성과가 목표에 미치지 못하거나 진행속도가 더딜 때 인내하고 기다려 주며 팀을 도우려고 애를 쓴다. 다시 한번 더 문제를 명확히 인지하도록 돕기도 하고, 목표를 재확인시키면서 개선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나 언제까지 기다려줘야 할까? 언제까지 기다릴 수 있을까? 리더에게는 이끌고 있는 팀이 조직에서 달성해야 하는 명확한 사업 목표가 있다. 그것이 그 목표를 달성해서 팀의 성과를 만들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마냥 기다려주고 좋은 리더인양 행동하다가 그 팀의 성과가 좋지 않아서 부서 전체가 무능한 조직으로 평가받을 수도 있고, 사업이 중도하차해서 조직을 축소하거나 심지어는 조직이 모두 없어지는 경우도 생길 수 있는 것이 냉정한 비즈니스의 세계다. 그래서 리더도 일잘러만 있지는 않은, 그러니까 A성과자도, B성과자도, C성과자도 있는 팀을 다독이며 팀웤을 내고 이끌어가면서 성과를 내자니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리더가 폭발했다>


인내와 성취 가운데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노력하는 리더도 감정적으로 폭발하고 화를 쏟아내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나도 그랬다.


“여러분, 도대체 왜 이런 실수가 계속 일어나는 거죠? “

”대리점에서 이벤트 고객 응대 절차를 숙지하고 못하고 있으면 이 이벤트가 제대로 되겠어요? “

”판매는 증대가 되겠어요? “

”우리 팀 이런 식으로 해서 실패하고 실력도 없는 팀으로 낙인찍혀도 괜찮아요? 맨날 열심히 한다면서 억울하지 않으세요? “


멈출 줄 모르고 속사포같이 퍼붓는데 이 차장이 어쩔 줄 몰라하며 화가 나 험상궂은 얼굴을 한 나를 진정시킨다.

“죄송합니다. 빠르게 개선하고 다음 주부터 이벤트 현황을 세세하게 트래킹 하고 보고 드리겠습니다.”

옆에 있던 다른 박 과장이 거든다.

”죄송해요. 저희가 월말 업무가 많아서 월초 일정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놓쳤습니다.”


나도 밀리지 않고 쐐기를 박았다.

“그런 변명은 프로답지 못해요. 실수가 반복되면 실력이 없는 거예요.”

이렇게 마무리를 하고 직원들을 자리로 돌려보낸 후 나도 자리에 앉았다.


갑자기 좌절감이 몰려왔다. 과거에 나한테 감정적으로 화를 쏟아붓던 그런(?) 리더들과는 뭔가 좀 다른 리더가 되고 싶었는데 결국 나도 별반 다를 것 없었다. 책상에 앉아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이런 화가 지금 이 일을 하는데 빨리 상황을 해결하는데 어떤 도움이 되기는 할까? ’하고 의구심까지 들었다.


‘인내심의 바닥을 드러내고 감정을 폭발시킨 리더인 나의 모습’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뭐가 있을까?

ㅈㄹ?

”우리 리더가 오늘 진짜 뚜껑이 열려서 ㅈㄹ을 하더라…” “열받더라…” 하고 직원들의 술자리에 안줏거리로 올라도 억울할 것이 없다. 한마디로 나는 이성을 잠시 놓고 감정을 폭발시켜 지랄을 한 리더가 되었다.


나는 왜 이렇게 화가 났을까?


내가 다혈질이라서? 그것도 일정 부분 맞다. 그러나 가정에서는 나의 있는 그대로의 타고난 성향을 거침없이 쓰는 것과 달리 회사에서는 사회적인 자아가 압도적으로 우세하게 작용한다. 가족도 화를 내고 다투고 나면 꼴 보기가 싫은데 타인과 다투고 나면 쉽사리 감정을 추스르고 다시 얼굴을 마주 보고 아무렇지도 않게 일하기가 쉽지 않아 부단히 노력을 하던 나였다. 그런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구구절절 내가 화를 낸 것이 정당하다는 변명은 늘어놓고 싶지 않다. 그러나 왜 화가 났는지는 좀 적어봐야겠다. 어느 회사이든지 매출 증대를 위한 다양한 이벤트를 하는데 그 이벤트는 고객입장에서 흥미를 당겨야 하며, 참여가 쉽고, 참여 이후의 혜택 제공등이 물흐릇이 매끄러워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고객의 참여 여정(journey)을 처음부터 끝까지 살피는 통합적인 관점과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 일을 1단계 김 과장, 2단계 박대리, 3단계 이 차장이 각자 자기 몫을 하고 완료를 외쳤다고 해도 현장에서 고객입장에서는 어떻게 보이는지 누군가는 확인을 했어야 했다. 현장에서는 문제없이 잘 돌아가는지 고객이 아니어도 고객을 직접 응대하는 대리점의 피드백을 통해서라도 들었어야 했다. 현장에서의 이벤트 플로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현장에 방문한 내가 발견한 것은 어처구니없는 실수였다. 그리고 이 실수는 처음이 아니었다. 계속 나의 레이더에 걸려드는 실수에 대해서 정중하게 여러 번 이야기를 해 왔는데 개선이 되지 않자 이번에는 폭발을 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에서 리더가 감정적으로 화를 낼 때 팀 분위기는 위축되거나 관계가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분노를 드러내기 전에 한 번 더 멈추고 생각했어야 하고 어떻게 하면 문제를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지를 논의할 수 있었다. 아니 이런 것을 잘 알고 있는 내가 왜 화를 참지 못했던 것이냐 말이다.


<리더의 속사정>


사실 내게도 말하지 못한 속사정이 있었다. 임원이 되고 나서 내게 주어진 비즈니스의 압박으로 문드러진 내 마음도 엉망진창이다. 직원들이 들어가지 않는, 어김없이 돌아가는 경영진 회의에서 실적 부진에 대해 받는 질타를 아마 우리 팀들을 모를 것이다. 울고 싶고, 눈물이 또로록 흐를 것 같은 순간마다 얼마나 눈을 부릅뜨고 물러서지 않으려고, 우리 부서를 대표하는 리더로서 당당하게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를 적극 피력하는 날이 한두 번이 아니다. 살얼음과 같은 그 순간을 겪으면서 우리 직원들이 조금만 더 힘을 내어 준다면, 각자 맡은 일을 조금은 더 탁월하게 해 준다면 지금보다는 나을 텐데 하고 안타깝고 답답했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당연히 해야 하는 일도 구멍을 팀에게 나는 실망했고 이제 더 이상 참아주고 기다려줄 힘이 나질 않았던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치열하게 살아왔고 탁월하게 일하고자 몸부림을 치고 있으니 당신들도 그렇게 하라고,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내 마음 깊은 곳에 있었다.

똑부형(똑똑하고 부지런한) 리더는 직원들을 힘들게 한다. 돌아보니 나는 아마도 똑부형 리더인 것 같다. 끝도 없는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빠르게 일처리를 하는 일벌레이다.… 다시 말해 매우 피곤한 유형의 인간이다.


이런 점은 내가 누군가의 팀원이고 아랫사람일 때는 나는 정말 충직하고 쓸모 있는 직원이 되었다. 내 리더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살피고 요즘 비즈니스 관련 사내에 돌아가는 현상이나 주요 이슈에 대해서 자동적으로 레이더가 잘 가동되고 있어서 리더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적시에 또는 미리 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사원, 대리 같은 주니어 시절에는 내 보고서가 빨간 줄이 쫙쫙 그어진 채 ‘수정 요망’으로 되돌아온 적도 많았고, 리더가 필요한 정보를 사전에 미리 파악하지 못하고 보고하러 갔다가 ”죄송합니다. 다시 확인해 보겠습니다. “라고 하고 돌아오기 일쑤였다. 그런데 그런 모습의 나를 스스로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 프로젝트는 어떻게 되고 있느냐? “ 고 추궁이나 독촉을 받는 것이 프로페셔널해 보이지 않아 차차 선제적인 보고(어떤 일이 안 좋을 것 같은 경향이 있을 때 미리 헤즈업을 주거나, 진행상황에 대해서 알아서 주간 미팅을 세팅하여 정기 업데이트를 한다든가 하는 식의)를 하고 리더를 잘 보좌하려고 했다. 그러는 사이에 어느새 리더를 잘 보필하는 부하직원이 되어 있었다.


<일잘러의 치명적 약점은 일잘러가 아닌 직원들의 대한 배려가 없다?>


그런데 리더가 되고 나니 이런 나의 부지런함과 빠른 액션, 넘치는 열정은 때로는 직원들을 숨이 막히게 하거나 헐떡거리며 겨우 겨우 나를 쫓아오게 하는 것 같다. 나도 이것을 알고 있고 직원들이 종종 내게 정직한 피드백을 주기도 했다. 한 번은 정기적인 원온원에서 한 직원이 내게 말했다. ”아주 훌륭한 선수는 뛰어난 감독이 될 수 없다는 말이 있어요.” “저희들이 일하는 것이 상무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겠지만 우리는 그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니 조금 더 기다려주시면 좋겠어요.”


나는 한 방 맞은 것 같이 잠깐 사고가 멈춰 버리고 말문이 막혔다.

’띵? 이거 뭐야 칭찬이야? 욕이야?’

내게는 이렇게 들렸다.

”당신은 선수로서 훌륭한 사람이지만 좋은 감독은 아닌 것 같아요. 우리들과 생각과 행동에서 gap 이 있어요. 당신은 우리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요. 우리는 당신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해요 “

듣고 싶지 않은 말이고 기대치 못한 말이지만 그 피드백은 한동안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운동장에서 헉헉 거리면서 최선을 다해서 뛰고 있는데 감독이 선수들을 향해 “지금 뭐 하는 거야? 더 열심히 뛸 수 없어? 기술은 왜 그래? ”이렇게 다그치고 있다는 것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팀원일 때 일잘러와 리더일 때의 일잘러가 해야 하는 역할이 다르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순간을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 리더의 분노도 일잘러의 스킬도 아니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시키지 않는 야근을 하면서 열정을 불사른다고 해서 직원들이 나와 같은 크기의 열정을 가지기를, 똑같이 자발적인 야근을 기꺼이 하기를, 비즈니스 목적에 맞게 자기 주도적으로 스스로 동기부여하고 더 빠른 실행을 해 주기를 강요할 수 있는가? 그리고 팀으로서 성과를 내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꼭 나처럼 부지런한 일벌레라는 방법만이 유일한 길인가? 일단, ‘노동법이나 회사 조직 문화상 이런 게 가능한가? ’하고 생각해 본다면, 금전적 인센티브나 승진과 같은 적절한 보상을 준다면 현재 수준보다 한 단계 더 강도 높은 업무를 요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이 저마다 일을 하는 동기가 다르고, 일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고, 능력이 다르기 때문에 개개인을 동기부여 하고 더 나은 성과를 내도록 하는 것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 어떤 명쾌한 공식이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결코 억지로는 절대 직원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리더의 분노로도, 리더의 뛰어난 일잘러 스킬로도 직원을 결코 움직일 수 없다.


정말 사람들을 더 잘 움직이고 싶으면, 오히려 시간이 더 필요하고 인내심이 필요하다. 정중하게 어떤 일의 목적을 잘 정리하며 이해를 시키고 공감대를 형성하고, 회의를 통해 논의하고, 메일로 정리해서 재차 전달하고, 자료를 공유하면서 친절한 가이드가 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라는 것을 터득하게 되었다. 오래 걸리고 비효율적인 듯 보여도 강압이나 폭언으로 찍어 누르기, 협박하기, 윽박지르기로는 절대로 원하는 목적지에 갈 수 없다. 리더의 열정과 열심히 팀원들보다 저만치 앞으로 자신을 밀어붙여도 다시 멈추고 기다리고 인내심을 가지려고 사실 숨은 노력을 하면서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계속 직원들에게 하나의 일에 대한 목표와 기대치가 무엇인지를 재확인시키고 다양한 방법으로 그들을 지원하고, 더딜 때는 구체적으로 개선 요청하는 다소 느려 보이는 이 방법 외에는 리더 혼자가 아닌 우리가 함께 가는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내가 비록 회사에서 리더의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여전히 인간으로 미성숙하고 더 훈련해야 함을 인정하고 자세를 낮추게 되는 순간이다.


<화해와 용서가 필요한 순간>


감사하게도 나는 좋은 팀원들과 함께 일하고 있으며 그동안 신뢰를 잘 쌓아왔다. 서로 간에 화가 누그러진 늦은 저녁에 한 분이 오셔서 잠깐 이야기를 하자고 하셨다. 그 직원의 솔직하고 용기 있는 행동 덕분에 무엇이 문제였는지, 어떤 어려움 때문에 실수가 있었는지,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지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감정적으로 화를 낸 나의 행동에 대해서 사과를 했다. 덕분에 나도 감정을 추스르고 이렇게 나의 분노와 리더십에 대해서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한 순간을 참치 못하고 분노를 표출했다. 그러나 정작 원하는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았다면 잘못된 행동이고 실수이다. 이것을 알았다면 다시 화해와 용서가 필요한 순간을 다시 마주해야 한다. 그런 화해와 용서의 순간이 나에게 와서 다행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어렵다. 직장생활. 서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 너무 무르지도 말고 너무 딱딱하지도 말고 적당히 부드럽고 적당히 단단한 사람이 되고 솔직하고 건설적인 소통을 이어가는 과정은 쉽지가 않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다면 이 또한 진보가 있으리라 믿어보자고 나를 다독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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