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갑자기 어수룩해지진 않는다. 난 예전부터 그랬다. 지난 월요일 탁구 레슨을 받는데 코치님이 나에게 그랬다. 김 박사가 학위를 어떻게 땄는지 조사해 봐야겠다고 하셨다. 내가 이해력이 떨어지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 다행인 것은 이해될 때까지 물어본다는 것. 물론 이해의 정도는 내 기준이다. 이 글을 빌려 나 때문에 속 터지시는 분들께 깊은 사과를 드린다. 어쩌겠는가. 이렇게 부대끼며 사는 게 우리 삶이 아니겠는가.
오늘은 충주에 출장이 있어 다녀간다. 오늘 아침 오창휴게소에 들러 따뜻한 커피 하나를 사 들고 다시 운전을 시작했다. 칸타타라는 마개 있는 커피 용기를 통해 따스함이 전해져 손이 호강했다. 문득 몇 해 전 아내와 나눈 대화가 생각났다.
- 여보! 보온병 좋은 거로 사야겠어요.
- 보온병이 몇 갠데, 또 사?
- 제대로 된 게 없어요. 보온도 잘 안되고….
- 보온병에 뜨거운 물 넣어서 마개 잠그고 손에 가지고 있으면 따뜻허던디!
난 보온병을 또 산다는 아내의 의견에 강하게 반발했다. 멀쩡한 보온병을 놔두고 또 산다는 게 맘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아내의 논리적인 반박에 난 깨갱거릴 수밖에 없었다.
- 여보! 보온이 안 돼서 보온병 겉이 따뜻한 거예요.
- 헐….
좌우당간, 손에 든 커피가 케케묵은 보온병 과거를 불러왔다.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무니 자연스레 출장길이 지루하지 않아 좋았다. 살금살금 찾아왔던 가을이 성큼성큼 물러나기 시작하는 가을 들녘은 휑하지만 여유로웠다. 여유 속 잡상 중 하나는 이랬다. 참 좋은 사람은 성능 좋은 보온병이구나! 겉은 차지만 필요할 때 따뜻한 한 모금을 전해주는 보온병처럼, 참 좋은 사람은 행여나 겉이 차더라도 가슴 한편에 따뜻한 온기를 품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참 좋은 사람은 참 좋은 보온병이다. 하루가 다르게 쌀쌀해지는 요즘 누군가에게 따뜻한 보온병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글을 쓴 지 십 년이 훌쩍 지났다. 나는 성능 좋은 보온병으로 살아왔는지, 겉은 따뜻했고 속은 차가웠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곱씹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