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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창한오후 Aug 12. 2016

떠나야 할 때 지우고 싶은 것

사람향기 진한 꽃

항상 웃고 살던 J 선배.

내가 기억하는 형은 명문 법대를 나왔고, 그가 일하던 시민단체 사무실 책상에는 가끔 한문 가득한 책이 펼쳐 있었다.

격동의 80년대 학번으로 가끔 술 한잔 하면 그 당시 학력을 숨기고 했던 위장 취업 이야기를 재미있게 해주었다.

"위장 취업을 한 사람들은 서로를 알거든.. 그러니까 큰 공장에는 서로 모르는 위장 취업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목적이 강해서 아무리 티를 내지 않으려 해도 일반 노동자들과 달라! 그런데.. 나는 위장 취업자를 알아챘지만 그들은 나를 몰라봤다니까"

"그럼 형은 위장을 정말 잘한 거네요?"

... ...

"사실 위장취업을 하면 동료 노동자들의 의식을 일깨워 주고 노동조합도 만드는 뭐 그런 활동을 해야 하는데..

난 열심히 출근과 퇴근.. 열심히 일만 했던 거야~  ㅋㅋㅋㅋㅋ"

취업은 위장이지만 월급만 열심히 받아 갔다며 많이도 웃었다..

하지만 형은 대학운동을 하며 건강이 약해졌다고 했다.

친구들은 변호사에 판사가 많았지만 공부도 때를 놓쳐 이제는 그냥 별 볼 일 없게 나이만 먹어가고 있던 중이었던 거지.




살다 보니 소송건이 생겨서 자문을 구한 적이 있는데..

"판사들이 그렇게 허술하지 않으니까 네가 거짓만 없으면 이길 수 있을 거야" 라며 변호사를 소개해주었다.

은행과 붙은 소송이라 누구도 장담 못하는 재판이었는데

개인인 나는 100% 승소를 하며 잘 끝을 맺을 수 있었다.

잊을 수 없는 큰 도움이었어..


아주 가끔 만나며 친분은 계속 유지했다.

볼 때마다 유치한 농담을 날리며 껄껄 웃던 J형은 검은 뿔테 안경을 썼었다.

키가 크진 않았지만 낡은 트렌치코트를 즐겨 입었는데..

병약해 보일 정도로 마른 몸에 의외로 잘 어울렸다.  

숨겨놓은 날카로운 눈빛을 뿔테 안경이 지켜내지 못할 때면 더욱 지적으로 보였고 난 그게 참 멋졌던 것 같다.






몇 년이 지나서 나처럼 그 형을 잘 아는 친구와 셋이 호프집 구석자리에 앉았다.

형은 항상 썰렁한 개그를 날리던 여느 날과 달리 웃지도 않고 굳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친구는 선배 옆에 앉아서 그런 표정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언제나 정직했던 그래서 뭔가 손해를 많이 보고 사는 J형.

그날은 정말 이상했었어.


다음 날 늦게 퇴근하여 운전하던 차에서 문득 어제의 묵직했던 형 얼굴이 생각나는 거야.. 그래서 전화를 걸었다.    


"형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르지만 웃고 삽시다..

전유성 책 제목처럼 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즐거워 진대요. 그렇게 형을 위해 조금만 비겁해져요."

"... ... ..."


짧지만 충분한 여운을 남긴 채..


"수일아! 우리 아버지를 부탁한다."

"형 그게 무슨 소리야.. 형네 아버지를 왜 내게 부탁해"


"... ... 우리 아버지를 부탁한다"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네.. 그게 무슨 소리야..."

"... ... ... ..."

'뭐래~!'


외곽순환도로를 달리며 통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이른 아침 낯선 전화를 받았다. 자기가 형사란다.

내가 어제저녁 마지막 통화한 사람이라며 무슨 말을 하더냐고 물어왔다.


J선배는

어제저녁 대장동 농로길에서 차에 불을 질러 분신자살을 하셨다...

치열했던 학생운동 시절 친한 친구가 분신자살을 했었는데 함께 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평생 간직하고 살아왔다는 말은 나중에 친구를 통해 들었다.

망인이 차 안에서 불을 질렀지만 차 밖으로 나와서 돌아가셨다고 했다.

뜻대로 풀리지 않는 삶을 그동안 얼마나 괴로워했을지 가슴이 아프다.


상갓집에서 다리가 불편한 J선배의 아버지 그리고, 동생을 처음 봤다.

명문대를 보냈던 아버지는 큰 아들에 대한 기대가 작지 않았을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그런 마음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고...


J선배는 떠날 채비를 했던 흔적이 여러 군데 남겨 놓았다.

소원했던 사람을 찾아가 갑자기 몇 년 전 일들을 사과했다고 했다.  

전 직장에는 감원 처리를 부탁해서 받았던 고용보험 비용을 다시 갚을 방법이 없냐는 문의를 했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리고... 우리를 찾아왔던 것도 어쩌면 작별주였던 듯 해.


그까짓 것 몇 푼 된다고...

그런 걸 마음에 찌꺼기처럼 남겨서 뭐 한다고...

그렇게 노력을 했어도 결국 부끄러운 흔적을 다 지우진 못했을 거다.

그게 사람인 거니까.  

다만 만나고 싶었던 사람은 다 만나고 갔길 바랄 뿐.





J선배...

착하고 꾸밈없는 웃음으로 기억남을 삶을 살다 간 모습이 왜 오늘 기억이 다시 나는지 모르겠다.


꽃..

화려하진 않았어도 사람향기 가득한 사람 꽃.

가끔 만나 왔던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구석진 자리에서 호프 앞에 두고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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