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서점과의 인연
7월 17일(날짜부터 럭키한 느낌이 나지 않나? 응?)은 책덕에게 뜻깊은 날로 기억될 것 같다. 처음으로 대형서점이나 독립출판 서점이 아닌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온 지역 서점과 거래한 날이다.
책덕은 기존 출판사의 거래 관행과는 약간 다르게 책을 유통하고 있다. 일단 대형 서점인 교보문고, 영풍문고, 반디앤루니스 중에서는 교보문고하고만 거래하고, 인터넷 서점인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 도서인터파크 중에서 교보문고와 알라딘하고만 거래한다. 한 군데라도 팔 곳이 많으면 좋긴 하지만 단점도 있고 내 나름대로는 이유가 있어서 교보문고, 알라딘과만 거래하고 있다.
그리고 요즘 동네 골목골목에 생기는 작은 책방들 몇 군데와 거래하고 있다. 저번 글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주로 독립출판물을 다루는 책방들이다. ('책방'이라는 단어는 실제 책을 담는 공간(방)이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인터넷 서점과 구분해 쓰기가 좋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독립출판은 1인 출판, 인디출판 같은 용어와 구체적인 구분 없이 사용되곤 하는데 독립출판물들 사이에도 조금씩 다른 점들이 있기 때문에 '독립출판물은 어떤 것이다!'라고 규정하기가 어렵다. 출판 과정 대부분을 창작자가 직접 맡아 하는 경우, 출판에 드는 비용을 직접 부담한 경우, 몇몇이서 의기투합하여 잡지(ZINE)을 제작하는 경우, 실험적인 아트북이나 디자인북을 만드는 경우, 소량(100~500부) 제작한 경우, 책에 ISBN(국제 표준 도서 번호)를 부여한 경우와 부여하지 않은 경우, 많이 팔리는 경우(?)와 많이 팔리지 않는 경우(?)...
독립출판과 상업출판의 경계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어쨌든 『미란다처럼』은 번역서이면서 ISBN을 부착했으니 상업출판물이기도 하지만 번역부터 디자인까지 직접 맡아한 책으로 독립출판물로 불릴 요소도 있는 듯하다(애매~하쥬?). 사실 개성 있고 핫(HOT!)한 작은 책방에 입점하는 것이 왠지 기분이 좋아서 거래를 시작한 것도 있지만 『미란다처럼』을 만날 수 있는 오프라인 공간이 없다는 점이 아쉬워서 거래를 시작한 것이기도 하다.
특히 지방에 있는 독자들이 책의 실물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없다는 점도 중요했다. (각 지역 교보문고에도 딸랑 1부씩 있는데 독자 눈에 띄기 힘든 건 당연.) 사실 각 지역에는 큰 서점들이 있긴 한데 일일이 직거래를 하기가 힘드니까 도매상 한 군데와 거래를 한다. 도매상에서 해당 책을 각 서점들에 보내주고 판매된 금액을 걷어서 지급해주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도매상과 거래하면 위탁한 책에 대한 대금 지급이 늦어지거나 판매 보고가 불명확하고 반품 관리가 어렵다는 소문을 들어서 1종뿐인 상황을 고려하여 거래하지 않고 있다. ('소문'이니 요즘에도 그런 문제가 있는지 확실치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각 지역의 대표서점에라도 책을 공급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몇 군데에 팩스를 보내본 적이 있는데 연락이 없었다.
동아 서점과의 인연(?)은 올해 초, 속초 여행을 갔을 때로부터 시작되었다. 여행을 가면 그 지역 책방이나 헌책방을 구경하는 습관이 있어서 동아서점이라는 곳에 가게 되었다. 그런데 동아서점이 있던 자리에는 이런 안내문만 붙어있었다.
서점을 방문하지 못해서 실망스러운 가운데에서도 이 안내문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나 서점스러운 안내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맨 오른쪽 아래에 저 귀엽고 사랑스러운 로고는 어쩌란 말인가! 이렇게 책 덕후의 마음에 깊게 새겨진 동아서점은 『미란다처럼』을 출간하고도 3개월이 흘러 다시 머릿속에 떠올랐다. 인터넷에서 동아서점 블로그를 찾아보니 새로 이전한 서점의 모습이 정말 멋졌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동아서점에 입점할 수 있는지 문의 메일을 보냈다. 과연 입점이 가능하다고 올지 궁금궁금한 마음으로 답장을 기다렸다. 서점 입장에서는 한정된 공간에 최대한 독자들이 찾을 만한 책을 효율적으로 진열해야 하기 때문에 입점 문의를 할 때는 항상 조심스럽다. 몇몇 살아남은 동네서점들에서 참고서나 베스트셀러 위주로 책을 진열하는 것은 서점을 지속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궁여지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잘 팔리는 책 말고도 소신 있게 책을 선택하여 진열하는 서점 지기들은 그저 돈을 벌기 위해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돈 벌려면 다른 걸 팔아야지...ㅠㅠ) 책은 다른 어떤 품목보다 종류가 많고 매일 새로운 책이 쏟아져 나오며 종이라서 관리하기 어렵고 안 팔리면 처리하기도 곤란하다. (땡처리도 안 됨.)
아무튼 이런저런 서점 운영에 대한 생각을 하는 와중에 답장이 왔다. 두근두근!
책덕 출판사와 직거래를 하고 싶습니다. 우선 5권을 매절하고 싶습니다.
그냥 저희는 책덕 출판사를 응원합니다.
큰 규모를 갖춘 상대에게서 하찮게 대하는 태도를 가끔 느낀 적이 있다. 피해의식인지 몰라도 그렇게 나를 쭈구리로 만드는 거래를 하다가 이렇게 동등한 대우를 해주는 사람을 만나면 감격스럽기 그지 없다. 마지막 응원해주신다는 말씀에는 눈물이 찔끔 날 정도였다.
게다가 매절이라니! 으아니, 으사양반! 아니, 동아서점 양반님들... 매절이라뇨.
여기서 잠깐 설명하자면 전통적으로 책 판매는 위탁 판매로 이루어졌다. 서점에 책을 진열한 후 팔리면 출판사에 책값을 지급하는 구조이다. 하지만 가끔 서점에서 아예 돈을 먼저 지급하고 책을 가져오기도 하는데 이것을 매절이라고 한다. 사실 서점 입장에서는 정말 잘 나가는(판매가 보장된) 책이 아닌 이상에야 매절로 책을 사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안 팔리면 재고 부담!)
신 나서 책을 포장하여 바로 동아서점으로 보냈다. 그리고 얼마 후 도착한 문자 메시지.
도서정가제 때문에 시끌시끌했던 때가 떠오른다. 여러 가지 말들이 많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이 스스로 자정하고 자신의 이익을 넘어서 출판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들 의지가 있는지였을 것이다. 결국 장기적으로는 출판 생태계가 건강해야 서점과 출판사도 오래도록 책을 팔아 먹고 살 수 있고 독자도 좋은 책을 살 수 있으니까. 책덕은 그런 의미에서 동네 서점, 지역 서점에도 대형서점과 같은 공급률을 제시한다고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다. 솔직히 쪼렙 출판사 혼자 까분다고 할 수도 있는데, 나의 의도를 알아주고 응원해주신 것이 참 고마웠다. (설마 정말 많이 팔릴 거라고 생각해서 매절로 가져가신 건 아니겠지? 크크)
사업을 하면서 이런 아름다운 거래를 얼마나 할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다. 솔직히 전국의 서점과 하나하나 거래하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인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래도 사람냄새 나는 거래를 할 때마다 나는 돈보다 커다란 무언가를 얻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빨리빨리 세상에서는 얻지 못할 신뢰감, 공정함, 동지애, 책임감...
빠르고 효율적인 일들에 지칠 때마다 7월 17일을 떠올려야 겠다.
얼마 전에 동아서점에 대한 기사글이 떴는데 대표님의 '그냥 서점'이라는 말이 보이는 것과 다르게 무겁고 진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동아서점의 자리를 차지한 『미란다처럼』이 '꿋꿋하게 살아남아 마땅한 책'이 된 것 같아서 가슴이 뜨뜻하다.
"속초시 중앙시장과 속초시청 사이에서 58년간 한 자리를 지켜온 동네서점입니다. 확장 이후 현대적인 인테리어로 인해 북카페나 도서관으로 오해받곤 하지만 ‘그냥 서점’입니다. 다만 중요하고 값진 책들, 꿋꿋하게 살아남아 마땅한 책들을 발굴(?)하고 독자들과 함께 숨 쉬고자 나름의 호흡으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현재 ‘그냥 서점’에게 주어진 임무라고 믿고 있지만 여전히 앞으로 갈 길은 막막한 평범한 지방 동네서점입니다."
내가 (아직 가보지 못했지만) 좋아하는 서점 중에 하나인 진주문고 페이스북에는 이런 글이 올라왔다.
"제가 지금 제일 가보고 싶은 서점이 있다면 프랑스의 '셰익스피어&컴퍼니' 가 아닌, 아르헨티나의 '엘 아테네오' 서점도 아닌 대한민국 속초의 동아서점입니다."
참, 얼마 전부터 동아서점에서는 독립출판/소규모출판물을 소개하는 코너도 마련했다고 한다. 내가 꿈꿔온 서점의 모습이 속초에 있다. (동아서점 근처에 있는 책덕후들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