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이런 이야기 할 데 없어서 끄적거린 글
언제 혼자 카페에 갔었는지 생각해봐도 그런 기억은 희미합니다.
따듯한 아메리카노 한잔 놔두고 폰 잡고 글 쓰고 싶었습니다.
알 수 없는 곳에서 밀려드는 답답함을 어디에라도 말하고 싶지만
누구에게 말하자니 그럴 사람도 없거니와
딱 이거다 싶은 내용도 없고 숨만 조여오는데 그런 걸.
그런 걸 글로 만질 수 있게 형태로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그렇게 들어간 카페는 학원가라 그런지 시끌 거리는 게 영 마음에 내켜지지 않았습니다.
테이크 아웃으로 메뉴를 보는데
꿀꿀한 마음은 달달함이라는 결론에
카라멜 마끼아또 한 잔 들고.
한적한 아파트에 주차된 차로 왔습니다.
담배 하나 물고 서서
트렁크 위에 노안으로 안경을 벗어둡니다.
서서 폰으로 한참 쓴 글은 운전석에 앉아서까지 한참 썼지만
억지로 쓴 글이라 맘에 안 들어 결국 지우고 말았습니다.
전날 반주로 먹은 소주 두병.
요즘은
새벽 내내 깊은 잠 못 자게 꽉 채워지는 방광의 고통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바로 일어나지 못하고 끝 까지 버티는 투쟁이 벌어집니다.
이길 수 없을 때 결국 일어나 결국 비워야 했지만
다시 벌컥벌컥 정수기물 한가득 마시고
잠을 청하려 누우니 이 생각 저 생각.
싸니까 채운 건지
채우니까 싼 건지
그딴 거 뭐가 먼저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근심도 마찬가지로 생겼으니까 해소가 될 것이고
해소가 되니 차츰 쌓이는 이뇨기처럼 뭉글거리는 근심이라니.
생각은 근심과 성욕이 비슷한 걸로 연결되더군요..
끝없이 생기는 성욕.
끝없이 만들어지는 근심
이겨내기 위해 싸워봐도 꽉 채워진 방광은 비우는 방법밖에 없는 건데
성욕도 근심도
잠시 사라졌어도 다시 시작하겠고
괴로운 순간은 극에 달 했을 때 비워지는
반복입니다.
이런 잡스런 것들이 다 사라지는 순간이 있다면
그것은 내 존재가 함께 없어지는 때라 봅니다.
이길 수 없으니 즐기는 게 아니라
이길 수 없을 때 그때에서야 비워내 지는 거죠.
오늘 법륜 스님 말씀 하나 챙겨 들으며
또 사는 게 뭘까 지혜를 깨우침 받아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