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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리 Jul 12. 2015

책 한 권 내고 망하기 2

시작은 덕키했으나 끝은...?

굳이 출판을 직접 한 이유는...


여러분이 무엇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정말로 잘해낼 수 없다. 마찬가지로 해킹을 정말로 좋아한다면 뭔가 자기 자신의 프로젝트를 수행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해커와 화가』라는 책을 쓴 프로그래머, 폴 그레이엄의 말이다. 갑자기 왠 해킹인가 싶겠지만 어떤 분야든 통찰력을 빛낼 정도로 내공이 쌓인 사람들이 하는 말은 다른 분야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을 때가 많다. 


'뭔가 자기 자신의 프로젝트를 수행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 


살던 대로 계속 살다 간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같은 상황이 오진 않을까 두려워진다. 게다가 요즘 같이 이러나 저러나 살기 팍팍한 세상에서 궁지에 몰린 쥐는 이판사판이 되는 법. (그러고 보면 이렇게 불안감을 조성해주는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라도 보내야 하려나. 겁 많은 나의 등짝을 밀어주었으니.)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속한 환경과 교육 내용에 따라 세계관을 형성한다. 어릴 때부터 받아오던 어른들의 가르침에 따르면 열심히 일해서 잘 먹고 잘 사는 게 행복하게 사는 길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또 다른 세계관이 생기면서 소위 '안정적인 삶'과 '불안정한 삶'의 위치가 뒤섞이기 시작했다. 두 가지 모두 나름의 일리가 있는 세계관이었지, 무조건 한쪽이 정답이라고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1. '일반적인' 세계관(많은 사람들이 옳다고 믿는 세계관 그리고 어쩔 때는 나도 옳다고 생각하는 세계관)

학자금 대출 다 갚았으면 IT 전문서 편집자로서 경력을 쌓으면서 저축하고 보험도 들고 연금도 들고 노후 준비하고 엄마 선물도 사드리기. 그리고 서른 살 즈음에 결혼도하고  대출받아서 집도 마련하고 대출금 갚으면서 아이도 낳아서 키우고 가끔 짧게 여행 다녀오고 남들 하는 만큼 갖추고 살기. 


2. '다른' 세계관(내가 믿고 싶은 세계관, 자꾸만 되뇌는 세계관)

맨날 '작가가 되고 싶다, 번역하고 싶다, 내 손으로 재밌는 걸 해보고 싶다'고 생각만 하지 않고 죽기 전에 진짜 해보면서 살기. 조금 덜 먹고 덜 쓰고 살더라도 출판하는 사람으로 살아보기. 비슷한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기.


어렸을 때는 '일반적인' 세계관에 더 가까웠던 기억이 난다. 큰 회사, 좋은 회사에서 나라는 인재를 알아봐 주기를 그리고 간택해 주기를, 그리고 투자해 주기를 바랐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작 나는 내 잠재력에 투자를 했던 적이 있던가? 그저 알바해서 학자금 갚기 급급했던 것을 빼면 정말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보렴 하고 내 돈을 자신에게 투자해본 적이 있었나?  되돌아보면,『미란다처럼』의 번역 판권 선불금 250만 원은 어쩌면 나의 잠재력에 투자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투자금이었던 것 같다. 


망하든 말든...                     

겁쟁이 책덕 나가신다 - 출판 등록 당시 그린 낙서

결국 나에게 중요한 것은 망하고 말고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였다. 첫 번째 세계관에 따르면 사업을 할 때 지속적인 성장을 해야 하고 팔리는 책을 만들어야 하고 성공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망한 것이 맞다. 하지만 두 번째 세계관에 따르면 내 방식대로 출판 실험을 경험하고 있는 지금, 나는 목표를 이룬 것이 맞다.


사람들은 각자 다 다른 세계관을 지니고 살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명제가 하나 있다. 삶은 원래 다 그지 같다. 그리고 인간은 다 죽는다. 이렇게 살아도 저렇게 살아도 삶은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그나마 덜 그지 같게 살기 위해 미란다 같이 웃기는 여자들을 찾아내고 내게 재밌게 느껴지는 일을 하기 위해 몸부림 치는 것이다.


똑같이 하려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야

그렇다네요.

출판을 하기로 결심했을 때 또 한 가지 마음 먹은 것이 있다. 내 식대로 하자는 것. 물론 출판의 기본적인 틀 위에서 출판 행위를 하겠지만 기존의 방식을 따라가지만은 않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것들을 다르게 했는지는 앞으로 차차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 같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 덕후 출판의 가장 핵심이자 어려운 점은 내 안에서 상충하는 두 가지, 혹은 그 이상의 세계관 사이에서 '어떻게 나의 중심을 잡느냐'인 것 같다.

그래도 나는 꿈을 꾸잖아. 이상한 이 현실에서도.
비현실적이라고 눈을 흘기는 네가 난 더 불쌍해.

<아이돌> 자우림

그러니까 나(덕후)를 보며 비현실적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믿는 세계관에서는 나만큼 현실적인 사람도 없다고 크게 소리 내어 받아칠 수 있어야 한다. 아니, 지금, 롸잇나우!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 있는데 이만큼 현실적인 사람이 어디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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