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을 기억하는 방법
대구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설레는 마음으로 분주한 아침. 챙겨온 짐을 다시 바리바리 싸들고 슬기로운 낙타(책방)의 주인장 지민이의 빨간 자동차에 몸을 실었다. 장롱면허를 딴 지 어언 10년이 되어가는 나는 누군가의 차에 실려다니는 걸 꽤 좋아라 한다. 대구에서 포항까지 나름 로드트립 분위기를 내며 달려갔다.
도착해보니 책방을 열기 전, 오전 11시 40분. 네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골목, 골목을 이리저리 꺾으며 '그 골목'으로 들어서는 순간 마음이 어찌나 설레던지. 지민이와 나는 마치 연예인을 만나기 전 같다면서 여고생마냥 꺄악 거렸다. (정작 실제 연예인을 볼 때는 이렇게까지 난리치지 않는데.)
문은 닫혀있었지만 사진으로만 보던 책방 앞에 서자 참 반갑고 신기했다. 책방이 열 때까지 잠시 동네를 구경하고 오기로 했다. 작은 시장과 골목들, 그리고 기찻길과 강가에 늘어선 카페들... 달팽이 책방이 있는 동네는 다양한 것들이 서로 다른듯 비슷한듯 이어져 있었다. 잠시 들렀던 카페에서는 체스를 두고 있는 테이블도 있었는데 카페에서 체스 두는 모습을 처음 봐서 그런지 신선한 장면이었다. (무척 진지했던 분위기가 기억에 남는다.)
다시 돌아간 달팽이 책방에는 벌써부터 테이블을 차지한 손님들이 있었다. 조심스레 책방 문을 열고 들어가 달팽이 책방 주인장 미현 님에게 인사를 건넸다. 뭐랄까, 처음 보는 얼굴인데도 전혀 낯설지 않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갔던 작은 책방 주인장들에게서는 항상 그런 편안한 인상을 받았던 것 같다.
분주해보이는 미현 님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용히 책방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아, 내가 정말 이곳에 왔구나.
미현 님께서 시원한 음료를 준비해주신다고 하여 레몬향 홍차를 말씀드렸다. 잠시 자리에 앉아 달팽이 책방의 메뉴판을 정독. 메뉴판에 쓰인 글 하나, 하나에 책방 주인의 진심어린 고집이 엿보였다. 시원한 아이스 홍차는 정말이지 인위적이거나 강한 향을 싫어하는 내 입맛에 딱이었다. 너무 좋아서 쭉쭉 들이키다 보니 금방 바닥이 보였다. (아쉬워라...)
점심시간이라 잠시 나가서 밥을 먹고 오기로 했다. 미현 님이 추천해주신 식당 중에 고민을 하다가 R마트 앞에 만두집에 가기로 했다. 아래는 달팽이 책방에 붙어있는 달팽이표 동네 지도.
만두집은 동네 분식점처럼 생긴 가게였는데, 테이블 공간만큼 커다란 부엌에서 네 분의 아주머니들께서 요리를 하고 서빙을 하고 계셨다. 가게가 작은데도 손님이 많아서 왠지 빨리 주문해야 할 것 같은 긴박함이 느껴져서 비빔만두와 밀면과 고기만두를 시켰는데 다른 테이블은 군만두만 먹고 있었다. '이런, 군만두가 대표 메뉴인건가...'하고 안타까워 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비빔만두는 군만두에 야채무침이 추가된 메뉴였다. 하하하- 럭키! (먹방 사진을 좋아하는 분들을 위해 음식사진 투척!)
우째 군만두가 이리 통통하고 속이 꽉 차있는지 참 신기했다. 밀면은 여기 와서 처음 먹어봤는데 심심한 육수와 쫄깃한 면발이 자꾸 땡기는 맛이었다. 욕심을 부려서 세 가지 메뉴를 시킨 거라 남길까봐 걱정했는데, 왠 걸, 아주 깨끗하게 해치워버리고 나왔다.
바로 옆에 시장 골목이 있어서 나중에 <과일&채소 친구들 만들기>에서 쓸 과일을 사기로 했다. 색이 예쁜 레몬을 두 개 사고 모임에서 먹을 먹거리도 샀다. 책방에서는 소설 낭독 모임도 있고 손님들도 꽤 있으니 잠시 바닷가라도 다녀오기로 했다.
잠시 바닷가를 구경하고(뜨거운 햇살 때문에 약 2분 정도 밖에 나왔다가) 처음 보는 포항의 곳곳을 차로 스쳐지나갔다. 너무 더운 날씨와 일정 때문에 차로만 스쳐지나가는 것이 아쉬웠다. 다음에는 자전거로 설렁설렁 다녀보기로 지민이와 약속했다.
어이쿠, 쓰다 보니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도 안 했는데 글이 길어지네요. 하루가 이렇게 길 줄이야!
다음 화로 넘어갑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