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D "Great Leadership is a network"
예전에 조합에서 운영진으로 활동할 때 리더십이라는 것에 대해 근본적으로 고민을 깊이 했던 적이 있다. 처음엔 좋은 리더란 무엇인지, 어떤 덕목을 갖춰야 하는지, 사람의 성향이나 조직의 성격에 따라 다른 방식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것인지에 멈춰 있었던 고민이 점점 리더십은 한 사람이 독점적으로 갖추고 발휘하는 힘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옮겨갔다. 리더십도 스포츠맨십처럼 그 조직에 속한 모든 사람이 갖추어야지 한 사람만 혹은 몇 사람만 갖추어서는 제대로 발휘될 수 없지 않을까.
리더는 끊임없이 권력을 나눠야 하고 책임도 나눠야 하며 조직의 일을 모두의 문제로 만들어야 한다. 자기가 모든 일을 하려고 들지도 말아야 하고 언제라도 힘들면 바통을 넘겨줄 수 있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정보가 공유된 환경이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조직은 몇몇 사람에게 이끌려 가는 게 아니라 스스로 굴러갈 수 있다. 너무 이상적이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난 그런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얼마 전에 TED에서 나와 비슷한 방향으로 생각하고 실제로 그 방식을 시도해봤다는 영상을 발견했다. 기테 프레데릭센(Gitte Frederiksen)은 "위대한 리더십은 위계가 아니라 네트워크에 있다(Great Leadership is a network, Not a Hierarchy)"라는 주제로 연설을 했다. 들어보니 너무 공감이 가서 좋았는데, 아직 한글 자막이 없길래 직접 자원봉사로 참여해 한글 자막을 업데이트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업데이트까지 4개월 정도 걸린 것 같다.)
"여기 책임자가 누군가요?"라는 도발적인 질문으로 시작하는 강연. 사람들에게 리더십이 다수에게 있다면 어떨까 상상해 보라고 제안한다.
리더십을 소수에서 다수로 옮기려면 각자 조금씩 권력을 내려놓아야 한다. 아마 이것 자체가 엄청나게 불편하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끌던 사람도 이끌려 가던 사람도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은 어색하고 귀찮고 심지어 짜증 나게 느껴질 수 있다. (권력을 나눠주는 일도, 나눠 받는 일도 상명하복식 조직에 익숙한 우리에겐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프레데릭센은 앞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더 복잡하고 난해한 문제를 풀어나가려면 리더십의 분산은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프레데릭센은 리더십을 분산하는 방법으로 세 가지를 제시한다. (아마 더 많은 방법이 있겠지만 여기서는 세 가지만 소개했다.)
첫째. 이름표를 떼고 생각하세요. 부서, 직급, 성별, 국적, 학력 등 사람을 분류하는 이름표를 떼고 논의를 하라는 것이다. '저 사람은 00니까 이런 건 모를 거야, 저 사람은 00니까 잘 알겠지'라는 고정관념 없이 팀을 다양한 기술군과 관점을 가진 사람으로 구성한다.
"누가 마케터고 누가 관리자이고 누가 데이터 분석가인지 잊어 보면 어떨까요?"
각자 서로를 가둔 편견의 상자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특히 무슨 일을 하기 전부터 자격을 묻고 걸러내는 태도를 지양해야 한다. 막상 우리는 서로 말을 섞기 전까지는 다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심지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전혀 알지 못한다(안다고 착각할 뿐). 그러니까 짐작하지 말고 벽을 세우지 말고 함께 문제에 부딪히는 것이다.
둘째, 모든 것을 공유하세요. "SHARE EVERYTHING!"
관리직에 있는 사람의 한숨 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각자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정보에 대해 숨기지 말고 모두 즉시 공유하는 방법은 번거로워 보이지만 프레데릭슨이 실제로 겪어본 결과 전혀 힘들지도 복잡하지도 않았다.
정보는 권력이고 결국 정보를 소수의 사람들 속에서만 맴돌게 하는 게 아니라 조직 전체에 공유하고 투명한 상태에서 함께 참여하면서 권력을 분산할 수 있다. 정보를 나누고 오픈된 공간에서 대화하는 과정 자체가 리더십이라고 말한다. 위계에 의해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이끌어가는 과정 말이다. 덧붙여 리더십은 정답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모든 정보'라니 너무 정보가 많아 혼란스러워지는 건 아니냐는 질문을 할 수도 있다. 그에 대해서는 이렇게 답한다. 이미 우리는 정보 과부하에 익숙하기 때문에 소셜미디어의 모든 글을 읽지 않듯이 각자 자신에게 중요한 정보를 찾아 분류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셋째, 서로에게 친절하세요.
'친절'이라는 표현은 애매모호한데 대놓고 불친절한 사람도 있지만 친절을 가장하여 부당한 요구(예: 금요일 밤에 퇴근하면서 직원에게 "늦은 건 알지만 월요일 아침까지 필요한 일이 있어요. 하지만 주말까지 일하진 마세요! :)" -_-; 미소 짓는 이모티콘만 붙이면 친절한 줄 착각하는 사람도 있다)를 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진짜 '친절'이 무엇인지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
친절한지 아닌지는 실수가 나왔을 때 드러난다. TED 영상에서는 한 직원이 자신의 실수를 알아챈 순간 바로 공유했을 때의 반응을 보여준다. 동료들은 이렇게 답한다.
"용기가 필요한 일인데 솔직히 말해줘서 고마워요."
"나중에 아는 것보다 지금 아는 게 훨씬 낫죠."
"실수가 없었으면 '우리가 너무 느리게 일하나?'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아마 전통적인 리더는 이런 대화를 중요시하지 않겠지만 팀원들은 이 순간을 되돌아보며 이때야말로 팀 문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서로 용기를 북돋고 신뢰감을 쌓는 순간들, 진짜 리더십이 발휘되는 시간이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는 책을 읽어보지 못 했지만 거기에서 주장하는 내용도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감정적으로든 이성적으로든 다정한 태도가 이기적이고 못된 태도보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내가 그렇게 할 때 나 자시도 다정한 대우를 받을 확률이 커진다.
워커홀릭 리더들이 흔히 하는 착각: '내가 없으면 회사가 안 돌아가!'
하지만 프레데릭센이 출산 휴가를 갔을 때 회사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떤 조직에게는 너무 이상적이라고 치부될 수 있지만 벌써 몇몇 기업과 스타트업에서는 이런 리더십을 실험하는 중이다. 특히 스몰브랜드가 늘면서 전통적인 경영이 아닌 새로운 경영 방식도 함께 성장하고 있다. 예전에 충주 댄싱사이더의 이대로 대표님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서로를 '선수'라고 부르며 회사의 모든 일을 서로 공유하고 주체적으로 해결하려 노력하는 사례를 들을 수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니 분산된 리더십의 한 형태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풀영상으로 봐야 전체적인 맥락이 더 잘 이해될 겁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Z7ySrDVqOs&t=614s
테드 한글 자막 자원봉사는 간단한 테스트를 거치고 승인이 나면 캡션허브 사이트에서 번역하고 싶은 TED 영상을 찾아 번역을 할 수 있습니다. 검수자의 검수가 완료되면 TED 사이트와 유튜브 영상에도 자막이 반영됩니다.
https://www.ted.com/participate/translate/get-started에서 번역 자원봉사 신청하고, 캡션허브(https://ted.captionhub.com/ted) 사이트 내에서 바로 자막 작업을 할 수 있다. 타임라인과 원문이 같이 제공되기 때문에 작업하기가 쉬운 편.
책 만들며 N잡하는 자유일꾼 책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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