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살아갈 용기

나답게 사는 데 용기까지 필요할 일이야?

세상을 나답게 살아가는 데는 참으로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나는 아직 읽지 못했지만 베스트셀러 중의 하나인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의 제목을 보고 참으로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내가 가정과 직장에서 나답게 살아가기 위해서 부단히 연습하는 것은 ’천천히 살아갈 용기‘가 아닐까 싶다.


<빨라서 뭐가 좋은데? 속도가 그렇게 중요해?>


생각해 보면 살면서 뭔가에 쫓기며 초조했던 적이 종종 있었다.


대학 입시에서 원하는 만큼의 성적이 나오지 않아서 성적에 맞는 학교와 전공에 원서를 넣었을 때 나의 인생의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 그렇게 떠밀리듯이 결정이 되어버렸다. 고작 스무 살, 만 열아홉 살에 내게 누가 “실패해도 괜찮다. 될 때까지 해 봐. 너의 꿈을 위해 오래 걸려도 도전을 해도 된다 “고 말해 주었다면 나는 그렇게 쫓기듯이 전공을 결정하고 아버지가 그렇게 고생하시면서 마련해 주신 등록금을 4년이나 마음도 없는 곳에 쓰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취업을 하면서 다이어리에 이곳저곳 지원한 회사의 리스트가 100번을 넘어갔다. 어디라도 들어가서 빨리 일을 하면서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는 직장과 타이틀을 가지고자 닥치는 대로 원서를 썼는데 어떤 가방 제조업의 작은 공장에 있는 사무실에 면접을 갔을 때는 회사가 찾고 있는 직무의 요건보다 스펙이 너무 높아서 떨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원서를 쓰고 낙방하기를 계속하면서 어느 날 오후에 침대에 누워 ‘나는 이제 무엇을 먹고 어떻게 살까? 영영 나에게 아무 기회가 오지 않는다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면서 흐느꼈었다.


서른 살이 넘어서는 친구들이 하나둘씩 결혼을 하면서 그 나이 또래에 해야 하는 결혼을 못할까 봐 전전긍긍하기도 했다. 마흔이 넘어서는 서른 후반부터 후배들이 팀장이 되기 시작하면서 아직 실무자였던 내가 그렇게 초라해 보일 수가 없었던 적도 있었다.


나는 그다지 당차지도 용감하지도 않았던 평범한 한국인으로서 한국에서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나이에 맞는 그런 것들을 갖춰야 하는 그 속도에 밀려서 살아왔던 것 같다.


그러나 그렇게 떠밀려 살아온 삶의 속도는 이제 그만 쫓아가기로 결정했다. 끝도 없는 비교와 무한 경쟁의 무리 속에서 휩쓸려 달려가던 그 달음박질을 이제는 쫓아갈 힘이 별로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자문을 하게 되었다.


<속도와 깊이는 선택의 문제일지도>


최근에 요한하리 작가의 ’ 도둑맞은 집중력(Stolen Focus)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속도와 깊이를 함께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 질문한다.


서던캘리포니아 대학의 마틴 힐버트 박사와 캘리포니아 개방대학교의 프리실라 로페즈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1986년에 인간에게 쏟아지는 정보(텔레비전과 라디오, 독서)를 모두 합치면 대략 85쪽 분량의 신물을 매일 40종 읽는 것과 같았는데 2007년에 그 양이 하루 174종의 신문을 읽는 것과 맞먹는 수준으로 증가했음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 같은 정보량의 증가가 전 세계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느낌을 유발하는 요인이다. 2025년에는 얼마나 더 늘었을지 가늠하기도 어렵고 날마다 쏟아지는 정보에 압도되어 지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자신이 노출되는 엄청난 팽창과 정보가 들이닥치는 속도를 아무 대가 없이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그건 착각이라고 한다. 점점 진이 빠지게 되었고 모든 차원에서 깊이를 희생하고 있다고 말한다.

깊이는 시간을 요구합니다. 깊이는 사색을 요구해요. 관계에서의 깊이도 시간이 필요하다

모든 것을 다 따라잡아야 하고 늘 이메일을 보내야 한다면 깊이를 가질 시간이 없어진다고 이 책에서는 말한다.


가족이 한 식탁에 마주 앉아 핸드폰과 미디어 기기를 잠시 내려놓고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밥 한 끼를 하는 것, 이 당연한 것이 우리 집 식탁에서도 참으로 어려운 일이 되었다. 빨리 팀장이 되고 싶었고 팀장이 된 후에는 더 승승장구하고 싶었던 나는 마흔 초 중반 몇 년 동안 대학원에 가고 잠을 줄이며 밤늦게 공부하고 아이들 뒷바라지한다고 정신없이 살았고, 나중에 가야지 미루며 자주 찾아뵙지 못했던 친정아버지는 그 사이 훌쩍 늙으셨고 어느 날 우리 곁을 떠나셨다. 인생은 유한하고, 하루는 스물네 시간뿐이며 자신의 몸뚱이와 건강도 내가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보내는 매일의 날들과 매 순간은 무척 소중한 것이다. 그것을 빠르게 목표를 위해서 달려가는 그 속도에만 집중하다 보면 그 소중한 순간들에 꼭 느끼고 몸과 마음에 새겨야 하는 삶의 지혜와 추억을 놓치게 되었던 것 같다.


7박 8일에 유럽 3개국을 갈 수 있다고 하는 홈쇼핑의 요란한 패키지여행 상품을 보면서는 “저런 여행은 수박 겉핥기로 하는 여행이지”, “천천히 현지인의 속도로 살아가면서 느껴야 진정한 여행이지.”라고 말하면서 정작 중요한 우리 삶의 여정에 대해서는 그러지 못하지 않았나 돌아보게 된다.


그래서 나는 얼마나 빨리 갈지 속도를 선택하기보다는 삶과 관계의 깊이를 선택해 보고자 한다.


<그러나 보통 용기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천천히 가기가>


의대를 가기 위해서 유치원부터 입시를 준비한다는 나라에서, 계속 집값을 올리면서 이사를 가고 신규 분양을 받으면서 자산의 가치를 올리고 더 젊을 때부터 은퇴 후 노년기를 위한 자산을 준비하기 위한 재테크를 서둘러하라고 부추기는 사회에서 천천히 가기가 쉽지가 않다. 이거 저거 다 쫓아갈 에너지도 모자라거니와 그런 것들로부터 뒤쳐질 때 느끼는 패배감과 초조함을 당당히 거부하고 내 갈 일을 가자니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보고 싶다.


저녁에 퇴근할 때마다 아흔둘이 되신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곤 한다. 어머니는 매일 퇴근 후 녹초가 된 몸으로 집에 가서 밥을 짓고 가족을 돌보는 것이 어떠한 것이지 나보다 앞서 경험하셨기에 “우리 며느리, 고생 많다. 피곤하지? 그러나 그것이 행복이다 그렇게 생각하렴” 하신다. 어느 날부터 그런 말씀이 그저 노인네의 말이 아니라 아무나 들을 수 없는 아흔을 살아온 어머니가 평생의 삶을 통해 터득하신 지혜로운 조언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 맞아. 다음을 위해서, 미래를 위해서 왜 오늘을 희생해야 하지? 왜 이 순간을 희생하고 이 순간을 충분히 누리지 못해야 하는 걸까? 그렇게 종종거리며 사는 내게 어머니께서 말씀하신다.


“행복을 찾고 있니? 지금 너의 삶이 행복한 순간이란다”



늘 듣던 말인데 어느 날 어쩐지 나는 귀가 열리고 그 말을 “네 맞아요. 그렇게 살게요” 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큰 아이가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중학교 삼 년 동안도 용기 있는 아이, 거침없는 아이의 성품과 기질 때문에 아이의 속도대로 기다려주면서 나의 조바심과 싸웠다. 삼 년을 그렇게 보냈는데도 여전히 나의 조바심은 앞으로 삼 년내에 우리 아이의 인생이 결정이라도 되는 양 여전히 초조해하기도 한다. 새로운 학교, 친구들, 선생님을 만나고 적응하느라 애를 쓴 아들이 10시 반이 조금 넘어 쓰러져 잤다. 평소 자정이 넘어도 자지 않아서 잔소리를 했는데 저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애를 쓰나 보다 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어느 동아리에 들어갈까? 어떤 대학에 갈까? 무슨 공부를 하면서 어떤 사람이 될까? 저도 고민을 시작할 거다. 거기다가 나까지 밀어붙이지 말자. 그리고 삼 년에 인생이 결정되지도 않는다. 그건 잘못된 말이지. 우리가 우리의 속도대로 우리의 매일을 용기 있게 살아간다면 언제든지 우리의 삶을 원하는 대로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오히려 알려주는 엄마가 되어야지 않을까?


회사에서도 더 빨리 성과를 내고 더 빨리 더 높은 곳으로 승진을 하고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는 압박과 싸우기도 한다. 그래서 초조하다. 그러던 중 선물 같은 만남이 있었다. 회사를 36년 동안 다니신 본사의 시니어 리더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서비스 센터에서 차를 고치는 정비 일부터 시작했던 하얀 머리의 노신사는 어느새 한 직장에서 36년을 보내며 수많은 부서에서 일을 하며 쌓아온 경험과 지혜를 나눠주셨다. 그분은 많은 업무를 경험하셨는데 한 번씩 이동을 할 때마다 성장하지 않고 정체하거나 후퇴할 때도 있었다고 했다. 앞으로만 가는 것이 좋아 보이지만 그렇지 않고 정체되거나 후퇴할 때도 배우는 것들이 모두 쌓여야 그런 훌륭한 리더가 될 수 있나 보다 하면서 마음에 진한 울림을 주었다. 너무 바쁘고 신나는 날도 있고,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나 하고 정체성이 흔들리는 안개 낀 날도 있고, 봄날의 따뜻함에 졸음이 살짝 오는 지루한 날도 있지만 지금 여기서 이 순간 최선을 다해서 일하고 배우고 경험하는 것이 결국은 그렇게 빨리 닿고 싶은 먼 훗날의 내가 되는 가장 옳은 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엑셀에서 피봇테이블을 돌리고 뻑뻑한 눈에 인공눈물을 넣어가며 수많은 자료를 들여다보는 일도, 기차를 타고 지방의 대리점을 오가며 사람들을 만나는 일도, 주말에 빨래를 돌리고 밀린 집안일을 하는 사이사이에 잠시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책을 몇 줄 읽고 글을 쓰는 것도 천천히 내 속도대로 가는 용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용기는 절대 흔들리지 않는 그런 마음의 상태가 아니라 흔들리고 초조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바로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자신에게 집중하며 이 순간에 의미 있는 선택과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돌아보니 천천히 가고자 하는 용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내 곁에 많다. 함께 다독이며 용기 있게 오늘을 살아보자. 더 깊이 관계를 맺고 더 깊이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그렇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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