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월화요일을 남해와 담양에서 보냈다. 전북대학교 양오봉 총장과 본부 1기 보직자(JBNU119라 부름) 워크숍에 참석했다. 보직자 대부분의 임기는 내년 2월 21일까지이다. 참고로 나는 교무학사부처장직을 맡고 있다. 워크숍 세미나에서는 총장 발표 후, 부처장 세 명이 연달아 발표를 했다. 부처장 중 내가 첫 번째 발표를 했다. 적지 않은 부담감이 있었다. 특히나 워크숍 참석 전 사흘을 상갓집에서 보낸 터라 체력도 정신도 몽롱 그 자체였기에 더욱 그랬다. 나는 긴장을 풀어볼 요량으로 입을 떼었다. 김홍신 작가가 지은 시 앞부분과 제가 지은 내용을 읽어드리겠습니다. 굶어보면 안다. 밥이 하늘인 걸, 목마름에 지쳐보면 안다. 물이 생명인 걸, JBNU119 대원이 떠나면 안다. 그들이 참 일꾼이었단 걸.
낭독이 끝나자마자 여기저기서 탄성 섞인 웅성거림이 시작되었다. 갑자기 마이크를 든 총장이, 떠나긴 어딜 떠나요. 도망갈 생각들 하지 마세요, 한다. 총장 입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보직자들이 어색한 함박웃음으로 대응했다. 그리고 시작된 발표는 무탈하게 끝났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저녁식사 시간이 되었다. 우린 버스를 타고 근처 횟집에 모였다. 언제나 그렇듯 테이블 끝자리부터 건배사 릴레이가 시작되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건배사 순서가 서서히 다가올 때 요런 저런 생각이 밀려왔더랬다.
그러니까 올해 초, 총장 취임 1주년 기념 워크숍이 있었다. 워크숍 취지도 그렇거니와 당시 글로컬대학 30 과제가 선정되었던 터라 흐뭇한 용비어천가 건배사가 행사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나는 건배사를 이렇게 날렸다. 총장님, 제가 직원 선생님들과 네트워크가 좋다는 것은 아시지요. 총장님, 총장님은 지장이시고 용장이시나 덕장은 아니신 것 같습니다. 건배사를 시작하자마자 웃음기 사라진 행사장이 되었고 나는 건배사를 이었다. 총장님께서 캠퍼스에 나타나시면 멀리서부터 직원 선생님들이 숨는답니다. 총장님, 올해는 총장님께서 캠퍼스를 걸으실 때 멀리서부터 직원선생님들이 달려와 인사를 하는 덕장이 되셨으면 합니다. 다행히 건배사가 훈훈한 내용으로 마무리되어 총장도 보직교수들도 웃음으로 화답했다. 그날 저녁도 회를 먹었다. 저녁 회식장소에서 총장은 한 해정도는 더 달려야 한다며 당신이 덕장 되는 것을 미루겠다 했었다.
그렇게 예전에 했던 건배사를 생각하던 중에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구석으로 나가 섰다. 그리고 담담하게 시작한 건배사, 총장님, 제가 올해 초, 총장님께서는 용장이시고 지장이시지만 덕장은 아니신 것 같다고 말씀드린 것을 기억하시나요? 그 순간이었다. 다시금 유쾌 상쾌 통쾌한 회식자리 공기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총장님, 그런데 요즘 제가 직원선생님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총장님께서 직원선생님들을 위해서 여러 가지를 조용히 추진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총장님께서는 지장이시고 용장이시고 덕장이신 것 같습니다. 제가 며칠 전 알게 된 이야기를 조금 각색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옛날 고종황제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그 순간이었다. 총장을 포함해 모든 보직자가 내 입을 뚫어지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는 여세를 몰아서, 고종 왈, 불씨 하나가 거대한 숲을 태우고 한마디 말실수가 평생의 공덕을 무너뜨린다, 했답니다. 한데 JBNU는 양오봉 총장 한 사람 때문에 높이높이 비상하는 것 같습니다.
갑자기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한번 입술을 모으고, 제가 이야기를 잘하지요? 하고 물었고 모두 이구동성으로, 네, 하고 대답했다. 나는 다시 심호흡을 하고, 제 아내가 저에게 당신은 교수가 되어 다행이라 합니다. (잠깐 뜸을 드린 후) 교수가 되지 않았으면 사기꾼이 되었을 거라고요. (모두 한바탕 웃다 멈춘 후) 아무튼 인연도 텃밭과 같아서 관리가 필요하다 하더라고요. 오늘 이 시간 좋은 인연을 잘 관리하시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렇게 긴 건배사가 끝나고 우린 각자의 자리에서 일어나 여기저기 자리를 옮기며 격한 건배를 했다.
그다음 날에 일어나 창밖을 보는데 전날 흡족하게 웃던 총장과 보직교수 얼굴이 눈에 아른거렸고 나는 흡족한 웃음을 흘렸다. 술이 과했던 게 분명하다. 아첨(阿諂)이 아닌 아부(阿附)의 극치였다. 상대를 사특하게 꼬드겨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아첨에는 함정 함(臽) 자가 들어가 있다. 하지만 상대의 이로움을 위하고 상대에게 힘을 북돋우며 알랑거리는 아부는 그 목적이 참 고상하다. 그래서 정리하자면 아첨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하나 아부는 위든 아래든 동료에게 자주 해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좌우당간, 진규 형님이 알려주신 노르웨이 속담대로 인생은 짧으나 술잔 비울 시간은 아직 충분하니 좀 더 뻔지르한 건배사를 할 수 있도록 풍성하게 살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