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일이다. 아내와 마트에 가서 커다란 생수, 네 팩을 사 왔다.
"여보, 생수 한 팩은 다용도 실에 갖다 놓으세요."
"응."
나는 아내의 명을 쫓아 생수병 여섯 개들이 한 팩을 불끈 들어 다용도실로 갔다. 세탁기 옆에는 물 한 병이 오뚝하게 서 있었다. '어라. 물 한 병이 남아있네...' 나는 들고 간 생수병 팩을 세탁기 옆에 놓았다. 그것으로 물 공수 작업이 깔끔하게 끝이 났다. 다음 날 이른 새벽이었다. 더 이상 팽창할 수 없는, 터지기 일보직전 방광을 해방시키기 위해, 화장실을 다녀왔다.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새벽녘 이맘때면 목이 칼칼하다. 난 발바닥으로 거실 바닥을 닦으며 다용도 실로 향했다. 발바닥이 거실의 마른 새벽공기를 스삭스삭 갈랐다.
다용도실에 도착한 후 어제 봐 두었던 생수를 들고 나와 싱크대 앞에 섰다. '그래. 요놈부터 마시자.' 컵에 물을 따라 마시라는 아내 잔소리가 없는 새벽이었다. 나는 생수병을 입 앞으로 가져갔다. 뚜껑을 열고 생수병 꽁지를 세웠다. 콸콸콸 물이 쏟아지는 게 그다음 수순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평소 같으면 입안에 안착할 물이 소식이 없었다. 이상하다 느끼는 순간 물컹한 액체가 입속으로 쏟아졌다. 동시에 얼굴을 싱크대로 돌렸다. 수도꼭지를 입에 대고 물을 틀었다. 그때부터였다. 쉼 없이 거품이 쏟아졌다. 입을 헹구면 헹굴수록 거품이 입 속에서 제조됐다. 주방 세제였다. 나는 후다다닥 화장실로 향했다. 치약을 몽땅 짜서 양치질을 시작했다. 치약 거품인지 세제 거품인지 분간키 어려웠다. 폭풍 칫솔질에 잇몸이 성할리 만무했다. 잇몸이 솔찬히 쎄랐다. 수십 번 입을 헹구니 거품이 어느 정도 진정 되었다. 그토록 요란한 아침은 처음이었다. 쌩쑈 그 자체였다. 죽다 살아났다. 아내말을 잘 들어서 컵에 따라 마셨더라면 싶다. 아내도 살짝 미안했는지 세제가 든 생수병을 세탁기 뒤편으로 옮겼다. 앞으로는 물을 컵에 따라 마셔야겠다. 잘 될까 모르겠다.