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 엄습할 때
사무실에서 야근 중인 엄마의 전화가 울렸다.
“응, 예쁜 우리 딸~ 전화했어?”
은율이가 말했다.
“엄마, 오늘 몇 시쯤 집에 올 것 같아?”
“엄마는 보통 7시 전후로 집에 도착하지.”
“혹시 오늘 엄마, 조금만 일찍 와 줄 수 있어? 나 오늘 좀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혼자 있고 싶지 않아.”
“무슨 무서운 생각? 우리 딸, 평소답지 않게 왜 그럴까? 거실에 TV 좀 틀어놓고 할 거 하고 있어. 엄마 지금 하던 일 마무리하고 가야 해서 더 일찍은 안 될 것 같아. 미안해.”
“음… 알겠어. 엄마, 그럼 7시에는 꼭 와야 해. 알았지?”
사실 은율이가 엄마의 시간 약속에 기대했다가 실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약속한 대로 7시까지 들어오면 다행이다. 엄마는 보통 약속한 시간에 잘 나타나지 않아서 꼭 전화를 한 번 더 하게 하곤 했다.
“엄마, 지금 7시 넘었는데 어디야?”
그러면 엄마는 언제나
“아, 미안 우리 딸, 엄마 지금 차가 너무 막혀서… 얼른 갈게.”
하거나, 어떤 날은
“엄마 나오는데 급한 전화가 와서 처리하느라 또 늦었네.”
하며 수만 가지 이유를 늘어놓곤 했다.
은율이가 엄마의 퇴근 시간을 얼마나 기다리는지, 혼자 있는 게 너무 싫을 때도 있다는 걸 엄마는 잘 모르는 것 같아 서운할 때가 종종 있었다. 은율이는 다시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혹시 오늘 좀 일찍 퇴근할 수 있어? 엄마는 오늘 일곱 시 되어야 도착한다는데, 나 지금 혼자 있기가 너무 싫어.”
“은율아, 어쩌지? 아빠가 6시 반에 손님이 오기로 되어 있어서 갑자기 미팅을 취소하고 들어가기가 곤란한데 말이지. 은율이 좋아하는 유튜브 콘텐츠 보고 있으면 어때? 시간 금방 갈 텐데.”
“할 수 없지. 아빠, 꼭 빨리 와야 해. 미팅 끝나는 대로 꼭.”
“그래. 바이.”
전화를 끊고 리모컨을 찾아 TV를 켰다. 엄마랑 몇 번이나 같이 본 적이 있는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를 한 편 틀었다. 밝고 환한 목소리의 주인공들이 나타났다. 덕분에 집 안에는 은율이 혼자 있는 것 같지 않고, 뭔가 덜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냉장고를 열어 우유를 한 컵 따르고 초코 빨대(빨대 속에 초코가 들어 있어서 우유에 담그고 빨대를 빨면 초코우유 맛이 난다)를 하나 꽂아 거실의 둥근 탁자에 내려놓았다. 책가방을 열어 필통을 꺼내고 수학 문제집을 펼쳤다. 엄마는 하루에 일정한 분량씩 숙제를 내줘서 그것만 하면 놀 수 있도록 해 주기 때문에,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빨리 풀어오려 했었지만 한 문제밖에 못 풀고 도로 들고 왔다. 요 며칠 6학년 2학기 ‘공간과 입체’ 단원을 복습하는 중이다. 은율이는 작년까지만 해도 학교를 마치고 학원을 돌다가 엄마의 퇴근 시간에 맞춰 집에 돌아오곤 했다. 그러나 5학년을 마치고 은율이가 엄마에게 제안을 했다.
사실 부탁이었지만 제법 설득력 있고 조리 있는 논리를 펼쳤기 때문에 엄마도 수락했다. 그 부탁은, 이제 혼자서 공부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고 집에서 혼자 있어도 전혀 무섭지 않으니 학원을 그만 다니고 싶다는 것이었다. 사실 학원을 다녔지만 은율이는 수줍음이 많아서 몰라도 ‘모른다’고, 이해를 못 해도 ‘이해를 못 했다’고 말을 못 하고 넘어가기가 일쑤였다. 그래서 집에서 모르는 것을 엄마에게 다시 물어보곤 했다. 은율이는 혼자 천천히 공부를 해 보고, 모르는 것만 엄마에게 물어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성적이 학원 다닐 때보다 나쁘면 다시 다니겠다고 나름 일종의 조건부 거래를 제안했다. 엄마는 은호 오빠의 자기주도학습을 이미 실험해 본 적이 있기 때문에, 은율이의 제안을 흔쾌히 들어줬다. 결과는 어땠을까?
은율이는 천천히 생각하고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했던 아이라, 자신의 속도대로 공부하는 것이 대성공이었다. 매일 학교에서 돌아와 엄마가 준 분량만큼은 성실히 소화했고, 모르는 것은 엄마나 때로는 은호 오빠의 도움으로 보완할 수 있었다. 은율이 눈에는 엄마도 달라졌다. 예전엔 은호 오빠의 공부에 욕심이 많았지만 시행착오를 겪은 뒤에는 모두가 100점을 맞고 최고가 되어야만 하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은율이를 편하게 해 주었다. 은호가 96점을 맞아도 아쉬워하던 엄마는 이제 은율이가 80점을 맞아도 잘했다고 했다. 은율이는 엄마가 너그러워졌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그런 게 아니었다.
엄마는 은호와 은율이가 각각 다른 아이라는 걸 진작 파악하고 있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은호와 은율이의 장단점, 성품, 기질, 잠재력을 수많은 놀이와 관찰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감 넘치고 당당한 은호에게 하듯 은율이를 다그쳤다가는, 은율이가 스스로를 자책하거나 실망하거나 좌절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엄마는 은율이가 보여주는 성실함과 한결같음을 칭찬했고, 결과에 대해서는 크게 나무라지 않았다. 은율이는 어떤 일의 결과를 이미 스스로 곱씹고 되돌아볼 수 있는 진지한 아이라는 걸 엄마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은율이가 펼친 6학년 2학기 ‘공간과 입체’ 단원은 1㎝×1㎝×1㎝의 정육면체 쌓기나무로 다양한 도형을 만들고, 앞에서 보이는 면과 뒤의 보이지 않는 면을 잘 살펴보며 쌓은 모양에 따른 쌓기나무 개수를 알아보는 내용이었다. 수의 계산을 많이 해야 하는 다른 단원은 연산이 조금 느린 은율이에게 시간이 더 필요했지만, 쌓기나무 단원은 어쩐지 쉽게 느껴졌다. 은율이는 우유의 빨대를 쪼르륵 빨아 초코맛 우유로 목을 축였다. 그리고 뒷베란다로 가서 나무블록 장난감을 찾아왔다. 엄마가 웬만한 장난감은 모두 당근마켓으로 나눔 했지만, 나무블록은 쓸 곳이 있을 것 같다며 남겨두었는데 요즘 쌓기나무 공부할 때 여간 유용한 게 아니었다. 머릿속으로 도형을 그리면서 문제를 풀 수도 있었지만, 나무블록으로 직접 도형을 만들다 보면 공부라기보다 놀이 같아서 더 재미있었다. 그렇게 도형을 쌓았다 흩트렸다 하면서 문제집 한 장을 풀었다.
삼십 분쯤 지났을까, 창밖을 보니 벌써 캄캄했다. 밤이 길어져 아직 여섯 시 반인데도 해가 졌나 보다. 어쩐지 아파트 맞은편 동에서 우리 집을 들여다보고, 은율이가 아직 혼자 있는 걸 알 것만 같았다. 베란다 블라인드를 내렸다. 엄마는 아침마다 출근할 때 햇볕으로 집안을 살균해야 한다며 블라인드를 꼭 천장 끝까지 올려놓고 간다. 정말 효과가 있는지는 은율이는 잘 모르겠다. 아직도 엄마가 올 시간이 멀었다고 생각하니 시간이 더디게만 느껴졌다. TV 속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여전히 자신들끼리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괜히 한쪽 방에서 ‘딸깍, 딸깍’ 소리가 나는 것 같아 으스스한 생각이 들었다. 이불을 뒤집어쓸까 하다가 용기를 내어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가 보았다. 불을 켰다. 아무것도 없었다. 조금 있다 은율이는 그 소리가 방과 연결되어 있는 베란다의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리라는 걸 알게 되었다. 엄마는 퇴근 시간에 맞춰 빨래가 되도록 예약을 해 두었고, 저녁에 와서 건조하려고 했던 것이다. 은율이는 피식 웃으며 거실로 돌아와 우유를 마저 마셨다.
‘띠띠 띠디딕. 철커덕‘.
“은율아, 엄마 왔다! 오늘은 엄마 약속 지켰지? 엄청 열심히 밟아서 왔어. 은율이 보고 싶어서. 오늘 잘 지냈어?”
‘웬일이지? 엄마가 시간 약속을 지키다니? ‘ 은율이는 얼른 현관으로 나가 엄마 가방을 받아 거실 소파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엄마, 오늘 내가 엄마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
“왜, 무슨 일인데?”
“나 오늘 지진에 대한 책을 하나 읽었는데, 그 이후로 지진이 날까 봐 너무 걱정이 되었어. 그리고 마음이 너무 불안해져서 갑자기 혼자 있을 수가 없더라고.”
엄마가 은율이 말을 듣고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무슨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그래? 그런 일 안 일어나. 걱정하지 마. 은율이는 참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그러더라. 아이답게 가서 속 편히 놀아.”
머쓱해진 은율이는 더 하려던 이야기를 멈추고 속으로 생각했다. ‘나도 그러고 싶었다고. 그런데 계속 생각이 나고 걱정이 되는 걸 나보고 어쩌라는 말이야.’ 엄마가 자신의 속상한 마음도 몰라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게 서운했다. 오늘 온종일 엄마를 기다렸던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은율이는 늘 걱정이 많았다. 엄마 아빠가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는 날이면 학교에서 오자마자 “엄마, 아무 문제없는 거지? 엄마, 나랑 오래오래 건강하게 같이 살 수 있는 거지?” 하고 물었다. 엄마의 검진 결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린다고 하면, 혹시 엄마 아빠가 어디라도 아플까 봐 걱정했다. 엄마가 회식을 하고 밤 운전을 할 때면 몇 번이고 전화를 걸어 “엄마, 안전하게 잘 오고 있는 거 맞지?” 하고 확인하곤 했다.
며칠 후 어느 날이었다. 엄마가 집에 들어오자마자 옷을 벗는 둥 마는 둥 갑자기 침대에 털썩 누워 베개에 얼굴을 묻고는 한참 동안 미동이 없었다. 은율이는 방으로 들어가 엄마에게 다가갔다. 처음엔 엄마가 너무 피곤해서 잠시 눈을 붙이는가 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 보니, 엄마가 얼굴을 파묻은 베개가 조금씩 젖어 색이 변하고 있었다. 엄마의 어깨가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화들짝 놀라 “엄마, 무슨 일이야? 엄마 지금 우는 거야? 왜 그래?” 물었다.
엄마가 코맹맹이 소리로 아직 멈추지 않은 눈물을 손으로 닦으며 말했다.
“은율아, 엄마 크리넥스 좀 가져다줄 수 있어?”
은율이는 얼른 화장대 위에서 크리넥스를 가져와 휴지를 몇 장 뽑아 건넸다. 엄마는 이제는 진정이 된 듯 휴지를 받아 눈물을 닦고, 코를 여러 번 소리 내어 풀었다.
“은율아, 엄마가 너무 속상해서 그래. 병원에서 연락이 왔는데 외할아버지가 더 못 버티실 것 같다고 다 같이 마지막 인사를 나누러 오라네. 엄마는 아직 할아버지랑 이별할 준비가 안 되었는데 말이야.”
은율이 외할아버지는 여러 가지 질병을 앓고 계셨는데, 최근 폐렴으로 입원하신 뒤 증세가 악화되어 중환자실에 계셨다. 엄마가 외할아버지를 잃을까 봐 걱정에 펑펑 우는 걸 보니, 은율이도 갑자기 코끝이 찡해지고 눈물이 흘렀다. 은율이는 평소에도 엄마의 감정 상태를 잘 살피고, 엄마가 기쁘면 같이 기쁘고 엄마가 슬프면 같이 슬펐다. 은율이는 마치 엄마의 언니라도 된 것처럼 엄마의 등을 쓸어주며 어른스럽게 위로했다.
엄마는 다시 일어나 평소처럼 저녁밥을 짓고, 은율이가 좋아하는 너겟도 에어프라이어에 바삭하게 튀겼다. 이것저것 밑반찬과 김을 꺼낸 후 은율이에게 말했다.
“은율아, 밥 먹자.”
둘은 식탁에 마주 앉았다. 너겟은 평소처럼 바삭하고 맛있었지만,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엄마의 얼굴을 보니 은율이도 밥맛이 없었다. 엄마는 은율이가 밥을 뜨면 김도 한 장씩 올려 주며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문득문득 눈빛이 슬퍼졌다. 다시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엄마가 힘들어 보이는 날이면 은율이는 더 의젓하고 착한 딸이 되었다. 낮에 마무리하지 못한 문제집을 풀고 조용히 있었다. 건조기가 띠리리리릭 소리를 내며 빨래를 가져가라고 알렸다. 평소 엄마처럼 빨래 바구니에 건조가 끝난 빨래를 담아와 소파 위에 쏟아놓았다. 수건을 한 장씩 개며 TV 속 드라마를 보았다. 엄마가 슬퍼도, 엄마가 같은 공간에 있으니 드라마 이야기도 귀에 들어오고 간간이 웃을 수도 있었다.
벌써 시계가 11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은율아, 이제 TV 끄고, 이 닦고 침대에 누워 있어. 엄마 곧 방으로 갈게.”
“응, 엄마.”
이를 닦고 침대에 누웠다. 아직 눈이 말똥말똥 떠 있고 전혀 졸리지 않았다. 엄마가 은율이가 개어 놓은 빨래 속에서 은율이 양말이랑 바지를 챙겨 와 서랍에 넣고는 침대로 올라와 은율이 옆에 누웠다. 침대가 폭이 좁아서 엄마가 같이 누우면 서로 몸이 딱 붙었다. 엄마 냄새를 맡으며 살을 맞대고 있으니 오늘 하루의 걱정과 불안, 조바심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은율아, 오늘은 책 10분만 읽을까? 오늘은 엄마가 피곤해서 딱 10분만 읽어야겠어.”
평소엔 은율이가 한쪽, 엄마가 한쪽을 번갈아 가며 읽곤 했다.
“엄마, 오늘은 책 읽지 말자. 그냥 이야기하자. 엄마 오늘 힘들었잖아.”
“그래, 그럴까? 은율이 하고 싶은 이야기 있어?”
“응, 나 있어. 엄마.”
“응, 엄마 듣고 있어. 말해 봐.”
“엄마, 사실 나 되게 자주 불안하고 걱정하고 염려 많이 하는 거 알지? 나도 이런 내가 싫은데, 이런 내 마음은 내가 맘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아. 엄마가 아까 할아버지랑 이별할까 봐 슬퍼했잖아. 나는 그런 생각이 자주 들어.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나. 혹시 사고가 나서 엄마나 아빠랑 이별할까 봐. 우리가 서로 떨어져 있을 때 지진이 나서 서로 흩어질까 봐.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가면 비행기가 떨어질까 봐. 엄마가 오늘 우는 것을 보니까, 엄마가 왠지 이제 내 마음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엄마가 답이 없었다. 고개를 돌려 엄마 얼굴을 보니 코끝이 빨갛게 되고 눈물이 맺혀 있었다.
“은율아, 미안해. 엄마가 네 맘 몰라줘서 미안해. “
그리고 말을 이어갔다.
”맞아. 사실 엄마도 불안하고 염려가 몰려오는 날들도 있고, 내일이라도 할아버지가 엄마 곁을 떠날까 봐 너무 불안해.”
엄마가 숨을 크게 “후~우, 후~우” 하고 쉬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잠시만 있어 봐.”
엄마가 갑자기 일어나 침대 밖으로 나갔다. 엄마가 거실 책장에서 성경책을 가지고 왔다.
“엄마가 요즘 성경책을 잘 읽지는 않지만, 어렸을 때 엄마도 너처럼 갑자기 불안하거나 무슨 걱정이 몰려올 때 할아버지가 알려주셨던 기도가 있어. 잠시만 찾아볼게.”
한참을 뒤적거리던 엄마는 “찾았다.” 하면서 성경책을 펼치고 한 구절을 읽어 주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그리스도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리라.”
은율이는 교회 초등부에서 전도사님이 설교를 하실 때 들어본 것 같지만, 사실 무슨 말인지 정확히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엄마는 두세 번 더 읽었다. 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엄마가 네 나이에, 너처럼 걱정하느라 잠도 설치고 했을 때 할아버지가 이 기도를 알려주셨어. 엄마도 그때 무슨 말인지 정확히는 몰랐지만, 할아버지가 ‘너희 마음과 생각’이라는 부분에 ‘지은이(엄마 이름) 마음과 생각’이라고 바꿔서 기도하면 마음이 진정될 거라고 해 주셔서 마법의 주문처럼 읊조리곤 했었지. 그럼 신기하게도 마음이 진정이 되었어. 이제 이 기도를 엄마가 은율이에게 알려 줄 차례인 것 같아.”
“은율아 엄마 따라서 말해 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중략) 은율이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리라.”
은율이가 한 소절씩 엄마를 따라 했다.
할아버지가 알려 주신 기도가 열세 살 지은이(엄마)의 마음을 진정시켰던 것처럼, 엄마가 알려 준 기도가 은율이의 마음을 진정시켜 주는 것 같았다.
그 이후에도 은율이는 한 번씩 불안이 엄습할 때, 엄마가 없이 혼자 있을 때라도, 엄마가 알려 준 기도를 따라 해 보곤 했다.
어느 날 엄마와 은율이가 뉴스를 보고 있었다. 갑자기 장면이 전환되면서 속보가 떴다. 아시아의 어느 나라에 규모 7의 지진이 났다고 했다. 건물이 무너지고 아수라장이 된 곳에서 은율이 또래의 아이들이 울고 있었다.
“아우, 어떡해. 어떡하니? 저 아이들 어떡해.” 하면서 엄마가 안타까워했다.
은율이가 말했다.
“봐봐, 엄마. 지진이 절대 일어나지 않는 게 아니야.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고. 그래서 내가 걱정하고 또 기도하는 거야. 엄마는 다 괜찮다고 하지만 매일 사건·사고도 일어나고 하니까 나는 걱정이 많이 된다고.”
은율이가 말을 덧붙였다.
“그렇다고 전처럼 무작정 불안해하지는 않아. 엄마가 알려 준 기도를 혼자서도 종종 하거든.”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워서 엄마와 은율이는 뉴스에서 보았던 지진 속 또래 아이들에게 이 밤이 너무 춥지 않도록, 너무 두렵지 않도록, 어서 도움의 손길이 닿아서 속히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함께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