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대전에서 인천 가는 버스는 한가한 모양이다. 이 큰 버스에 몇 명 없다. 한 손가락으로 세고 남는다. 흔들리는 버스가 창밖 요란한 세상을 쥐어흔든다.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세상을 버스가 요란하게 깨우는 듯하다. 세상은 하얀 이불을 덮고 늦잠을 청하는데 내가 탄 버스는 뽀얀 안개를 헤치며 앞으로 바삐 나간다.
오늘 아침 우리 집 거실 풍경도 버스처럼 부산했다. 문제의 발단은 나에게 있었고 난 무탈하게 해결했다. 다만 조금 힘들었을 뿐! 반소매 티를 청바지에 넣어 입은 게 화근이었다. 난 정성스럽게 바지 속에 티를 구겨 넣어 입고 아내에게 물었다.
- 여보! 어뗘?
- 응. 괜찮아요. 좋아.
아내의 재가를 받고 즐거운 마음으로 거울 앞에 섰다. 의당 옷을 다 입고 나선 거울을 보는 게 나의 오랜 습관이다. 나도 나름 만족스러운 얼굴로 거울을 뒤로하고 돌아서는데 하은이가, 아! 아빠! 빼서 입어요, 라며 딴지를 건다. 이건 엄청난 반기다. 각시는 흡족해했는데, 하은이가 티를 빼입으라 재차 재촉하자 나와 하은이 사이에 아내가 나타났다. 아내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괜찮아 여보. 넣어서 입어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아내가 하은이의 반론을 깡그리 무시하고 나에게 부드러운 승낙을 다시 보내는 순간이었다. 아내는 하은에게, 괜찮고만! 가시네…. 라며 또 한 번의 일침을 가했다. 하은이는 이렇게 손쉽게 굴복당할 대한민국 고딩이 아니었다. 하은이가 나를 보며, 뭐야. 저게. 땅딸보도 아니고…. 라며 이야기했다. 난 패션에 센스 있는, 고딩 하은이의 고견에 조금씩 맘이 기울기 시작했다. 딱 거기까지만 해야 했는데, 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 아내와 하은이가 옥신각신하는 사이, 나는 아내 뒤에서 하은에게 찡끗 웃음을 날리며 티를 잡아 바지에서 뺏다. 아내가 멍하니 서 있는 나를 향해 걸어오며, 어휴! 배가 붕 떠 보여서 안 돼!라고 말하며, 내 옆을 스치는 순간 은밀하게 협박한다. 아마도 하은이는 못 들었을 성싶다. 아내가 내 귀에 대고, 하은이랑 살지 나랑 살지 잘 생각해 봐요, 라며 은밀한 최후통첩을 보냈다. 난 아내의 조언을 마음속 깊이 받아들였다. 그리고는 너털웃음을 허공에 내뱉으며 바지 속으로 티를 후딱 넣었다. 으하하.
버스가 여전히 세상을 흔들어 깨우고 있다. 깊은 안개도 여전하다. 이제 한숨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