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트리 Sep 19. 2022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
Platform P엔 OO이 없다!

홍대앞 접근성 좋은 책공간 플랫폼피 

홍대입구역 7번 출구에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 플랫폼피(Platform P)가 있습니다. 플랫폼피는 작은 출판사와 출판 생태계의 다양한 작업자를 지원하기 위해 마포구에서 설립한 창작 공간이고, 책덕도 오픈오피스에 입주해 있습니다.



플랫폼피 홈페이지 메인. 플랫폼피 센터를 소개하는 글이 적혀있는 페이지.



처음 이곳에 입주했을 때는 교통편이 편리하고 건물이 깔끔하다는 인상만 받았습니다. 내부 디자인도 시원스럽고 예쁘다는 정도만 느꼈었죠. 


플랫폼피 2층 라운지 모습, 흰색 바닥과 기둥이 보이고 벽쪽으로 책이 가득한 책장이 이어져 있다. 천장에는 조명이 가득하고, 양쪽으로는 작은 테이블과 식물도 보인다.


1, 2) 2층 라운지, 곳곳에 책장과 식물 3) 세미나실 책상과 의자가 나란히 붙어있고 바닥에는 파란색 카페트가 깔림 4) 책과 노트북, 창문밖 건물 풍경



<로스트 보이스 가이>를 위한 첫 미팅 때 유정 님과 헌용 님이 방문했을 때, 두 분이 언급을 한 뒤에야 건물 오른쪽에 지하철역과 바로 연결된 엘리베이터가 있고, 각 공간이 연결되는 곳에 '이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습니다. 비장애인 상태에서 걷는 데 어려움이 없었던 저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다 보니 몰랐고 평평하지 않은 바닥이 거슬렸던 적이 없어서 몰랐던 것이죠. 


플랫폼피에는 없는 '이것' 무엇일까요? 영상으로 확인해 보시죠.


https://www.youtube.com/watch?v=gaPxmFNiSi8&t=14s

바로, '문턱' 없이 이어진 공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층마다 장애인 화장실이 있고요. (당연한 일인데 특별히 대단한 것처럼 말하기가 좀 민망하기도 하네요.) 


어딜 가나 문턱이 있어서 건물을 지을 때 어쩔 수 없는 것인가보다 생각했는데 문턱 없이도 건물을 지을 수 있는 것이었어요! 플랫폼피가 있는 건물은 '녹색건축인증'을 받기도 했더군요. 녹색건축인증은 '지속 가능한 개발의 실현을 목표로 인간과 자연이 서로 친화하며 공생할 수 있도록 계획된 건축물의 입지, 자재선정 및 시공, 유지관리, 폐기 등 건축의 전 생애(Life Cycle)를 대상으로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에 대한 평가를 통하여 건축물의 환경성능을 인증하는 제도'라고 합니다.


건물 외벽에 붙어있는 '녹색건축인증' 푯말. 우수(그린2등급) 경의선 홍대입구역 복합역사 개발사업(공공업무동)이라고 적혀 있다


<로스트 보이스 가이>는 우리동작장애인자립생활센터중증 장애인 번역가 양성 과정을 통해 모인 5명의 번역가가 번역한 책입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분도 있고 안내견과 파트너로 다니는 분도 있고 이동하는 방식이 다양한데요. 보통 먼 거리를 이동할 때는 택시를 많이 이용하는데, 이 택시도 (제가 자세히는 모르지만) 이용하는 게 마냥 편하지는 않더라구요. 미리 콜을 해야 하고 오는 데도 시간이 천차만별이고요.


다들 장애인 이동권에 대해 들어본 적 있으시죠? 한창 장애인 이동권을 두고 뜨거운 공방이 오갈 때 번역가 중 한 분인 김헌용 님이 쓴 글을 한번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참고로 지하철 투쟁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3082


번역가 5분이 모두 모여 밥 먹기가 미션 임파서블이라는 농담 아닌 농담까지 나왔었답니다. 저도 예전에 협동조합에서 모임장소를 선정할 때 문턱이나 계단 없이(혹은 엘리베이터가 있는) 누구나 '접근하기 좋은' 공간을 찾는 게 정말 하늘에 별따기였거든요. 집회 같이 규모가 커질 수록 장소를 찾기가 더 어려웠어요.


장애인 화장실이 층별로 있는 장소도 찾기 어렵죠.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화장실을 이용하기 어렵다면 밖에 나오는 마음이 지금과 같이 가벼울까요?


<로스트 보이스 가이> 책에도 지방 공연을 가서 숙소와 공연장을 갈 때 겪었던 웃지 못할 에피소드들이 곳곳에 등장합니다. 사실 '접근성 좋은'이라는 말도 단순히 쓰기가 어려운 점도 있어요. 그 안에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접근성에 대해서는 담기가 어려운 것 같거든요. 


https://tumblbug.com/lostvoiceguy

물론, 우리가 호텔을 예약할 때마다 항상 호텔에선 ‘접근성 좋은’ 객실을 원하는지 묻더군요. 그런데 이 질문을 들을 때마다 혼란스러워요. 도대체가 세상에 접근할 수 없는 방에 묵고 싶어 하는 그런 인간도 있나요? 본래 호텔 객실이라 함은 모두 접근 가능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니면 제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거예요? 좀 더 도전적인 것을 좋아하는 손님들을 위해 모든 호텔에 ‘접근성이 나쁜’ 층이 따로 있기라도 한 겁니까? 예를 들어 청소하는 분들이 복도에 서서 진공청소기를 휘두르며 길을 막으려고 한다든가, 크리스탈 메이즈처럼 가구들을 여기저기 널브러뜨려 놓고 유격 훈련 구간을 통과하게 한다든가... 아마도 호텔 방으로 가는 길에 침대 매트리스가 몇 개씩 쌓여 있고, 끓는 물이 가득 찬 주전자가 발에 걸려 넘어지기 좋은 위치에 놓여 있고, 바지 다리미판이 벽에서 저절로 펼쳐지기라도 하나 보죠? 복도 끝에는 레니 헨리(영국의 코미디언이자 방송인)가 슈퍼마리오의 쿠파 대마왕처럼 기다리고 있다가 아수라장이 된 현장을 살펴보고요. 그리고 이 모든 장애물을 통과해서 문 앞에 다다르면? 장담컨대 여러분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멍청한 카드키로는 문을 열지 못할 거랍니다. 결국 마지막 관문에서 미션에 실패하는 거죠.

<로스트 보이스 가이> 135-136쪽


플랫폼피를 이용하면서 든 생각은 '접근성이 좋기 위해 선택한 변화'는 모두에게 좋구나라는 것입니다. 문턱이 없어서 바퀴가 달린 이동가방을 끌고 왔을 때(플랫폼피에 입주한 창작자들은 캐리어를 잘 끌고 다닙니다), 다리를 다쳤을 경우에, 기어가야 하는 경우에(아, 이건 아닌가?ㅎㅎ), 친구가 유모차를 가지고 방문했을 때, 손잡이가 있는 화장실이 편한 어르신이 왔을 때(혹은 내가 나이 들었을 때) 다른 건물보다 플랫폼피 같은 건물이 훨씬 더 편할 거거든요.  


오늘은 플랫폼피를 이용하면서 든 접근성에 대한 생각을 두서 없이 펼쳐봤습니다. 플랫폼피에서 함께 작업했던 모습을 몇 장 공유하면 끝마치겠습니다. 


(사진 왼쪽부터) 번역가 김기택, 책덕 대표 김민희, 번역가 김헌용, 기획자 최유정 - 함께 플랫폼피 2층 라운지 나무 테이블에 둘러앉아 작업하는 모습
기획자 최유정, 번역가 김헌용, 책덕 대표 김민희 나무 테이블에 둘러앉아 노트북을 보며 작업하고 있다


번역가 김헌용, 기획자 최유정 나무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노트북을 보며 작업하고 있다, 책상 위에는 화분과 커피, 간식 등이 올라와 있다

<로스트 보이스 가이> 텀블벅 300% 향해 가는 중

"유머로 가득차 있는데 사회의 편견과 둔감함까지도 조명해주는 멋진 책이다."
- 아마존 리뷰어 Dazaster


https://tum.bg/IKBY2p

지금, 함께해 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시각장애인도 질주할 수 있는 부산 갈맷길 나들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