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트리 Jul 23. 2015

책이 한 권도 안 팔리는 날

긴 꼬리 작전 실시

오늘의 발주도서 : 0


이것이 알라딘 주문관리 페이지
이것이 교보문고 주문관리 시스템

헛, 이럴 수가. 어제도 0이었는데 오늘도 0이라니! 물론 며칠 전에 알라딘에서 20부를 땡겨 가긴 했지만 며칠씩이나 추가 주문이 없다니... (차라리 매일 조금씩 나가는 게 기분이 더 좋은... 조삼모사스러운 장사꾼의 심정.) 서점 홈페이지가 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 싶어 엎드려서 노트북을 켜고 인터넷 브라우저를 켠다. 이런... 홈페이지는 잘만 돌아가고 있다.


출간하는 것 자체가 목표였던 출판 실험이었지만 로얄티를 지불하고 계약한 책을 만들어 놓고 팔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은 저자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잠재적인 독자에 대한 예의도 아닐 것이다. 일단 만들어 놓은 1500부의 책을 기꺼이 돈을 주고 살 독자들에게 소개해야 할 의무가 나에게 있다. 물론 창고비 등을 충당하려면 책을 팔아야 하고.


초판 1500부를 팔기가 쉽진 않을 것임을 이미 예상했던 바였다. 요즘 책이 안 팔린다는 엄살(!)이야 여기 저기서 많이들 들어봤을 테고. 책의 주인공이 대중적인 인물도 아니고 영드라는 마니아틱한 장르 중에서도 <미란다>라는 시트콤의 웃음 코드를 공유하는 독자에게나 겨우 말을 걸 수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책의 정가도 비싼 편이다. (좀 싸게 할걸 하고 후회하고 있다. 쓰읍-)


대중적인 책이 아니라서 판로(알라딘, 예스24, 도서인터파크, 교보문고, 반디앤루니스, 영풍문고, 지역 서점에 유통해주는 도매상 등)를 많이 뚫어서 거래를 해봤자 일만 많아지고 인터넷 서점 메인화면이나 오프라인 서점 평대에 노출하는 조건으로 광고비를 50만원에서 500만원까지 써봤자 그걸 만회할 만큼 책을 많이 팔 수도 없다. 그렇다고 책의 종수가 많은 것도 아니고 앞으로 많이 낼 수도 없고 꼴랑 『미란다처럼』한 종.


물론 이렇게 책이 한 권밖에 안 나가는 날에는 다른 데랑도 거래를 틀 걸 그랬나 미련이 남기도 하지만 나는 하기 싫은 일로 귀찮은 건 딱 질색이다. 그냥 아침에 알라딘, 교보만 확인하는 게 낫지. 효율을 따져봤을 때 거래처를 줄이는 게 아직은 내 규모에 맞다는 판단이다. 그리고 도매상과 계약하면 언제 책 판 돈을 회수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위탁 거래의 맹점, 일단 책을 위탁으로 보내고 팔린 후 두 번째로 책을 보낼 때부터 대금을 받을 수 있다.)


차라리 유통사와 씨름하는 시간에 롱테일 판매 작전을 펼치기로 했다. 한국말로 '긴 꼬리', 롱테일 법칙은 IT 분야에 신기술이 나타나면 눈치 빠르게 책으로 후루룩 써내는 크리스 앤더슨 씨가 소개한 법칙이다. 뭐, 몇 년 전에 한 번 휩쓸고 지나간 개념이라 대부분 알고 있겠지만 '적지만 꾸준한 수요가 있는 상품을 합친 매출이 잘 팔리는 소수의 상위 상품의 매출보다 컸다'는 아마존의 사례가 아마 가장 유명할 것 같다.


제 아무리 꼬리 하나가 길어봤자 커다란 대가리... (흠흠) 머리에 비해 많은 매출을 낼 수는 없겠지. 독점적인 유통 플랫폼과 미디어가 팔리는 물건만 더욱 많이 팔리도록 노출시키는 요즘에야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큰 몸을 먹여 살리려면 큰 머리가 필요하지만 작은 몸에는 큰 머리보다는 긴 꼬리가 훨씬 달고 다니기 좋지 않을까? 균형을 잃을 일도 없고 그냥 질질 끌고 댕기면 되잖아! (응? 억지 부리지 말라고?)


물론 긴 꼬리가 여러 개가 될 수록 생존확률이 높아지므로 책을 계속 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이 바로 얼마 전이다.

꼬리를 길~~~~게 늘어뜨려 주세요!

매일 매일 조금씩 미란다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여러 가지 일을 벌여야지. 물론 가끔은 한 달에 60만원 벌려고 (그나마도 택배비와 창고비로 절반은 다시 나가는데) 이렇게 시간을 투자하는 게 잘하는 짓일까 하는 회의감도 밀려오지만. 『미란다처럼』을 신간일 때만 잠깐 반짝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잃는 책이 아니라 언제나 살아있는 책이자 콘텐츠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이것이 미란다처럼 매일매일 나답게 사는 방식이라는 생각으로, 그리고 이 책의 가치에 기꺼이 돈과 애정을 투자해줄 독자들이 아직 남아있다는 희망으로- 책덕의 긴 꼬리 작전은 현재진행형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탱자탱자 출판인의 '스마트'한 하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