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렇듯 식사를 하고 나니 대접 커피가 등장했다. 아들은 밥그릇에 엄마 아빠는 국그릇에 커피를 탄다. 아빠가 반을 먹고 엄마에게 반을 넘긴다. 그사이 나는 밥그릇 커피를 혼자 해치운다. 후식이 끝나고 한 참이 지났다. 이제 꿀잠을 자야 하는 시간. 주방에서 뭔가를 하고 있는 엄마랑 아빠에게 건성건성 인사를 하고 작은방으로 들어왔다. 평소엔 엄마랑 아빠가 주무시는 작은방을 오늘은 큰아들이 차지했다. 나는 거실 공기를 가르듯, 엄마 아빠 주무세요....... 하며 인사를 하고 그렇게 차지한 작은방에서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갑자기 들어온 엄마가,
- 엄마는 이 방이 조트라. 아녹허니 좋아. 엄마는 텔레비전 보는 것도 싫고 여기서 라디오 듣는 게 조트라.
- 그려?
- 응. 그나저나 이거 먹어. 꽈자.
- 안 먹어 엄마.
- 먹어. 너 줄라고 샀는디.
엄마는 아들이 온다는 이야기에 마트를 갔다 온 모양이다. 빨간 소쿠리에 들어있는 맛동산과 보리건빵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하는 말이,
- 그러믄 이거 건빵이라도 먹어라. 으이구. 이거 하나도 안당게. 먹어.
- 아이고 엄마. 자꾸 먹으라고 좀 허지 마. 안 먹는당게. 나는 과자 안 먹어.
- 먹지. 이게 얼마나 된다고.
아들이 과자를 먹지 않는다고 하니 이번엔 감을 들고 왔다. 엄마는 감을 내 머리맡에 놓으며,
- 이거 맛난디. 달어. 겁나게 달어. 하나 먹어봐라. 으이구.
- 안 먹어. 엄마. 배부르당게. 안 먹어요.
완강히 거부하는 아들에게 화제를 바꾸는 엄마. 밥솥 한가득 저녁밥을 지은 엄마가 밥을 싸주고 싶다 했다. 그때였다. 언젠가 친구 녀석이 말해주었던 게 생각났다. 친구는 엄마가 뭔가를 싸주면 언젠가부터 무조건 싸달라 한다고 했었다. 지금 친구 엄마는 하늘나라에 계신다.
- 야. 너 밥 좀 싸주믄 안 되냐?
- 싸줘. 엄마.
- 응. 그려. 밥이 많어가꼬.
예상밖에 아들이 뱉은 흔쾌한 대답에 신이 난 엄마는 후다닥 부엌으로 향했다. 주방에서 엄마가 아빠에게 묻는 소리가 들린다.
- 근디 주걱이 어딨댜?
- 거기 있네. 김치통 옆이. 닭다리도 싸준다메. 돼지고기도 싸줘야지.
아빠는 엄마가 해야 할 일을 쭉 나열한다. 늘 그렇지만 엄마가 주걱을 손에 주고 핀잔 섞인 아빠 말에 대응하는데,
- 가만 있어봐. 내가 뭐 헐라고 혔지?
- 밥 푼담서.
엄마 아빠는 아들 녀석 손에 쥐어줄 이것저것 챙기는 소리를 주방에서 연신 만드는 중이다.
- 쩌렁. 쨍. 사삭사삭. 촤.
엄마가 싱크대 수도를 틀고 뭔가를 담기 위한 뻘건 고추장통을 물로 헹구는 모양이다.
그렇다. 부모는 늘 자식을 채운다. 자식의 뱃속을 채우고 마음을 채운다. 자식이 떠나 시끄럽던 고향집이 조용해지면 엄마 아빠는 다시 자식을 그리워한다. 그리고 언젠가 찾아 올 자식을 채우기 위해 또다시 들녘으로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