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덕, 책방에 가다
혜화 역 마로니에 방향 출구로 나가면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각종 연극, 공연을 권유하는 사람들과 늘어선 술집과 카페들이 뒤섞여서 눈을 어지럽힌다.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면 한적해 지지만 대학로에 갈 때마다 지하철 역 앞 시끄러운 풍경에는 쉽사리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데이지북을 찾아서 골목으로 골목으로 들어서는데 사진 찍을 만한 장소로 손에 꼽히는 낙산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온다. 조금 올라가다가 길을 잘못 들은 예감이 들어서 다시 내려왔다. 조금 걸어가니 사람이 거의 없는 한적한 골목에 노란색 광고판이 보인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착한' 기운이 느껴져서 당황했다. 기존의 독립 서점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 전해졌다. 건물로 들어서서 2층으로 올라가자 책이 진열되어 있는 아담한 공간이 나타났다.
'아기자기하다'는 수식어가 딱 들어맞는 공간이었다. 사실 데이지북은 출판/인쇄를 포함한 사업을 오랫동안 해온 분의 아내분께서 연 책방이었다. 전부터 출판쪽이나 창작쪽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사업을 여러 가지 실행하고 구상하시다가 이런 책방을 만들어 제작자들을 도와주고 책방 문화를 만들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데이지북 홈페이지에는 책을 판매하는 것뿐만 아니라 제작이나 디자인 관련해서 상담을 해주기도 한다는 말이 써 있다. 내가 갔을 때도 이것저것 조언을 해주셔서 출판/인쇄쪽에서 모르던 것들을 알 수 있었다. (* 책을 입고할 때 간단한 책 소개를 손글씨로 써서 책과 같이 진열하면 손님들이 좀 더 친근하게 책을 볼 수 있답니다.) 게다가 커피까지 마시고 천천히 놀다 가라고 하시고 대학로쪽에 오면 편하게 들려서 일도 하고 가라고 해주셨다. 최대한 제작자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전해져서 오길 잘했구나 싶었다.
입고 신청서를 간략하게 작성하니 또 한 가지 감사한 이야기를 해주신다. 보통 책방에 책을 입점할 때는 기본으로 5부를 '위탁'한다. (위탁은 책방에 책을 진열한 후 판매가 되면 책방에서 출판사(제작자)에게 책값을 지불하는 방식) 그리고 샘플용(독자들이 살펴보는 용도로 진열)으로 1부를 더 가지고 가는데 이 샘플용 책에 대한 책값을 50% 지불하신다는 것이다. 그 한 권, 한 권이 모이면 무시 못한 액수일 텐데도 제작자들을 배려하는 의미에서 그렇게 하기로 하셨다고. (정부지원사업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네요. 감동 ㅠㅠ)
데이지북은 여느 책방처럼 세련된 모습은 아니지만 빠르고 젊은 감각에 그렇게 밝지 않은 제작자나 독자까지도 넉넉하게 감싸줄 것 같은 여유가 느껴졌다. '핫'한 매력만 부곽된 책방들의 모습에서 위축되거나 망설여졌다면 데이지북의 문을 두드려보면 어떨까.
책만들기 워크샵, 수요 플룻 아카데미, 초보 에디터를 위한 인디자인... 친절해 보이는 워크샵과 문화 이벤트들이 다양한 사람들의 참여로 더욱 활발해지길 기대해본다.
미란다 하트가 출연하는 영국 드라마 <콜 더 미드와이프>는 1950년대 런던 동부를 배경으로 조산사들의 이야기를 그리는 웰메이드 드라마이다. ('웰메이드' 이런 말을 써볼줄이야. 헤헤) 굉장히 좋아하는 드라마인데, 출산이라는 과정에 관심을 가지게 만든 드라마이기도 하다. (아직까지 극복하지 못한 인간의 육체적 한계를 확인시켜 주는 몇 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분야를 막론하고 현대의학(과학 기술)과 자연주의(옛날 방식) 사이의 타협점은 어디인지에 대해서 다루는 책에는 흥미가 생긴다.
편집이나 디자인 등은 세련되지 않았지만 꼭 세련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고 오히려 독립출판이라는 가치에 부합하는 책인 것 같아서 마음에 든다.
감성출판서점 데이지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