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꼭 서점에서만 팔아야 하는 건 아니니까
지난 일요일, 마포구 연남동에서 '따뜻한 남쪽마을'이라는 마을시장이 열렸다. 중고물품과 수공예품, 직접 만든 음식 등을 사고 파는 플리마켓이다. 요즘에 여기저기에서 플리마켓이 열리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마을 축제 같은 느낌이 드는 행사라는 느낌이 든다. 특히 아이들을 데리고 장사를 하는 부스는 그냥 지나치기가 어렵다. 쪼끄미한 손으로 레몬에이드를 내밀며 "맛있어요~"하고 붙잡는데 어찌 냉정히 지나치리...
아무튼 이번에 그런 마을시장에 판매자로 참가 신청을 했다. 어릴 때부터 플리마켓에서 시크한 자세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을 부러워 하기도 했었고 '책덕 좌판'이라는 나름대로 회심의 뻘짓을 만들어놓았는데 그걸 실현해볼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출판사에서 직접 책을 팔러 나가서 좌판 깔고 눌러앉아 있겠다는 허술한 기획.)
사실 책 한 권 가지고 마을시장에 나간다는 게 좀 웃기긴 한데 그래도 한 권밖에 없는데 어쩌란 말이냐? 해보고 싶단 말이야~ 라는 생각 하나로 나가기로 했다. 그리고 다행히 '따뜻한 남쪽마을'은 참가비가 따로 없고 당일 판매한 금액의 10%를 참가비로 내면 되기 때문에 부담이 적었다. 물론 하나도 못팔면 자리 차지한 게 미안하기 때문에 책 말고 직접 만든 사진 엽서도 같이 가지고 나가기로 했다.
처음 나가는 거라 집에 있던 박스로 대충 테이블을 만들고 전에 몸담았던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출판사 사무실에 가서 비품을 공수해왔다.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자리를 배정받고 좌판을 깔았다. 양 옆자리의 아이들 악세사리와 가죽팔찌는 손님이 꽤 있었지만 역시나 내 부스에는 파리만...
그래도 뭐 "난 놀러 나왔으니까 괜찮아!"라고 하며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 있는데... 갑자기 비가 후두둑 떨어졌다. 우비를 뒤집어 쓰고 조금 있으니 이제는 해가 반짝 비추기 시작했다. 어우, 뜨거워.
마을시장 모습을 사진으로 스케치하는 스탭분이 다가왔다. 심심한데 잘됐다 싶어서 말을 걸었는데 으아니, 운명의 데스티니! 미란다 덕후였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교보문고 가서 책도 샀어요."
이 분이 바로 어떻게 알고 샀는지 알 수 없다는 교보문고에서 책 산 독자였구나~ 너무 반가워서 마음속으로 브레이크 댄스를 추었다. 미란다 너무 좋아한다며 책 번역해주어서 고맙다고 말씀해주어서 정말 찡(x1000000)-했다.
그리고 이런 허접한 부스를 응원하러 와준 분도 있었다. 딱 두 번 만났을 뿐인데 얼굴을 발견했을 때 마음속으로 따뜻함이 커다랗게 퍼져나갔다. 영혼 없는 인사가 아니라 '진심'으로 반가운 인사를 건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다. 집순이에 친구들도 필요할 때만 찾는 내가 사람을 만나는 것을 이렇게 즐거워할 수 있다니. 딱 한 번 만나고 다신 못만난다 해도 어딘가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내고 있을 거라고 믿을 수 있는 그런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나도 잘 살아남아야지 하는 용기를 얻는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에 정리할 쯤에는 미란다를 좋아한다며 에코백을 사간 두 분도 있었다. 그렇다. 미란다 덕후가 아니면 에코백에 새겨진 문구를 반가워할리가 없다.
이렇게 써치 펀(Such Fun)한 마을시장을 마무리하고 다시 짐을 바리바리 싸서 집으로 돌아왔다. 몸은 피곤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1cm 정도 커진 듯했다. 책을 직접 만들고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최대한 재밌는 방식으로 책을 판다. 앞으로도 책덕 좌판을 계속 될 예정이다. 쭈욱~
서점 아닌 곳에서 책 팔기. 땡땡책협동조합의 야매 서점이라는 실험도 재미있어 보인다. 커피를 마시듯 편안하게 책을 소비할 수 있는 공간이 많아지기를 기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