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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창한오후 Apr 01. 2016

내 트라우마 극복기

창피함도 상처로 남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X8, 우쒸, 악, 악, 악" 거렸다.

사실 달리기 운동을 시작하면서 그런 습관은 적어지긴 했지만

아직도 어떠한 상황에 걸리면 작동되는 욕설과 비명의 잔치가 남아 있음을 오늘 또 한 번 보았지.

트라우마.

아무 이유 없는 듯해도 모든 반응에는 원인이 있는 것이다.

소심한 성격이 트리플 A형이어서 그런다고?

어느 정도 맞다고 보는데, 이야기를 안 해서 그렇지 조금씩은 누구나 같을 거라 본다.  




초등학교 6년,

부천으로 전학을 온 어느 학생이 있었어.

이 학생은 공부에 관심도 없고, 하라는 사람도 없고, 방목으로 자라는 데다가

못 견딜 때쯤 이발소 가서 머릴 깎을 정도로 꼬질꼬질하기도 했을 것이다

6학년 5반에서 제일 예쁜 여학생 박진희.

진희는 등까지 내려오는 단정한 머리에 공부도 잘하고 조용한 분위기가 있었다.

이영애 어린 시절이 저러지 않았나 싶어.


2학기 짝을 정할 때,

여학생들이 맘에 드는 짝에 가서 앉는 방식을 선생님이 지시하셨다.  

아무래도 예민한 여학생들은 먼저 짝꿍 선택을 망설이고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그녀가 맨 먼저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어린 마음이지만 진희가 가까이 올수록

'설마? 아니겠지!' 했는데 사뿐히 내 짝을 자처하는 것이 아닌가?

'뭐지?'


난 부러워하는 친구들 시선이 오히려 부담스웠다.

얘는 왜 하필 내 자리로 왔을까 하는 생각만 들었던 듯하다.

더 멋진 친구들이 있음에도 나에게 온 것은 다른 친구들에게 기회를 양보한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 후에도 다른 여학생들은 계속 주저하며 움직이지 않았다.

선생님은 다른 방식으로 재배치를 하게 했는데 진희와는 짝이 되지 않았다.

아직도 참 마음이 따듯했던 동창으로 기억이 남는다.  


어느 날

우리 엄마와 함께 대화하는 아줌마가 나한테 몇 반이냐 물어봤는데..

진희 엄마였다.

진희 엄마는 담배를 많이 피우셨다.


지금도 만나는 친구에게 딱 한번 얘기했다. 정말로 딱 한번!

"진희네 엄마 담배 피더라~!"

반에 조용히 말들이 퍼졌겠지.

우연히 만난 진희네 엄마가 나를 매우 타박하셨어.

애들 모르게 담배도 밖에서만 피워 왔는데 딸이 그걸 알고 학교를 안 가겠다고 울며 집에만 있다고.  

'내 마음이 매우 아프다.'

자책도 했지만 딱히 내가 해결할 일도 없고, 할 수도 없다.

여덟 살 많은 둘째 형과 전철 타고 영등포역에서 내리는데 한마디 하더만.

"너는 왜 그런 얘기를 해가지고...."  


'너는 왜 그런 얘기를 해가지고...  너는 왜 그런 얘기를 해가지고...  너는 왜 그런 얘기를 해가지고'


이후 머릿속에 계속 맴도는 이 말...

상처가 더 깊어졌다.  

잊을만하면 어떤 이유를 알 수 없는 자책감이 나를 심하게 괴롭히는데

왜 그런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원인은 초등학교 때 라는걸 알았다.

그 일로 어떤 시스템이 내 안에 생겨버린 것이다.  

결혼했고 애를 낳고 사는데도 그랬다.

화장실에 혼자 있을 때 종잡을 수 없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소리를 질러댔다.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무슨 일이 있는 것처럼 화가 분출된다.

이 증상은 해결한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 그냥 어쩔 수 없는 오래된 고질병으로 남은 거다.

이런 이야기를 누구한테도 하지 못했다. 부끄럽고, 유치한 거 같고, 그냥 한숨 참으면 지나가는 거라 여겼다.  





또다시 자다가 발작~!!

"아 뭐 때문에 그러는지 말을 해보라니까? 도대체 왜 그러는 건데?'

집사람이 화를 냈다.

담담히 자초지종을 얘기를 했다.

"헐~!! 20년도 더 된 초등학교 때 일이라고? 나 원 참 뭐라 할 말이 없네... 그냥 잠이나 자~!"

"그렇지? 나도 이럴 때마다 힘들어"

매우 신기한 건 간직(?)했던 부끄러운 사연을 털어놓는 순간

그 시스템에서 해방이 됐다는 것이다.  

"어?~!! 누구 한 테라도 얘기를 하면 오래된 상처가 아물 수 있구나!


지금 글로 다시 정리하고 있는 것은 완전한 자유를 얻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 사건에서만 말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

운전 중 비명을 지르며 발작을 했다.

어떤 분의 성함을 라디오에서 들었기 때문이다.  

17년 전쯤

지역 청년모임을 하고 있던 나는 유명 인사를 섭외해서 강의를 듣는 자리를 기획하였다.

담당 간사님의 추천으로 경실련에 계신 뵌 적 없는 그분을 모시기로 했다.  

"신 사무총장님 부천의 청년들을 위해서 이러이러한 주제로 말씀을 주실 수 있을까요?"

"아! 청년들이 부른다면야 저는 언제든지 갑니다. "

당시의 주제나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강의가 끝나고

7층 강당에서 둘이 엘리베이터로 내려가며 봉투를 드렸다.

강의료라고 할 순 없고 차비를 드린다는 생각으로...

5만 원을 넣어서..

정말 우리 모임에 돈이 없었다. 한 3만 원만 할까 하다가 딴에는 조금 무리해서 넣은 건데...

당시는 잘 몰랐지만 나중에 보니 이분.. 사회적으로 상당히 높은 분이었다.  

'십만 원을 넣었어야 했어... 무리했어도 십만 원은 드렸어야 했어' 가

(너무 적은 금액이었어~!, 너무 적은 금액이었어~!, 너무 적은 금액이었어~!, 너무 적은 금액이었어~!)

나를 괴롭히는 사건의 발단이다.  내가 생각해도 참 한심하다.   


숨어있던 사건 하나가 발견한 오늘 아침.

옆에 타고 있던 집사람에게 이런 자초지종을 길게 설명했다. 왜? 해방되기 위해서...

방법을 알았잖아~!!

물론 이 이야기도 처음 하는 고해성사다.  

묵묵히 듣던 이 사람. 갑자기 내 가슴을 턱 잡으며

"이 안에 뭐가 들어있는 거야 도대체~!!"

"하하하하하하~"    "해방이다."

아직 또 어떤 깊은 상처가 남아서 더 괴롭힐지 모르겠다,   

걸리기만 걸려라 내 다 이를 거야~!!  


산다는 것은 문제가 계속 생긴다는 말과 같다.

어떤 것은 컴플랙스를 건드리며 지나간다. 그러면 깊은 잠재의식에 단단히 남는다.

차라리 명쾌한 줄거리라도 있으면 찾기 쉬운데, 알 수 없는 유령처럼 따라다닌다.

그러다 두드러기처럼 올라오면 딱 잡는 거야~!!!!!

글을 쓰던 벽에 대고 말을 하던 떠들고 소문을 내는 거 그게 성능 좋은 백신이고 치료제다.     

트라우마?

그거 별거 아니더라고... 그걸 몇십 년째 헤매고 있었던 시간이 아깝기에

이런 글로 내 기억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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